어떤 일을 하냐고 물으니 “돈 되는 건 그냥 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클라이언트의 입맛을 파악해 맛집을 예약하고, 멀미가 심하다는 클라이언트를 위해 KTX 창가 자리 예매를 사수하는 것까지. 돈이 나오면 나쁜 짓 빼고 다 하는 게 진정한 마케터의 길이라는데….


 

 

8:30AM 클라이언트가 출근하기 전에 먼저 출근해야 하는 것이 마케터의 숙명! 간밤에 고객사에서 온 요청은 없는지 메일함을 샅샅이 뒤지며 하루를 시작한다.

 

10:00AM 요즘은 마케팅도 랜선을 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 최근 핫한 온라인 이슈들을 체크하고, SNS 마케팅 사례를 모아 동료들과 케이스 스터디를 한다. 저커버그 걍 망했으면….

 

11:00AM 고객사에 보낼 보고서 작성. 클라이언트가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보고서를 보내야 나도 밥을 먹을 수 있다!

 

12:00PM 오후 미팅이 잡혀 있는 날. 혹시라도 옷에 냄새가 밸까봐 먹고 싶었던 뼈해장국 대신 샌드위치를 야무지게 씹어본다.

 

13:00PM 식후엔 역시 회의죠! 프로젝트를 여러 개 맡았다면 회의도 여러 번 한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회의만 하다가 지는 해를 보는 날도 있다.(쓸쓸)

 

14:00PM 클라이언트와 미팅. 고객사는 왜 때문에 다 우리 회사에서 먼 거죠?

 

18:00PM 폰이 울린다. “00님, 이것 좀 수정해주세요.” 어김없이 퇴근 시간에 맞춰 클라이언트의 폭풍 수정 요청이 들어온다. 그리고 난… 오늘도 약속을 파토 낸다. 친구들이 나 빼고 단톡방 새로 판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22:00PM 퇴근 아니고 자리 비움.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시 출근할 거니까. 후!

 

 

# 하는 일 돈 되는 일은 다 한다! 그만큼 업무의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영업부터 브랜드·제품·행사 등의 기획과 실행, 제안서 작성, 시장조사 등이 공식적 업무. 클라이언트 비위 맞추기, 클라이언트 연락 잘 받기, 클라이언트 취향 파악하기(응?) 등 비공식적으로 해야 할 일도 많다.

 

# 초봉 대행사의 경우 3천만원 내외. 사실 이 정도도 업계 평균보다 높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하는 일에 비해 박봉을 받는 직군. 대기업 마케팅팀 신입이라면 3천만원대 후반~4천만원대 초반 정도의 초봉을 노려볼 수 있다.

 

# 업무 강도 주말 출근과 야근은 마케터의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다. 클라이언트의 요청 때문에 12월 31일에 야근하며 새해를 맞은 정도? 행사가 있을 땐 리허설을 위해 밤샘은 기본이다. 강제로 ‘워라일체’를 실현할 수밖에 없는 업무 강도.

 

 

# 신입은 이렇게 뽑아요

공채는 보통 서류-인·적성 시험-1차 면접-최종 면접의 단계를 거친다. 1차에서 PT 면접을 보는 곳도 있으며, 맨 파워가 중요한 직무이다 보니 지원자 한 명에 면접관은 여러 명인 다대일 면접을 보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신입 TO가 자주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

 

# 이런 사람을 선호해요
사람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능숙한 사람, 체력과 멘탈이 甲인 사람, 관심사가 다양해 아이디어를 팍팍 내놓을 수 있는 사람, 데드라인에 맞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성실한 사람, 고객사 일을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능동적인 사람이라면 환영!

 

# 이런 거 잘하면 좋아요

엑셀, 파워포인트를 잘 다루면 업무 시간이 반으로 줄어든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할 줄 알면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자잘한(?) 수정쯤 디자이너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할 수 있어 핵이득! 미팅이 많아 운전면허도 있으면 편하다.

 

 

# 학교 다닐 때 뭘 해야 마케터로 입사할 때 유리하죠?

요즘 회사들이 인턴 경력 있는 신입을 선호하는 추세이긴 하다. 타 회사에서 1~2년씩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입사한 중고 신입들도 많은 편. 그러나 단순히 인턴을 했다는 사실보다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사수와 갈등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보고서 실수는 어떻게 고쳤고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지 등 인턴 경험을 통해 뭘 배웠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단 뜻이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모전에 참가했는데, 논리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기획안을 썼던 과정이 입사 후 실무를 맞닥뜨렸을 때 꽤 도움이 됐다.

 

# 공대생도 마케터로 입사할 수 있을까요?

내 왼쪽에 앉은 후배가 영문과, 오른쪽에 앉은 후배가 신소재공학과 출신이다. DB 기반 마케팅은 오히려 공대생이 더 잘한다. 전공은 1도 상관없다는 소리! 대학교에서 마케팅이나 경영학을 오지게 공부한 경우 아니고서야 입사 후 배워 나가는 건 똑같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실무 능력 어필을 위해 대외활동 경험이나 공모전 수상 경력, 인턴 경험 등을 미리 쌓아두면 좋겠지?

 

# 입사 후 가장 현타가 왔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나는 입사 전까진 성선설을 믿었다. 그러나 입사 후, 악마를 보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클라이언트와 꼰대 상사에게 치이는 날이 늘어만 간다.(한숨)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가 막 쏟아지고, 고객사를 좌지우지하는 커리어 우먼이 될 줄 알았건만…. 현실은 내내 숫자 싸움, 서칭 싸움, 시간 싸움, 눈치 싸움의 연속이다. 내가 낸 기획안이 그대로 실현되는 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저 클라이언트의 취향에 맞춰 ‘수정-설득-수정’의 무한 루프를 반복할 뿐.

 

사진 출처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 SNS 마케팅을 하는 경우엔 퇴근 뒤에도 핸드폰 붙잡고 있을 정도로 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핸드폰을 하도 쥐고 있어서 손이 늘 뜨겁다. SNS 반응이나 댓글은 실시간으로 달리기 때문에 업무도 실시간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슈가 터졌을 때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거고, 특별한 이슈가 없을 때도 틈틈이 관리하는 채널에 들어가 댓글 반응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신입을 뽑을 때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사용에 거부감이 없는 친구들을 뽑곤 한다.

 

# 영업과 마케팅을 한 직군으로 묶어서 채용하는 경우도 있던데, 입사 후엔 어떻게 업무를 배정받나요?

대기업의 경우엔 한 직군으로 묶어서 채용한 후, 지원을 받아 원하는 팀에 배정하는 식이라고 들었다. 신입사원 OT 기간에 본인이 희망하는 팀이 마케팅팀인지 영업팀인지 적극 어필하는 것이 좋다고. 신입일 땐 아예 영업부터 시작하게 하는 곳도 있다. 신입이 당장 마케팅 전략을 짤 순 없지 않나. 영업과 마케팅은 칼로 무 자르듯 싹둑 나눌 수 없는, 공통분모가 많다. 작은 회사에선 영업과 마케팅을 동시에 해야 할 거다.

 

# ‘마케터가 이런 일까지 하게 될 줄 몰랐다’ 싶은 업무가 있나요?

클라이언트를 위해 KTX 특실의 뷰가 좋은 창가 쪽 자리를 예매하고, 좌식에 룸으로 나눠진 식당을 예약해서 차로 모신 뒤, 다시 기차역까지 바래다 드리는 일? (그래서 운전 면허 필수!) 클라이언트의 입맛을 파악해 메뉴를 정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진지) 오프라인 행사를 할 땐 줄자 들고 섭외 장소에 답사 가고, 다과를 준비해 현장에 온 클라이언트들에게 음료수 캔을 따서 나눠주는 것도 마케터의 몫이다.

 

# 언제 회사를 가장 때려치우고 싶나요? 보람도 있긴 있는 거죠…?

클라이언트한테 무시당했을 때? ㅈㅎㅁ급의 클라이언트들이 안 되는 걸 되게 해놓으라며 악을 쓸 땐 나도 같이 물병을 던지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도 때려치우고 싶은 일 한 가지를 겪어내고 나면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찾아온다. ‘000님은 믿고 맡길 수 있어요’, ‘알아서 해주세요. 늘 잘 해주셨으니까요’라는 클라이언트의 반응을 들을 때면 정말 행복하다. 퇴사 욕구는 늘 차고 넘치지만 그런 순간을 생각하며 견디고 있다.


[848호 – 을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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