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레이디 버드> Lady Bird

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시얼샤 로넌, 로리 멧칼프

 

 

지구의 자전축이 오로지 나를 향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온 우주가 나서서 나의 앞날을 보살피고, 매 순간의 선택이 항상 옳은 결과만을 낳을 거라 믿었다. 내가 가장 특별하고 빛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나이, 그러니까 열일곱 무렵의 기억이 모두 그랬다.

 

과연 이름도 비범한 주인공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시얼샤 로넌)은, 그때의 향수로 스크린을 흠뻑 물들인다. 크리스틴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평범함에 쉬이 권태를 느낀다. 고향 ‘새크라멘토’의 전원적인 정경은 지루하기만 하고, 가톨릭 학교의 엄격한 규율이 썩 피곤하다.

 

집안의 오래 묵은 가난이 끔찍이 싫고, 철로 옆 ‘구린’ 집에 사는 것이 창피해서 다른 집에 산다는 거짓말까지 한다. 학교까지 차에 태워 데려다 주는 아빠가 고맙지만, 교문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린다. 제법 미안하기는 한지, “걷는 게 좋아서”라는 변명과 함께.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름 ‘레이디 버드’는 이토록 보편성을 탈피하고픈 소녀가 가진 욕망의 총체다. 부모라는 고유의 뿌리를 부정하고, 본연의 정체성을 애써 감추려는 이 행위는 부디 타인이 ‘내가 규정한 나’로 존중해주길 바라는 어떤 선언과도 같다.

 

때문에 크리스틴과 맥퍼슨 사이를 가로막는 ‘레이디 버드’란 예명은, 열일곱 소녀가 새로이 창시하고 싶었던 또 하나의 소우주로 강렬히 자리매김한다. 어디로든 훨훨 날고 싶은 레이디 버드의 가장 큰 적수는 엄마 매리언(로리 맷칼프)이다. 뉴욕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딸에게 “지금 상태로는 시립대가 아니면 감방밖에 못 간다”는 악담을 퍼붓고, 아침 샤워에 수건을 두 장 쓰는 일에도 버럭 성질을 낸다.

 

레이디 버드의 생각, 행동, 말투, 옷차림 뭐 하나 제동을 걸지 않는 일이 없다. 물론 그녀의 지대한 관심이 모두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관객들은 안다. 레이디 버드와 그 시절의 우리만 몰랐을 뿐.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 그런 엄마의 말에,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이라 응하는 딸.

 

보통의 엄마와 딸 사이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대화가 아닐까. <레이디 버드>는 열일곱 크리스틴의 명백한 성장담이다. 더 정확히는 ‘레이디 버드’가 ‘크리스틴’이 되기까지의 여정이다. 어린 새, 레이디 버드의 성장. 이쯤되면 소설 데미안의 유명 구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성장 플롯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모녀의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한 이 영화는 이미 대단한 보편성을 획득했다. 다만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감독 그레타 거윅은 결말부를 영리하게 비틀어 <레이디 버드>만의 특별함을 선보이기에 이른다. 단순히 새가 알을 깨는 분투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큰 핵심이다.

 

기어이 알을 깨고 둥지 너머 멀리 날아간 새가, 그 언젠가 자신을 품었던 알의 껍질을 정성스레 주워담는 장면을 영화는 포착한다. 마침내 뉴욕의 땅을 밟은 레이디 버드는 비로소 ‘크리스틴’이라는 예쁜 이름을 되찾는다. 일요일 아침에 제 발로 교회를 찾아가고, 그 자리에서 새크라멘토를 처음 운전했을 때의 양가적인 감정을 떠올린다.

 

용기내어 건 전화는 응답이 없지만, 수화기 너머 음성 사서함에 “엄마,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토록 동경해 마지 않았던 삶이 실은 잿빛 신기루였고, 내가 떠나온 고향에 언제고 나를 반겨줄 가족과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너무 잘 알게 됐다. 엔딩 크레딧이 오른 후, 어쩐지 낯 간지러워 꼭꼭 숨겨두었던 낡은 일기장을 펼쳐 든 기분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레이디 버드였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은 이미 크리스틴으로 훌쩍 자랐겠지만. 깨뜨린 알과 떠나온 둥지의 흔적을 괜스레 매만지며 우린 이제부터 더 단단한, 깨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겠지.

 


# 존재만으로도 찬란했던 그 시절, 특별한 이야기

 

MOVIE <갓 헬프 더 걸>

거식증에 걸린 주인공 이브는 정신병원에서 생활 중이지만 음악에 대한 꿈만은 포기하기 어렵다. 그런 그녀가 확고한 음악적 신념이 있지만 혼자서는 여력이 부족한 제임스, 노래를 만들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캐시를 만나 마침내 밴드를 결성한다. 사랑하는 친구들, 그리고 음악의 힘을 통해 이브는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게 된다.

 

 

 

ALBUM The Regrettes <Feel Your Feelings Fool!>

미국의 4인조 혼성 틴에이저 밴드 더 리그렛츠의 첫 정규앨범. 연주에서부터 청소년들의 장난기와 반항기가 물씬 느껴진다. 특히나 10대만의 대담한 시선이 깃든 가사가 인상적. 수록곡 ‘Seashore’에서는 자신을 그저 어린 애 취급하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놓고,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비판까지 아우른다.

 

DOCUMENTARY <땐뽀걸즈>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 마지막 ‘댄스 스포츠’ 대회를 앞둔 거제여상 댄스 스포츠 동아리 ‘땐뽀반’의 열여덟 소녀들과 이규호 선생님의 유쾌한 도전기. 엄청난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입상이 목표도 아니다. 난생처음으로 열심히 하고픈 무언가가 ‘땐스’일 뿐이다. 빛나는 땀방울과 경쾌한 스텝으로 빚어진, 픽션보다 더 아름다운 논픽션 스토리.


[848호 – Culture Guide]

INTERN 최은유 metaphor@univ.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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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게 지어준 이름, 영화 <레이디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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