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쯤, 이 지면에 ‘인간관계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네 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대강 이런 이야기였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말고 ‘나’를 중심에 두는 삶을 살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을 정리해야 한다.

 

3년 이상 교류가 없었던 사람들의 번호와 카톡부터 다 지워버려라! 그들은 실존하는 관계가 아니라 2D에 불과하다! 그렇게 패기 있게 독자들을 선동(?)해놓고 이제 와서 이런 고백을 하려니 민망하기 짝이 없지만, 사실 나는 끝내 핸드폰에서 몇 명의 이름을 지우지 못했다(이래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것이다).

 

한때는 누구보다 친밀했지만 지금은 내 옆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추억과 미련이 덕지덕지 남는 것처럼 우정이 지나간 자리도 말끔하지만은 않다. 외로운 어떤 날에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졌던 옛 친구가 떠오르고, 그 친구를 생각하다 보면 ‘그토록 친하게 지냈지만 결국은 멀어지고 말았지’라는 결론에 이르러 쓸쓸해지고 만다.

 

감성 터지는 새벽녘에 그들의 사진을 보게 되기라도 하면 어찌나 기분이 멜랑콜리 해지던지. 이제는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나의 옛 사람들. 자니…? 나는 그들을 ‘연락이 끊긴 지는 오래됐지만 지워버리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인연들’의 목록에 올려놓고 핸드폰과 마음 한구석에 고스란히 내버려 두었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 무덤덤하게 정리할 수 있을 때까지 가지고 있을 심산이었다. 앞으로도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어떤 연락이나 만남도 없다면, 추억의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풍화되어 갈 이름들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더니, 1년 전쯤 그 목록에 있던 J의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J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건너 듣게 되었고, 축하 인사만은 꼭 직접 해주고 싶어서 6년 만에 연락을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도 안 변했다”는 말을 서른 번쯤 하면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한 달 뒤에 청첩장을 받았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에 꼭 가겠노라고 약속했다.

 

결혼식 당일. 자동차들로 미어터지는 남부순환도로를 뚫고 예식장에 늦지 않게 도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제동이 걸렸다. “인출할 금액을 입력하십시오.” ATM 화면, 5와 10 사이에서 내 손가락이 한참이나 방황했던 것이다. 5만원을 내기엔 ‘그래도 예전에 친했는데’ 싶어서 마음이 좀 그렇고, 10만원을 낼 만큼 절친한 사이인가 물으면 대답하기 어려웠다.

 

 

6년이나 아무런 교류가 없었으니까. 지금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어선 안 될 사이도 아니었다. 5만원과 10만원 사이에 있는 애매한 관계랄까. J가 친구인지 지인인지를 헤아리며 금액을 고민하는 내 모습이 조금 싫었지만, 솔직하지 못한 것은 더 싫었다. 나는 결국 다섯 장의 지폐를 뽑아 봉투에 넣었다.

 

축의금을 내고 식장 안으로 들어가자, 둥그런 테이블에 하객들이 끼리끼리 모여 앉아 있었다. 당연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는 식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사회자의 안내 멘트, 두 어머니의 화촉 점화 순서가 지나고 드디어 행진곡이 울려 퍼질 타이밍이 왔다. 그런데, 어느새 테이블 위에 식기가 세팅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밥을 여기서 먹는 건가? 모르는 사람들이랑 삥 둘러앉아서? 벌써 체할 것 같은데. 집에 갈까? 왜 그릇을 또 주지? 설마… 코스 요리? 코스 요리면 밥값이 무척 비쌀 텐데? 나는 5만원밖에 안 냈는데? 그 순간 J가 신랑의 손을 잡고 행복한 표정으로 입장을 시작했다.

 

나는 박수를 열심히 치며, 저들이 주례 선생님 앞에 당도하면 이 식장을 빠져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낸 돈보다 더 비싼 음식이 앞에 놓이기 전에! 다음 날 친구는 나의 우려가 진짜였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 예식장의 밥값은 10만원이라고 했다. J에게서는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괴로웠다.

 

“밥값이 10만원인데 5만원만 낸 나를 양아치라고 생각했겠지? 나에게 실망한 게 틀림없어. 나 진짜 밥 안 먹긴 했는데….” 자꾸 그날을 회상하며 지질하게 굴자, 친구들이 위로하듯 새로운 가설을 몇 개 던져주었다. “그 친구는 네가 온 걸 모르는 게 아닐까?” “축의금을 로비에서 냈다며. ‘가방 순이’한테 안 주면 바로 부모님이 가져가버리잖아.” “중간에 나왔으니까 단체 사진도 안 찍었을 테고.” ‘그런가’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중대한 사실 하나를 기억해냈다.

 

“얘들아. 나 신부 대기실에서 사진도 찍었어.” 채팅방이 잠깐 조용해졌고, 친구 한 명이 급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냥 신혼을 즐기느라 정신없나 보다~ 그렇게 생각해.” 나는 축의금 봉투에 얼마를 넣을지 고민하다 결국 5만원을 넣었고, J는 어떤 이유에서든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

 

추억 속에서 예쁘게 포장돼있던 옛 친구와의 재회는 우리도, 관계도 모두 변했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주었다. 나는 마음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연락이 끊긴 지는 오래됐지만 지워버리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인연들’ 목록을 비워내기로 했다.

 

감정은 되감기를 할 수 없으니, 지나간 사람은 지나간 대로 두는 게 가장 좋은 엔딩일지도 모른다. ‘모든 일은 딱 한 번씩만 일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카톡 프로필에 쓰여 있는 문장이다. 관계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그 순간에 충실할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다. 그걸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깨달음은 언제나 값을 치르는 법이다.


[848호 – think]

Editor 김슬 dew@univ.me

Illustrator 키미앤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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