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은 장소로 기억된다. 이십 대 초반,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장소는 단연 캠퍼스다. 여기는
구 남친이랑 이어폰 나눠 끼고 처음 손잡았던 벤치. 저기는 과 생활 적응 못 할 때 사람 마주치기 싫어서 숨어 있던 DVD실. 공간마다 서사가 있어서 캠퍼스를 떠올리면 괜히 아련해진다. 봄이다. 캠퍼스가 한껏 아름다워지는 계절. 문득 묻고 싶어진다. 여러분은 캠퍼스에 어떤 추억을 가지고 있나요?
# 경희대 경희여고 가는 길
십 분짜리 봄 소풍
4월, 벚꽃이 만개해서 너도나도 꽃놀이를 간다. 나 빼고! 평일에는 학교와 과제, 주말에는 알바와 동아리. 나도 한 번쯤은 팍팍한 일상을 벗어나 꽃놀이를 하고 싶은데. 화창한 날에 우울 모드에 빠져 있는 내가 답답했는지, 친구가 말했다. “야, 우리 호텔 관광대학 뒤쪽에 경희여고 가는 길로 가볼래? 다들 그쪽으로 꽃구경 온다더라!”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학교 어느 곳보다 많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불쌍한 학생들의 사정을 학교가 알아줬나보다. 학교에 이런 예쁜 길이 숨어 있을 줄이야. 수업 끝나자마자 곧장 본관 정문으로 나가느라 여태 몰랐다. 한숨 돌리고 보니 송송히 핀 벚꽃이 참 예뻤다. 생각해보니 하늘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고마워 친구야. 비록 십 분 만에 끝난 봄 소풍이었지만 큰 위로가 됐어. 박지영 18
교복과 벚꽃을 동시에 보면 아련해져요
내애-가! 사망년(3학년)이라니! 그러게. 시간 참 빠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캠퍼스에서 우리는 울상이었다. 대학생 중에서도 고학년이라고 불리게 된 우리의 처지가 못마땅했던 탓이다. 별 이룬 것도 없는데, 벌써! 이런 우리의 숙연한 분위기를 무찌르려는 듯 맞은편에서 활기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둔 곳엔 교복을 입은 경희여고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별것도 아닌 걸로 깔깔 웃어댔다. 왜 우리는 이렇게 우울해하고 있을까. 똑같은 학생 주제에. 가까이서 보니 위에는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아래는 학교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그 익숙한 언발란스를 보면서, 나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야, 나는 만날 추리닝 입고 학교 갔다? 나도, 교복이 안 맞아서 어쩔 수 없었어. 아, 너도? 어느 새 우리는 그 귀여운 학생들을 따라 웃고 있었다. 김예진 16
# 전북대 캠퍼스 둘레길
산책 한 번에, 고향 생각 한 번
긴 휴학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친한 동기들은 모두 학교를 떠나 있었다. 꽃이 만개한 캠퍼스는 어딜 가든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내가 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학교 뒤편 건지산에 만들어진 둘레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울창한 나무 사이로 드리우는 따사로운 햇볕을 쐬고, 평소엔 관심없던 풀꽃을 하나하나 유심히 바라봤다.
어느덧 삼삼오오 운동을 위해 모인 어머님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이 이제 고3인디, 전북대라도 갔으면 쓰겄는데….” “허허허, 더 좋은 곳 갈 거예요~” 이런저런 만담을 나누다 보니, 쓸쓸했던 마음이 한결 포근해진 기분이 들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도 나고. 그래, 혼자면 뭐 어때. 오늘은 꼭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며, 서둘러 다음 수업을 위해 강의실로 향했다. 황기연 12
고생 끝에 햄버거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는데, 신입생 때 꼭 완주를 해야만 했던 학교 둘레길 코스가 떠올랐다. 무려 11.4km, 완주를 하려면 4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물론 힘든 기억밖에 없지만, 빽빽이 심어진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를 다시 마셔볼 때가 된 것 같았다. 나는 1번부터 15번까지의 코스를 쉴 틈 없이 돌았다.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고된 여정 끝에, 스스로가 너무 대견해서 SNS에 완주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 그때 한 선배가 댓글을 달았다. “그거 다 돌아도 600칼로리밖에 안 빠져. 햄버거 하나면 뚝딱.” 차라리 헬스장엘 갔어야 했나…. 갑자기 배가 미치도록 고파왔다. 곧장 패스트푸드 가게에 가서 햄버거 세트 하나를 주문했다. 둘레길 풀코스와 맞바꾼, 내 생애 가장 눈물겨운 햄버거였다. 이희진 14
# 이화여대 한우리집 언덕길
지금은 이 노을만 느껴줘
그날은 정말, 완전 꽝이었다. 잘했어야 하는데, 다 망했다. 중요한 발표가 두 개나 있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시원하게 말아먹었고, 시간에 쫓겨 급하게 밥을 먹다 체하기까지 했다. 체한 채로 팀플 회의에 참석해서 얼떨결에 팀장을 떠맡아 버렸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려는데, 기숙사는 또 왜 이렇게 높이 있어! 그날따라 언덕 꼭대기에 있는 기숙사가 원망스러웠다.
터덜터덜 땅만 보고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역사관 기와집 뒤로 벌건 해가 걸려 있었다. 노을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 경치에 눈물이 핑 돌았다. 뭔데 이렇게 예쁘냐. 그때 상쾌한 바람이 언덕을 타고 불어와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그대로 잠시 그곳에 서 있었다. 정신없는 하루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도록, 잠시 동안만이라도. 김수현 16
엄마가 그리워지는 언덕
나는 기숙사에 산다. 그래서 가족을 자주 볼 수 없다. 집에 안 간 지도 벌써 넉 달째. 대신 부모님한테 안부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특히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는 꼭 통화를 한다. 오늘도 학교가 끝난 후 기숙사로 올라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 해?” “나? 나는 별일 없지.” 사사로운 이야기가 오간다. 언덕을 오르는 게 숨이 차 나는 잠시 멈춰 섰다.
하늘이 붉게 피어 올랐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엄마가 보고 싶고, 집에 내려가고 싶었다. 엄마와의 통화는 이번에도 역시 나의 징징거림으로 끝이 났다. 전화를 끊고 나니 괜히 걱정만 안겨 드린 것 같아 뒤늦게 죄송했다. 그래서 문자를 한 통 남겼다. “그래도 엄마 나 잘 지내. 여기 경치도 좋고. 지금 하늘 진짜 예쁘다. 기다려봐. 내가 사진 찍어 보내줄게.” 김혜정 17
# 연세대 대운동장
봄날의 피크닉
와, 날씨 좋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이 깨끗한 하늘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완벽한 날씨는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5연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 수업을 함께 듣는 동기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만나자마자 이런 날 칙칙한 강의실에서 뭐 하는 거냐며 한탄했다. 다들 어디론가 놀러 가고 싶은 눈치였지만, 수북이 쌓인 과제를 보니 그럴 엄두조차 안 났다.
수업이 끝나고 한 친구가 말했다. “얘들아, 우리 학교에서 피크닉 할래?” 우리는 잠깐 시간을 내어 운동장 벤치에 앉아 해가 저무는 것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MT에 온 기분이랄까! 조금만 놀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로 했지만, 기분이 너무 좋은 탓이었을까. 우리의 이야기는 밤늦게까지 끝날 줄을 몰랐다. 문서영 13
오늘도 애써 삼키는 밤
‘안타깝게도 이번 공채에서는…’ 오늘도 광탈.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진 않았다. 친구에게 슬쩍 물어보니 같은 처지였다. 괜히 우울한 마음에 캔맥주와 과자를 사 들고 늘 그랬듯이 운동장으로 향했다. 까만 밤하늘에 뜬 달을 보며 친구는 말했다.
“그래도 인적성이나 면접 때 떨어지는 게 낫지, 날 서류로 평가하는 게 억울해. 쪽 팔리고.” “아냐, 어차피 떨어질 거라면 빨리 떨어지는 게 나은지도 몰라. 다른 기업 잘 준비하라는 건가 보지, 뭐.”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어쩌면 그 순간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취준생에게 친구라는 존재는 왠지 거북하다. 안 보면 서운하지만 만나면 우울해지는 이야기만 하니까. 그래도 오늘 같은 날엔 내 곁을 지켜줄 친구가 있어 진심으로 고마웠다. 유혜림 13
# 건국대 고전 음악 감상실
팍팍한 일상 속 유일한 문화생활
“아직도 과방가서 자? 따라와 봐” 동기가 소개해준 고전 음악 감상실은 내 우주공강을 메워줄 최적의 장소였다. 어둡고 아늑해서 꿀잠을 자기 딱 좋았다. 그런데 어제 웬 오케스트라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이상하다. 클래식은 정말 재미없는데. 보고 있으니 ‘지휘자 대단하네. 바이올린 화려하네. 노래도 좋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플레이리스트에 교향곡이 들어섰다. 음악실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우도 하고 매일 올라오는 선곡표에 노래도 들어봤다. 마치 내가 교양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클래식을 듣다니! 조만간 또 가야겠다. 듣다가 잠이 들더라도 가야지. 이게 내 유일한 문화생활이니까. 윤진영 17
넓디 넓은 학교에서 가장 마음이 편한 공간
일주일 중 수요일이 가장 싫다. 전날 야간 알바 후 수업 4개를 연달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닥난 체력으로 1교시 수업에 출석하려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수업과 수업 사이 잠깐 짬이 나면 내가 곧장 달려가는 곳이 있다. 바로 학생회관 2층 고전 음악 감상실.
강의실에선 좀 멀지만 학교 안에서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다. (도서관은 다들 공부하는 분위기라 휴대폰 보고 빈둥거리기에 눈치가 보인다) 거슬리는 목소리도 없고, 부대끼는 사람도 없는 아늑한 쇼파에 누워 생각한다. 나도 한때 에너지 넘치는 신입생이었는데. 언제부터 사람을 만나는 게 귀찮아져 버렸을까. 김나영 13
# 동국대 도서관 옥상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추억만 만들었다
흡연자만 가득한 벤치를 피해 도서관 옥상으로 올라왔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없나보다. 남산이 예쁘게 빛난다. 남산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도서관에 있던 친구가 올라왔다. 나는 친구한테 올라오라는 연락을 안 했는데. 어떻게 마음이 또 맞아버렸네. 시험 기간에는 다들 척하면 척이다.
친구가 뜬금없이 말했다. “야, 우리 돈 많이 벌면 남산이 보이는 집에서 살자.” “집은 둘째치고, 남산타워 레스토랑부터 가보자.” “그 전에 시험이나 잘 치자. 제발.”, “근데 배고프지 않냐?” 결국 오늘도 밥만 먹고 집에 간다. 공부를 안 해서 훗날 남산이 보이는 집에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괜찮아, 남산에 관련된 추억만큼은 부자니까. 울 아빠가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랬어. 이은민 16
나만의 독서 명당
한 시간째 소설을 읽다 보니 배가 고프다. 가방 속 과자 봉지를 잡았다. 바스락 소리가 너무 커서 옆 사람이 쳐다봤다. 책도 읽고 싶고 과자도 먹고 싶은데, 책을 집으로 가져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이 아니면 이 소설을 다 못 읽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읽던 책을 대출해서 옥상으로 올라왔다.
햇살도 따듯하고 바람도 선선한 것이 좋다. 진작 나올 걸 그랬나보다. 벤치에 앉아서 과자를 마음껏 먹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역시 뭘 먹으면서 봐야 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니 어느덧 해가 기웃기웃했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했다. 이곳이 독서 명당일세. 또 와야겠다. 내일은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와야지. 정솔빈 16
# 중앙대 안성캠퍼스 고니탕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
우리는 천연기념물 고니가 사는 작은 인공 호수를 ‘고니탕’이라고 부른다. 매년 4월이 되면 국악대 앞 벚꽃길을 따라 벚꽃 축제를 여는데, 바로 뒤에 있는 고니탕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날 밤, 나는 동그랗게 숲이 우거진 호숫가에 앉았다.
좋은 밴드의 좋은 음악을 들으며, 한 손에는 맥주 다른 한 손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서. 밤하늘을 비추는 호수의 풍경이 어찌나 로맨틱하던지. 때마침 새소년 밴드의 ‘긴 꿈’이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정말로 그때는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shoot a movie with you”라는 ‘긴 꿈’의 가사처럼. 나도 모르게 뭉클해져서는 이런 생각을 해버렸다. ‘아, 이게 청춘이라는 건가?’ 정다빈 17
넌 예술이 뭐라고 생각해?
예술대에 입학한 1학년 1학기, 내겐 갓 친해진 동기들 중 ‘예술’이라는 것에 유독 예민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고니탕 벤치에 앉아 맥주를 한 캔씩 들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맥주를 홀짝이던 동기가 침묵을 깨고 던진 한 마디. “넌 예술이 뭐라고 생각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에 순간 당황했다.
갓 신입생이 된 내게 예술이란 그저 ‘입시’였고, 나는 입시를 준비하며 만든 나름의 개똥 철학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결국 밤, 호수, 새내기, 예술대라는 분위기에 취해 내가 ‘아티스트’가 된 기분마저 들었다. 예술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고니탕을 보면 소위 말하는 예술 ‘뽕’ 에 한껏 취해 있었던 때가 생각난다. 오재현 17
[849호 – special]
INTERN 최은유 PHOTOGRAPHER Leobinus
학생 에디터 김은지 김혜원 문소정 정다빈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주거정보 다 있다
김제덕 선수에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의 비결을 물어보았다.
운동하는 대학생 세 명과 에디터 셋이 직접 먹어보았다.
전문 트레이너가 알려주는 운동의 진실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패션 아이템
이 정보를 몰라 대학생 대부분이 손해 보고 있다던데?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하게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글로벌 기준 7.1천만, 국내 기준 326만 회의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한 LG전자의 광고 비하인드
펜싱의 매력은 찌르는 맛이죠
지브리의 팬을 자처하던 대학내일의 에디터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어떤 종류의 희열은 달리는 행위를 통해서만 충족된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친절하고 정직한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