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가 “도비는 자유예요.” 짤을 보내며 퇴사를 알려왔다. 문득 부모님에게 할부로 쾌척했다던 고급 텔레비전과 청소기가 떠올랐지만, 우선 입을 다물었다. 취업한 지 8개월쯤 됐을 때, 친구는 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과장님이 원하는 “이런 건 좀 알아서 해라.”의 ‘이런 것’이 뭔지 도통 모르겠고, 열심히 해도 혼나기만 하니까 점점 의욕을 잃어버린다고 했다.
“야, 나는 내가 이렇게 일을 못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친구의 표정에는 배신당한 이의 억울함과 당황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일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장렬히 배신당하곤 한다. 돈을 받고 하는 노동에는 그만큼의(혹은 그보다 더한) 결과물과 노력이 요구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형편없는 면면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생 때까지 나는 스스로 아주 똑똑하진 않아도 중간은 가는 애라고 평가해왔다. 그리고 첫 출근, 이틀도 필요 없었다. 딱 하루 만에 그 믿음은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몰랐는데, 나는 일을 굉장히 못하는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손이 느리고,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처리하는 능력 따위 제로.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업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들을 막내가 빠르게 쳐내줘야 하는데, 렉 걸린 컴퓨터처럼 버벅거리는 통에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일의 진행 속도가 더디니 상사는 자꾸 재촉했고, 당황한 나는 실수를 반복했고, 그걸 보는 상사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문제는 또 있었다. 처음 해보는 사회생활에 잔뜩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A도 하고 B도 하고 C도 하고 D도 해야 돼. 알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받아 적다가 중간에 놓치면 그게 뭐였는지 묻지 못하는 식이었다.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이라 모욕적인 언사가 아무렇지 않게 오갔고, 내 두부 멘탈은 잘게 으깨져 순두부가 된 지 오래였다. “저 그거 잘 모르겠어요. 다시 설명해주세요.”라는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모르면 물어보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무 긴장해서 일을 망치고, 일을 못했기 때문에 욕을 얻어먹는 악순환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됐다.
“너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잘하는 게 없네.” “너 진짜 어떡하려고 그러냐.” “야, 이 정도면 고문관이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내가 조금의 가치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학교를 다니고 알바를 할 때만 해도 중간은 간다고 자부했는데, 그곳에서 발견한 나는 최악이었다. 무능하고 남에게 민폐만 끼치는 고문관. 화장실에 숨어서, 새벽에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매일 밤 꺽꺽 울었다.
모든 게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한 달 만에 잘렸다. 그나마 나를 아껴주던 선배가 조심스레 해고의 변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원래 1년 경력이 있는 친구를 뽑으려고 했는데, 네가 면접을 잘 봐서 경험이 없는데도 뽑았어. 그런데 그 자리는 최소 1년은 해봤어야 소화할 수 있는 자리였던 것 같다. 너에겐 당연히 버거웠을 거야. 오히려 우리가 미안해.” 눈꼽만큼 위로가 됐다.
선배는 덧붙였다. “잘 맞는 팀을 만나면 넌 잘 할 애야.” 해고당하는 마당에 그런 말을 믿을 수 있을리가 있을리가. 가능성이 있으면 왜 잘라. 답이 없으니까 자르는 거지! 덜 아프라고 해주는 말이겠거니, 마음만 받기로 했다.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대로 다 그만두고 고향 집으로 내려가면 자괴감에 익사하고 말리라는 것이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선배가 소개해준 다른 팀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오직 하나. 남들을 덜 고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에서의 생활은 이전과 달랐다. 고문관 소리를 듣는 일도 없었고, 가끔 칭찬도 받았다. 터널을 뚫고 지옥을 탈출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어떻게 그렇게 바뀌었냐고? 실제로 일을 하는 요령과 눈치도 약간 늘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성향과 맞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속도보다 꼼꼼함이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느린 속도를 정확함으로 커버할 수 있었고, 사소한 실수는 관대하게 넘어가는 분위기라서 긴장으로 일을 망치는 경우가 적었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전에는 꽁꽁 숨어 있던 장점들이 발휘되었고, 저절로 나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여러 가지 이유로 퇴사를 선택했지만, 그곳을 나올 때 나는 절망스럽지 않았다.
내가 어떤 곳에서는 고문관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꽤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힘들게 당도한 일터에서 기왕이면 빠르게 적응해 제 몫을 해내는 게 모두에게 좋은 일임은 확실하다. 그럴 확률이 반반이라는 게 문제지. 운이 나쁘면, 어떤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실망할 수도 있다. ‘일 머리’가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 ‘일못’ ‘고문관’ 등등의 수치스러운 별명을 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나라는 사람 전체가 답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 일에 필요한 자질과 나의 특성이 맞지 않을 뿐. 어차피 건물주님이 아니라면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우리네 운명.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잘한다’는 소리 들으며, 그럭저럭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100세 시대의 과제가 아닐까.
[852호 –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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