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터뷰를 읽고 있을 대다수는 치열한 입시 전쟁을 치러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스스로의 수능 성적에 만족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다들 한 번쯤 해봤을걸? ‘서연고서성한…’을 주기율표보다 정확하게 꼽아보다가 시무룩해지고, 때론 인서울 4년제를 다니는 스스로를 우쭐해하며 지방대를 ‘지잡대’로 깎아내리고. 대학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다시 대기업에 입사하려 전전긍긍하고.

장강명은 신작 『당선, 합격, 계급』 에서 우리가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믿어온 시험 제도를 파헤친다. ‘고시’에 비견되는 ‘언시’를 뚫은 기자였다가, 그 힘들다는 문학 공모전에도 네 번이나 당선된 작가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공채와 공모전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가 시스템에 반기를 든 이유는 딱 하나다. 한국 사회가 만든 간판 차별이 싫어서.


 

 

# 조선에 과거 시험이 있다면 현대엔 공채가 있다

 

매번 메시지가 뚜렷한 책을 내시는데, 『당선, 합격, 계급』도 그래요.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나요?

한국 사회가 유사 신분제 사회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걸 지탱하는 두 개의 큰 기둥이 ‘시험’과 ‘간판’이고요.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문학 공모전과 공채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메시지가 뚜렷해졌네요.

 

독자들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헷갈려 할 정도로 소설을 사실적으로 쓰시잖아요. 이번 책 역시 소설로 각색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르포 형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질문을 토대로 글을 써요. “한국이 싫은데 어쩔 거냐?”라는 질문을 『한국이 싫어서』로, “댓글 문화 이대로 놔둬도 되느냐?”라는 질문을 『댓글부대』로 풀어내는 식이죠. 이번 책은 공모전과 공채 시스템에 대한 내용이에요. 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내용을 담고 있는 거죠. 그래서 꾸며낸 이야기보단 모든 이야기가 진짜라는 것을 보여줘야 글에 힘이 실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내 분이 자료 정리를 도와주시다가 “두 번 다시 논픽션 쓰지 마”라고 말씀하셨다면서요?(웃음) 쓰다가 후회했을 정도로 힘들었어요.(웃음)

공모전과 공채 시스템에 대한 논쟁거리를 던지는 책이잖아요. 책 내용에 대해 반박하실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최소한 디테일은 비판 받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얘기하려는 바에 대한 비판은 괜찮지만, 팩트가 허술하다는 비판은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료 조사를 하고 책을 썼어요.

 

그런데 작가님은 책에서도 밝혔듯 문학 공모전에서 네 번이나 수상하신, 공모전 제도의 최대 수혜자이신데요. 내부인으로서 한국 출판계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주셔도 괜찮은가요…?

저도 욕먹을 각오를 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눈총을 받진 않았어요. 인터뷰 섭외할 때 피하거나 아예 안 한다고 거절하신 분들은 있어요. 꼬치꼬치 캐물으니까 인터뷰 도중에 화를 내신 분도 있긴 했고요.(웃음) 그런데 그런 분들 소수고, 오히려 ‘이런 것까지 답을 해줄까?’ 싶었던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해준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학과 문단에 애정이 크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뒷짐 지고 물러서 있기보다, 잘못된 점을 고쳐나가자고 이야기하는 게 진짜 애정이라고 생각하신 거죠?

정확합니다. 『한국이 싫어서』를 썼을 때, 주변에서 한국이 그렇게 싫으냐고 많이들 물어보셨어요. 그런데 제 생각엔 한국 사회에 애정이 없는 사람은 그런 글도 안 쓸 것 같거든요. 저는 한국이 괜찮은 나라라고 생각해요. 오래 묵은 단점들이 있긴 하지만 다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보진 않습니다.

환자에게 애정이 있는 의사라면 어떻게든 고쳐보기 위해 수술도 하고 약도 주는 게 맞죠. 환자가 약 먹기 싫어한다고 “그러세요~”라고 하는 게 환자를 위한 건 아니잖아요. 환자가 조금 고통스러워할지라도 치료해서 환자를 건강하게 만들듯, 이 책도 그런 마음으로 썼습니다.

 

 

공모전과 공채의 뿌리가 조선 시대 과거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사회의 창조적 역동성을 막고, 온 나라의 젊음을 빨아들인다는 점에서 정말 유사하더군요.

과거제도가 요즘의 공모전이나 공채 제도와 비슷하죠. 조선은 망하기 직전까지 과거를 시행했더라고요. 그럼에도 조선 말기, 과거를 치렀던 사람들한테 세상이 바뀌는 중인데 왜 아직도 과거를 준비 하느냐고 물을 순 없겠다 싶었어요. 저도 그 상황이라면 과거를 봤을 것 같거든요. 과거에서 떨어지면 제대로 된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았을 테니까요.

조선은 사회적으로 인정 받기 위해 과거를 치러야만 하는 식으로, 유능한 인재들을 소모적으로 써버렸어요. 지금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여전히 명문대나 대기업에 들어간 사람을 더 대접해주고, 나머지는 패배자 취급을 하죠. 이건 누구 한 명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통째로 잘못돼 있는 거예요. 시험을 만든 사람도, 시험을 보는 사람도 얽혀 있다 보니 어느 한 쪽만을 비판할 수도 없는 거죠.

 

뽑힌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기고는 하죠. 시간이 흐르면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요.

차별은 공채나 공모전 제도의 필연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이 아니에요. 소수에게 기대를 집중하면 소수는 우월감을 느끼고, 뽑히지 않은 다수는 열패감을 느끼면서 계급 사회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이런 류의 신분제는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해요. 상속이 만드는 신분제 보다는 낫다고요.

그래서 시험 결과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건 정당하다고 느끼는데, 그렇지 않아요. 시험제도가 그렇게 정교하지 않거든요. 시험이 수시로 있지도 않고, 한번 통과해 놓으면 그로 인해 얻은 신분이 너무 오래가는 것도 문제예요.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시기를 놓치면 40대 후반에 대학에 갈 수도 있을 텐데, 그건 잘 인정 안 해줍니다. 대기업 입사도 그렇고요.

 

시험으로 계급을 나누게 되면서 상식의 선도 같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학교 다닐 때보다 서열화가 더 촘촘해진 것 같아요. 대학 순위를 ‘서연고서성한…’ 이런 식으로 나눠놓은 걸 보고는 너무 기가 막혔죠. 자신보다 서열이 낮다고 생각하면, 대놓고 얕잡아 보기도 하고요. ‘지잡대’, ‘편입충’ 같은 것들이 그 예죠.

기존의 윤리관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것, 속으로 차별을 하더라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던 것에 ‘잡’이니, ‘충’이니 하는 멸칭을 붙이기 시작했더군요. 남보다 한 계단이라도 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 받고 싶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똑같은 위치에 설 수 없다면, 대체 어떤 기준으로 순서를 세워야 그나마 공평할까요?

본인의 능력은 본인의 실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맞아요. 가장 가까운 실적이라면 더 정확하겠죠. 야구선수의 지난 시즌 성적, 아티스트의 지난 앨범 판매량처럼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19살 때 수능 쳐서 어느 대학에 갔느냐로 사람을 평가하잖아요. 알다시피 시험이라는 건 그날 컨디션과 운에 따라 좌우돼요. 그럼에도 그 결과가 한 인간에 대한 평생의 인식을 만드는 거죠.

 

 

# 공채로는 뽑힐 수 없는 인재들이 있다는 것

 

취재하시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시험을 하나만 꼽아주신다면요?

9급 공무원 국어 시험문제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제가 풀 수 있는 게 거의 없더라고요. 저도 나름 문학상 여러 개 탄 소설가이자 기자로 십 몇 년을 살았잖아요?(웃음) 그런데도 못 풀겠더라고요. 충격적이었어요. 시험을 위한 시험인 거죠. 삼성 입사 시험도 놀라웠어요. 거기에 쏠린 관심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취준생이 관심을 갖는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시험 당일 시험장 근처에 취재진이 몰린 걸 보곤 깜짝 놀랐어요. 이게 대한민국 언론사 50개가 모여서 취재할 일인가 싶더라고요. 한국이 시험 사회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어요.

 

결국 공모전이든 공채, 고시든 소위 ‘성공’하기 위한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공채 자체가 악마 같은 제도냐 하면 그렇지는 않아요. 한국에 믿을만한, 공정한 제도가 많이 없잖아요. 당장 추천으로 사람을 뽑는다면 누가 믿겠어요. 공채를 시행하는 은행이나 강원랜드도 백으로 들어가는 세상에….

공채 제도가 나쁜 결과를 일으키는 이유는 그 제도 외에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에요. 공채 제도를 아예 없애지는 않되, 그 외에도 사람을 뽑을 수 있는 방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채로 뽑힐 수 없는 인재도 활동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게 경력직으로 흡수되는 것이든 창업하는 것이든 무엇이든요.

 

선택지가 다양해지면 세상이 좀 바뀔까요? 어떤 사회로 바뀌었으면 하세요?

제가 제일 원하는 것은 간판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예요. 길이 다양해져서 간판이 시시해 보이는 그런 사회요. 딱 ‘현재의 실적’만 가지고 판단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아야 소모적인 경쟁도 줄고, 억울하게 차별받지도 않을 수 있다고 봐요. 설령 지금까지의 실적이 안 좋았어도, 올해에 뭔가를 이뤄내면 나에 대한 평가를 바꿀 수 있어야 살 만하지 않을까요? 몇 년 전 사소한 실수로 인한 딱지가 평생 가는 사회엔 살고 싶지 않잖아요. 모든 영역에서 ‘지금 하는 일 잘하면 길이 열린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계속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좋은 사회죠.

 

 

인사 담당자들은 “지원자들이 똑같은 답안을 외워온다”고, 심사위원들은 “젊은 작가들은 등단용 작품을 쓰는 훈련만 되어 있다”고 인터뷰를 했더군요. 양측이 하는 말이 너무 유사해서 가슴이 턱 막히기도 했어요.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 심사위원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할까요?

저는 심사위원의 자질이나 덕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문학을 예로 들자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헝거게임>, <트와일라잇> 같은 작품은 문학상으로 뽑을 수 없는 성격의 작품들이거든요. 어떤 작품은 문학상으로 아예 뽑을 수 없다는 뜻이에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은 절대로 공채로 못 뽑아요.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을 보세요.

면접에 양복을 입고 올 것 같지도 않고, 시간을 지킬 것 같지도 않고, 답도 엉뚱하게 할 것 같잖아요.(웃음) 한국 공채 시스템에선 절대 뽑힐 수 없는 사람이에요. 이런 점 때문에 아무리 빌 게이츠라도 한국에서 태어나면 자장면 배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 같아요.

 

맞아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한국에 오면 ‘한국화’된다는 일종의 패배 의식이 젊은 층 사이에서 공유되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는 시험을 통과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이후에 개인이 가지게 되는 영향력이 결정돼요. 결국 ‘한국화=시험 최적화’인 것 같아요. 시험 결과에 따라서 개인의 영향력이 달라지지 않고, 간판의 영향력이 낮아지고, 현재의 실력만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곳곳에 들어서야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매 순간 실력을 재평가하는 시스템이 가동되면, 자칫 더 살기 팍팍해지지 않을까요?

실력을 측정하는 잣대를 도입해야 오히려 경쟁이 완화된다고 봐요. 한국 사회가 무한경쟁 사회라고들 얘기하는데, 제 생각은 다르거든요. 관문을 통과할 때만 무한경쟁을 하고, 관문을 통과한 이후에는 고인 물처럼 살잖아요. 특히 변호사, 교사, 의사처럼 자격증으로 유지되는 업계들은 자격증만 따고 나면 탄탄대로가 보장되고요.

관문에서만 경쟁하지 말고, 관문 통과한 사람들끼리 내부 경쟁도 해야 관문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이 완화될 거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지금은 살인적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청소년들은 살짝 쓸데없는 공부를 하고 있고, 공무원 준비생들은 노량진에서 피 튀기게 시험 준비를 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날이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있어요.

골목마다 치킨집이 생기고, 비정규직이 늘고 있는 거죠. 이미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만 더 이상 경쟁을 하지 않고요. 관문 앞에 선 젊은이들에게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고, 가혹한 것이 한국 사회의 본질 아닌가 싶어요. 개인 입장에선 관문을 통과해 고인 물에 합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게 가장 큰 비극이죠.

 

‘우수한 중소기업이 많은데 요즘 애들은 대기업만 바라본다’고 사회가 젊은이들을 꾸짖잖아요. 야근이 많은지, 근로기준법을 어긴 적이 있는지, 임금 체불은 없는지, 시급은 적당한지 같은 부분을 따지면 맹랑하다고 야단치기도 하고요.

제가 청년이라도 중소기업 안 가요. 어떤 곳인지 모르니까요. 좋은 중소기업이 어딘지 구직자가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왜 안 가냐고 다그칠 때가 아니에요. 우리는 커피 하나 사 먹을 때도 쿠폰을 비교해가며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경제적 판단을 하잖아요. 맛집 평가 플랫폼을 만들어 놓으면 맛있고 가성비도 좋은 식당에 찾아가지, 맛없고 비싼 식당에 왜 가겠어요? 이 문제도 비슷해요. 중소기업 초봉, 진급별 연봉, 안전사고 유무 등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구직자에게 보여주면 자연스레 좋은 중소기업을 찾아가겠죠.

 

‘크레딧0’ 같은 정보 공유 사이트를 공채 제도를 보완해줄 대안으로 생각하신다고요?

정부가 개입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지표를 제공할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교한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사업장에서 산업 재해를 당한 사람이 있는지, 성추행 고발 건수는 몇 건인지, 임금 체불은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거죠. 정부 기관에서 이런 자료를 많이 갖고 있을 거예요. 그런 정보는 기본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정보를 공개하는 회사에만 지원금 등의 혜택을 주는 거죠. 정보를 비공개하면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시키고요. 이런 정보가 공개되면 너무 좋을 것 같지 않나요?

 

『당선, 합격, 계급』 p. 355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이미지 평가

# 간판에 맞서는 방법

 

요즘은 ‘퇴사’도 화두인데요. 그 이유를 공채 시스템에서 찾을 수도 있을까요? 공채 제도와 잘 맞아서 합격했지만, ‘일’ 자체는 나와 맞지 않아서 그만두는 거죠.

글쎄요. 공채의 책임도 일부 있겠지만, 오히려 공채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퇴사를 더 많이 할 것 같아요. 지금은 젊은이들이 버티고 버티다 못해 퇴사하잖아요. 관문에 재입성하지 못할까봐 꾸역꾸역 다니는 거죠. 그런데 관문이 넓어서, 직장 생활 하다가도 ‘어? 이게 아니네?’ 싶을 때 바로 나올 수 있다면? 그런 사회가 더 건강하지 않을까요. 서른이 되기 전까지 많은 시도를 해보고 자기에게 맞는 길, 맞는 사업장과 일을 찾아서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거죠. 지금 불행한 직장 생활을 하는 30~40대 직장인 상당수가 자신과 맞지 않는 곳에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퇴사 이유 중에서 노동 환경 문제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맞아요. ‘기업 내 민주화’ 같은 건 되다 만 형국이죠. 제 세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제 바로 앞 세대가 지금 소위 ‘꼰대’라고 욕을 많이 먹는 586세대인데요. 그분들은 조금 억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아버지, 삼촌 세대가 잘했다고 생각해요. 6.25 직후, 먹고살 게 없던 시절엔 삼시 세끼 먹는 게 급선무였잖아요.

필리핀에서 원조 받던 나라가 OECD 가입했으니 성공한 거죠. 먹고살 만해지고 난 후엔 대통령, 국회의원을 우리 손으로 뽑는 정부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건 우리 앞 세대가 했잖아요. 4·19, 5·18 같은 아픈 역사를 거치면서요. 그다음은 성 평등, 직장 내 수평적 소통 문화를 만들 차례였죠. 그런 걸 제 또래 세대가 했어야 했는데 못 했어요. 1990~2000년대에 과제를 설정하고, 그걸 위해 싸웠어야 했는데 신세대, X세대라는 말을 들으며 흥청망청 보내버렸으니까요.(웃음)

그랬으면서 이미 자기 과업을 다한 윗세대들에게 태극기 부대니, 꼰대니 하면서 욕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들은 살아온 이력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했고, 사람이 나이 들면서 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저희 세대의 탓으로 지금 한국 사회에 두 세대분의 어젠다가 쌓여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지금 20대가 해야 할 과제는 좀 더 미래지향적이어야 해요. 예를 들어 인공지능처럼 글로벌한 문제들이요.

 

신규 채용보다 경력직 채용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확 바꾸자는 말씀도 하셨는데, 이러한 전환에는 맹점도 있을 것 같아요. 신입들의 취업이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요?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에요. 그 문제도 있고, 자칫 이런 얘기가 ‘사람을 쉽게 잘라야 된다’라는 뉘앙스로 비화되기 좋은 화제라서요. 한국 노동시장은 경직돼 있어요. 유연하게 바꾸는 게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좋다고 봐요. 다만, 유연화를 위해 도입되는 몇몇 제도들이 단기적으로 특정 사람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어요.

보통 그 대상이 낮은 연차의 직장인이나 구직 시장에 막 나온 경력 없는 구직자들이죠. 이들을 보호하면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 가는 건, 노동시장과 관련된 정책 당국자들의 역할인 것 같아요. 꿈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좋은 일자리, 그냥저냥 괜찮은 일자리, 기피하는 일자리가 있을 텐데 이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건 가능할 거예요. 실력 있는 사람들이 차곡차곡 이력을 쌓고, 사다리 밟듯 한 계단씩 올라가 결국엔 좋은 일자리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일자리가 줄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채용 시스템의 맹점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맞아요. 계속 있었던 문제인데 지금 와서 더 폭발하는 이유는 2000년대까지 통하던 한국 사회의 만병통치약이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바로 경제성장이죠. 경제가 7%씩 성장하고, 대학 나온 사람이 집을 사면 집값이 올라서 부자가 되는 게 당연했어요. 가만히 있어도 중산층이 될 수 있고, 물려받은 게 없어도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 중산층을 쭉 유지할 수도 있었고요. 경제가 발전할 때 가능한 일이죠. 경제적으로 보장이 되면 사람 마음이 너그러워지잖아요. 부조리한 문제도 눈감고 넘어가게 되는데 만병통치약이 사라지니까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는 거죠.

 

한국이 싫어서』에서는 ‘탈조선’을 꿈꾸는 젊은 층을, 『댓글부대』에선 ‘일베’ 등 일그러진 청춘의 모습을, 이번 『당선, 합격, 계급』에선 공채 시스템으로 인해 꿈이 좌절된 젊은 층을 주제로 글을 쓰셨어요. 20대의 삶을 묘사하는 데 있어 탁월한 작가로 꼽히시는데, 계속해서 청년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몇 년 전부터 계속 이런 질문을 받아요. 사실 별로 청년들에게 관심이 많진 않았는데요.(웃음) 생각해보니까 제 소설의 주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이더라고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소설에서 보여줘야 할 때, 그 주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이가 20대 후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전엔 어떻게 성적을 올리고, 직업을 구하느냐가 가장 고민이죠. 30대 이후엔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자!’를 고민하고요.(웃음)

 

에필로그에서 공모전에 도전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남겨주신 ‘꿀팁’들도 인상적이었어요. 사회 생활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청년들에게도 ‘인생 꿀팁’을 주실 수 있을까요?

옛날에는 그런 요청 받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요즘은 꼭 하는 얘기가 있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세요!(웃음) 사람이 사는 데 자신감이 꼭 필요하더라고요. 자신감도 훈련으로 키울 수 있어요. ‘하면 된다’, ‘노오력’ 이런 말은 저도 싫어하는데요. ‘해봤자 안 돼’라는 생각 역시 피해야 해요. 지금 젊은이들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10대 후반까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훈련을 안 시켜주니까요. 교육의 핵심은 지금 고생해서 공부하면 인생 편해진다는 걸로 압축이 되고요. 그래서 대부분 노력의 과실이 뭔지 모르는 채로 무작정 열심히만 하게 돼요. 성공 경험이 드물어지는 거죠. 근데 웨이트 트레이닝은 건강뿐 아니라, 자신감을 얻을 때 좋은 훈련 방식인 것 같아요. 몸은 정직하거든요.

매일 스쿼트를 30번만 해도 몸이 달라져요. 복근이나 팔뚝에 변화가 생기고, 자기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힘을 얻으면 긍정성도 생기는 것 같아요. 이렇게 강제로라도 긍정성을 탑재하다 보면 그게 한 달짜리 자신감이 되고, 그걸 자본 삼아 한 달짜리 과제에 도전할 수 있겠죠. 꼭 웨이트가 아니어도 소소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무엇이라도 좋아요. 두 달, 석 달, 육 개월, 그렇게 자신감이 쌓이면 몇 년 치를 시도해볼 수 있을 만큼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될 거예요.

 


[854호 – special]

Photographer 김윤희 스튜디오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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