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서 생계를 꾸리지 않는 사람들이 긴 글, 공적인 글을 쓸 일은 별로 없을 테지만, 살다 보면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불타오르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마도 자서전을 써야 할 정도로 오래 살거나(“내 인생이 대하드라마!”), 그게 아니면 여행을 다녀온 후일 것이다. 여행만큼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여기에서는 수천만 명 중의 하나일 뿐인 평범한 내가 낯선 나라에서는 남의 눈을 끄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 책임도, 의무도 모두 던져버린 채 자유롭게 이국을 떠돌다 돌아온 후에는 고국에 남아 지루한 일상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내가 본 다른 세계와 내가 겪은 특별한 일들을!

 

그런데 바로 그 사실이 여행기를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매일 17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 나라를 떠난다. 내가 본 다른 세계는 이미 인스타그램을 도배하고 있고, 내가 겪은 특별한 일도 남들이 다 겪은 일일 뿐이다. 17만 명이 경험한 17만 개의 이야기들. 그렇다. 여행기의 시대는 이제 지나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나는 여행기를 썼다. 내가 쓴 여행기에는 요즘은 딱히 매력적일 것도 없는 인도나 태국에서의 고생담이 잔뜩 들어 있다(나도 아이슬란드나 포르투갈 같은 곳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나보다 더 인도를 잘 알고, 더 제대로 알고, 더 재미있고 멋지고 유익한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나처럼 현지인들과 말조차 제대로 섞어보지 않고 여행의 피로와 괴로움에 지친 얼굴로 여기저기를 기웃대기나 하다가 귀국일이 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이 여행기를 써도 되는 걸까? 심지어 20년 전에 했던 여행을? 여행기를 쓰기 전에 우선 가슴에 손을 얹고 질문을 해보았다. 나는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아니, 아니었다.

 

물론 좋아할 때도 있었다. 아늑하고 안전한 내 집이나 숨이 막힐 것 같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여행을 꿈꿀 때.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 나를 태우지 않은 비행기를 볼 때. 목적지를 결정하고 항공권을 검색할 때. 여행 루트를 짜느라 가이드북이나 남의 여행기를 뒤질 때. 배낭을 메고 공항으로 나가서 면세점을 기웃거리다가 의자에 앉아 차분히 비행기를 기다릴 때.

 

그럴 때는 나도 여행을 좋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피곤하다’였고, 두 번째로 많이 느낀 감정은 ‘집에 가고 싶다’였다. 물론 좋을 때도 있었다. 즐거운 시간도, 이건 정말 내 생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완벽한 순간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밥이 맛있어서 행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이런 조건들을 앞에 달고 있는지도 몰랐다. ‘낯설지만’ ‘이 정도면’ ‘이 많은 돈을 들였으니’ ‘여기까지 왔으니’ ‘이왕 온 것이니’ ‘집에 가고 싶긴 하지만’. 그런 것을 깨닫게 되자 ‘이걸 어쩌지’ 싶었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거짓말은 늘 들통이 난다. 게다가 거짓말을 해서 얻을 것이 대체 무엇인가? 없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 대해서 썼다. 그 많은 돈을 쓰고 그 고생을 해가며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나 깨닫다니, 정말 바보 같고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밖에는 쓸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이 나라를 떠나 방콕이나 뉴델리, 암스테르담, 파리, 레이캬비크, 호놀룰루, 요하네스버그, 보스턴, 시애틀 같은 도시에 도착한다.

 

돌아와서 우리가 쓰는 여행기에는 그 도시가 어떤 곳인지가 아니라, 나의 몸과 마음을 통과한 그 도시에 대한 정직한 이야기가 들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밟아본 땅과 만져본 흙과 마셔본 물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 외에는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어디로 가든 그 사람이 궁극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버리고 오려 했으나 버릴 수 없어 이역만리까지 달고 가야 했던 나. 우리가 들려주어야 할 단 하나의 가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그런 것들이리라. ‘어디 어디에 갔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하고 재미와 신기함을 나열하듯 죽 늘어놓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읽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느 정도 일상에 인접해 있는가’ 하는 것을 (차례가 거꾸로 되더라도 좋으니까) 복합적으로 밝혀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또 정말 신선한 감동은 그런 지점에서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중에서 어떤 책을 쓸 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는데, 여행기를 쓰면서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기들을 다시 읽으며 이런 것들을 배웠다. 빌 브라이슨에게서는 정확한 유머 감각을 배웠다.

 

헤밍웨이에게서는 성실한 묘사와 낭만적인 대화에 대해서, 최민석에게서는 가벼움의 무게를 배웠다. 제프 다이어에게서는 자신의 내면을 헤엄치는 법을, 프랑수아즈 사강에게서는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과 경탄하는 법을, 박완서에게서는 솔직한 날카로움을 배웠다. 그런 것들은 배워야 한다. 그리고 쓰는 사람은 언제나, 배우는 걸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854호 – THINK]

Writer 한수희 kazmikgirl@naver.com

책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온전히 나답게』 저자

Illustrator 키미앤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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