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낼대숲 열네 번째 사연은 내내 게으름을 피우며 보냈더니 어느덧 막 학기 기말고사가 다가와 소스라치게 놀란 N이 제보해주었다. 잉여가 천성인 사람들의 패턴 7가지. 사찰당했나 싶어 뜨끔한 사람들 주목!
#1 끝의 끝에 몰려도 느긋하다
“저는 현재 막 학기를 다니고 있어요. 9학기라 물러설 곳이 없죠. 이제 슬슬 ‘졸업하면 뭘 하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토익 점수도 만료된 지 오래인데…. 나이만 차곡차곡 쌓이고 있어요. 하하. 학교에선 다들 바쁘게 사니까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붙어서 떨어질 수 없게 되더라고요.”
아, 안 돼! 왠지 익숙한 과거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다. ‘집순이’나, ‘집돌이’인데 게으르기까지 할 경우, 증세는 한층 격해진다.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면서도 금방 까먹는 능력까지 탑재하게 되는 것! 너님 지금 태평하게 웃을 때가 아냐….
#2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움직인다
“8학기를 다니게 된 것도 사연이 있는데요. 부끄럽지만 친구들처럼 취업 걱정이 이유는 아니었어요. 저희 과는 졸업하려면 영어 성적이 필수예요.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토익 시험을 등록할 기간을 놓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한 거죠. 근데 죽으란 법은 없다고, 찾아보니까 학교에 졸업 대체 시험이 있더라고요. 겨우 보기는 봤는데… 공부를 1도 안 했더니 점수 미달이라, 결국 1학기 더 다니고 있어요.”
걷잡을 수 없는 거대한 산사태가 일어난 느낌. 이렇게 다급해지면 게으름뱅이들도 평소 낼 수 없는 속력을 내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무리하다가 금세 피곤해져서, 또 게으름을 피우고 만다는 것. 게으름의 무한 굴레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3 한 번 힘을 내면, 한 번 쉬어야 한다
“열심히 사는 동기들에게 자극을 받아서 토익 스터디를 시작했어요. 전공을 살려 취직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자격증 시험도 준비하고 있고요. 의욕은 완전 충만한데 게으름은 어디 안 가더라고요. 한 문제 풀고 멍 때렸다가, 또 한 문제 풀고 침대에 눕고를 무한 반복 중이에요. 하루 종일 뒹굴뒹굴, 밍기적거리다 보면 어느새 또 해가 지고 있어요.”
일단 무언가 시작하겠단 마음을 먹은 것에는 ‘좋아요’를 드린다. 하지만 게으름뱅이이면서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 거라는 저 패기! 20여 년간 봐온 본인에 대한 무한한 신뢰!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들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4 큰 목표를 세우고 금세 포기한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해야 할 일을 적는 스케줄러를 샀어요. 최근에 치열하게 사는 20대가 나오는 다큐를 봤거든요. 거기 나온 분들은 하루에 해야 할 일을 쫙 정리해놓고 부지런히 지켜 나가더라고요. 저도 ‘목표: 토익 900점, 10kg 다이어트’부터 쓰고, 할 일을 적기 시작했죠. 1. 치킨 금지, 2. 하루에 LC/RC 챕터 하나씩 끝내기. 결국은 하루도 못 가 소파에 누워 배달 어플을 켜고 말았어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옛말 틀린 게 없다. 하수가 하루 만에 고수가 될 리가. 부지런함에도 훈련이 필요하니까. 아주 소소한 목표부터 세워보자. 스마트폰 5분간 보지 않기, 토익 문제 10개 풀기. 님 상태에선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즐거움을 아는 게 먼저다.
#5 강제력이 있으면 조금 경각심을 가진다
“집에서도 슬슬 눈치가 보여서 아르바이트를 구했어요. 당장 취준할 시간은 빼앗기겠지만, 어차피 시간이 있어도 그만큼 안(못) 하니까…. 아주 조금 부지런해지더라고요. 채워야 하는 근무 시간이 있고 제가 놔버리면 남들이 피해를 보잖아요. 그렇게 탄력을 받아 운동까지 등록했는데, 패착이었죠. 알바와 운동을 병행하다가 몸살이 나서, 둘 다 곧 그만뒀거든요. 기껏 모은 알바비는 병원비로 쓰고.”
아르바이트는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반도의 게으름뱅이들은 강제력이 있는 일엔 몸이 저절로 반응하거든. 하지만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 같다. 알바가 일상이 되고 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6 대책 없이 낙관적이다
“몸이 아프니까, 그래도 ‘열심히 살았는데 이 정도는 쉬어도 되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다시 저의 본래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웃음) 요즘은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는 것까진 해요. 해 떠 있을 때 제법 부지런하게 활동하니까 전처럼 퍼진 것 같은 기분은 덜 들어요.”
제가 지금 좀 당황스러운데 부지런한 활동이 어디 있는 건지? 포기는 누구보다 빠르고, 낙천성도 끝내준다. 이게 바로 게으름뱅이들이 갖춰야할 최고의 덕목인가 싶다. 진짜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산책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의지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건 뭐라도 해보는 거다. 푹 쉬다가 영원히 쉬게 될까봐 걱정이 크다.
#7 게으름뱅이는 어리석고, 역사는 반복된다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냥 주어진 일이라도 열심히 하려고요. 평생 이렇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달라지겠어요. 일단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보려고 해요. 준비된 스펙은 전혀 없지만 제 현재 실력이라도 알아볼 수 있잖아요. 문제는 당장 3일 뒤가 마감이라는 건데, 아마 오늘도 또 못 쓰겠죠? 근데 과제나 시험처럼 닥치면 또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이제 자기 자신을 안다. 모름지기 진정한 게으름뱅이는 아무리 마감 기한이 다급해도 초조해하지 않는 법이다. 졸업 시험 때의 악몽이 되풀이될 것 같은 예감이 진하게 드는데… 부디 이번에는 게으름으로 마감기한을 넘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855호 – bamboo forest]
EDITOR 원더우먼 wonderwomen@univ.me *열 받는 사연 제보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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