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들과 와인 잔을 기울이며 책에 대해 논하고, 원고 들춰보며 커피 한 잔 할 것 같은 출판사 편집자들의 고상함 뒤엔 고함이 난무했다. 유명 작가들의 폭언에 고막은 피 마를(?) 날이 없다고. 남은 건 원고 읽다 침침해진 눈과 접대로 상한 간뿐이라는 어느 편집자의 하루.


 

 

# 이번 주 ‘을’을 소개합니다

출판사 편집자 3년 차. 인문교양서를 담당하고 있다. 스무 살 무렵, 책을 사랑하는 문학 소녀였다. 소녀는 책과 늘 함께하고파 국문과를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가 되었다. 서른 살, 그녀는 스무 살의 문학 소녀를 다시 만난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단다. “출판사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쳐!”

 

 

09:00AM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블루라이트와 씨름하며 하루를 맞이할 시간! 메일함을 열어 에이전시(해외 작품과 출판사를 연결해주는 곳)에서 보내온 레터를 읽는다. 국내서가 아닌, 외서를 출판할 땐 에이전시에서 저자를 연결해주기 때문. 검토하고 싶은 외서를 발견하면 에이전시에 연락해 자료를 요청하기도 한다.

10:00AM 하지만 에이전시 레터에만 의존하는 편집자는 삼류! 아마존 같은 해외 사이트에 접속해 괜찮은 외서를 매의 눈으로 스캔하는 편집자가 일류다.

11:00AM 일주일에 한 번씩은 회의를 한다. 아마존에서 눈독 들인 외서 중 번역 출판할 만한 책이 있는지, 국내서로 낼 만한 괜찮은 아이템이 있는지 발표하고, 이번 주에 어떤 저자를 만나서 책 쓰자고 꼬셔볼(?) 계획인지 이야기를 나눈다.

12:00PM 종종 저자와 점심을 먹는다. 밥을 먹으면서 슬쩍 아이템을 던진다. “선생님, 이런 분야 책 써보실 생각 없으세요?” 저자가 관심을 보이면 미션 성공! 계산은 법카로!

13:00PM 점심 미팅의 수확을 보고서로 증명할 시간. 저자와 얘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안을 쓴다. 뭐 하나 낚으려는 강태공의 심정으로 될 것 같은 기획은 일단 올리고 본다.

15:00PM 본격적으로 원고를 읽는다. 교정·교열→다른 팀 담당자와 회의→저자에게 연락해 원고 독촉의 과정을 반복한다. 눈이 자꾸만 침침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20:00PM 퇴근 후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 저자와 함께^^ 혹시라도 다른 출판사랑 책 낸다고 할까봐 밥과 술로 저자와의 발목을 잡아본다. 저자 관리하다가 맛이 간 내 간에 애도를 표하며….

 

 

하는 일

어떤 책을 만들지 도서를 기획하는 일부터 저자 발굴, 원고 윤문·교정·교열까진 당연히 편집자의 일! 디자이너와 디자인 콘셉트 논의, 마케터와 마케팅 방안 논의, 제작팀과 제작 사양 논의 등도 잘 몰랐겠지만 편집자의 일! 유명 작가 수발(?) 들기도 믿을 수 없겠지만 편집자의 일!

 

초봉

신입으로 입사했는데 초봉이 2400만원이라면 당신은 럭키 가이! 세후 180 정도 받으면 업계 평균 이상이다. 월급÷근무시간=최저임금이라고 보면 된다.(잠깐… 눈에서 땀 좀 닦고) 야근 수당, 주말 출근 수당은 받느냐고?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요?

 

업무 강도

출판사 편집자에게 야근은 운명의 데스티니. 당신이 쭉 럭키하다면, 마감 전까진 칼퇴 요정으로 살 수 있다. 단, 마감이 시작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늘 출근해서 내일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 도서전 같은 행사가 있을 때는 주말 출근도 불사! 이것이 진정한 편집자의 길이라고….

 

 

채용은 이렇게 진행돼요

공채는 옛말! 신입은 보통 SBI(Seoul Book Institute)라는 국비 지원 신규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나 한겨레 출판학교 과정을 수료한 뒤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출판사 채용 공고는 주로 ‘북 에디터’라는 사이트의 구인구직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면 좋아요

출판사 by 출판사지만 대체로 한컴오피스 한글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MS 워드 대신 한글을 잘 다룰 줄 알면 좋다. 인디자인·포토샵·파워포인트 등을 다룰 줄 알면 좋긴 한데,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게 더 좋을지도….(응?)

 

미리 알아두면 좋아요

입사 전, 어떤 책을 주로 출판하는 곳인지 홈페이지에서 미리 체크해보는 것이 좋다. 출판사에 따라 인문서를 주로 내는 곳, 인문서 중에서도 외서를 주로 내는 곳, 문학서를 주로 내는 곳 등 특징이 다르다. 나중에 이직할 때, 첫 직장에서 어떤 책을 만들었는지 포트폴리오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첫 삽을 잘 떠야 한다!

 

 

출판사 편집자 중에 등단 작가도 있다던데… 그런 능력자들이 대체 몇 명인 거죠?
오조 오억 명… 까지는 안 돼도 꽤 많은 편이다. 출판사 편집자는 수명이 그리 긴 직업이 아니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늘 100세 시대를 대비해 세컨드 잡을 고민하곤 한다. 이때 가장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옵션 세 가지가 있다. 번역가가 되거나, 독립해서 출판사를 차리거나, 등단하거나! 내 밑에서 일하던 후배가 어느 날, 다른 출판사 문학상에 당선돼 ‘작가님’ 타이틀을 달고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 미운 후배도 다시 보자.

 

인문, 문학, 역사 등 편집자마다 담당 분야가 다르던데, 이건 어떻게 정해지는 건가요? 

신입의 경우, 입사 후 담당 분야가 정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채용 공고에 미리 인문이면 인문, 문학이면 문학 담당자를 뽑는다고 고지되어 있다. 지원자가 원하는 담당 분야를 골라서 지원할 수 있다는 뜻! 담당은 한번 정해지면 쉽게 바꾸기 어렵다. 분야마다 책을 보는 포인트나, 편집자의 역할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 한번 정해진 분야가 여든까지 갈 수 있으니 담당 분야는 신중하게 고르는 것이 좋다.

 

조그만 출판사에서 일을 시작해도 될까요? 나중에 큰 출판사로 이직하고 싶은데…
편집자 되기 전에 각오해라! 이직 백 번 할 수도 있으니까…☆ 거짓말 조금 보태면 1년 1 이직할 정도로 이직이 잦은 곳이 출판 업계다. 물론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하기 쉽지 않듯, 소형 출판사에서 대형 출판사로 옮기는 것 또한 쉽진 않다.베스트셀러 한 권 만들어 봤다거나, 유명 저자와 친한 사람은 예외….(난 아니니까 패스!) 대형 출판사라고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다. 이름 알려진 출판사 다니면 복지라도 좋지 않겠느냐고? 미안하지만 출판 업계에 복지 같은 건 없다.(찡긋)

 

국문과 졸업해야 유리한가요?
놉! 그 어느 집단보다 전공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출판사다. 심지어 공대생들도 많다. 오히려 국문과 전공자보다 외국어 관련 전공자가 유리한 면이 있다. 일본어, 불어, 독어 등 언어에 능통한 편집자들은 외서를 직접 검토할 수 있기 때문. 물론 외서를 검토할 때 번역가들에게 의뢰하기도 하지만 검토비 15만원이 회사 통장에서 빠져 나간다…. 이 15만원을 아끼기 위해 편집자들은 오늘도 “이 얼 싼 쓰!” “이치 니 산 시!”를 외치며 직접 외서를 읽고 검토한다.

 

 

작가들 갑질이 땅콩 항공 못지않다면서요…? 멘탈 괜찮나요?
억울한 썰을 다 풀자면 지면이 부족하다. 한 번은 계약금까지 다 받고 우리 출판사랑 책을 기획 중이던 작가가 갑자기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내겠다는 거다. 그럼 계약금 돌려 달라고 했더니 “계약서 잘 봐! 내가 갑이고 너희가 을이지? 그런데 내가 계약금을 왜 돌려줘?”라고 하더라. 유명 작가에게 책 내용 좀 수정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상처 받았다고 같이 작업 못 하겠다는 말을 비서 통해 전달받은 적도 있다. 한 대 치고 지옥 갈까 고민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엔 회식 때마다 작가들 기쁨조 노릇까지 했다고 하니 그나마 나아진 편이라고 해야 하나.(주륵)

 

종이책의 위기라고들 하던데… 출판사 편집자 해도 될까요?
얼마 전에 기사를 보니 미래에 없어질 직업 TOP 10에 출판사 편집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더라.(주륵X2) 세상이 변해도 종이책은 영원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전자책 시장, 웹 소설 시장은 점점 커지고 종이책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특히, 웹 소설 분야는 출판 업계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고,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서비스라 장래성도 있다. 꼭 편집자를 해야겠고, 웹 소설 시장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그 쪽 분야의 편집자가 돼도 좋을 것 같다. 물론, 기존의 출판사 편집자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긴 하다.

 

독서량이 적은 사람은 편집자 될 수 없나요?
‘독빼시’다. 편집자는 독서량 빼면 시체라고.(단호) 물론 독서를 취미로 즐기기엔 장애물이 많다. 보통 편집자 한 명이 일 년에 책을 6권 정도 만드는데,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 하루에 원고를 30장씩은 봐야 한다, 정말 꼼꼼하게. 그래서 퇴근하면 텍스트 과식으로 책을 거들떠보기도 싫다. 어떤 책을 읽어도 오탈자와 편집 디자인만 보이는 직업병이 도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량이 적은 사람은 ‘좋은’ 편집자가 될 수 없기에, 자기 전 한두 줄이라도 꼭 책을 읽고 자려 한다.

 

가장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은 언젠가요?
위에서 매출 압박 줄 때? 편집자니까 편집에만 전념하고 싶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출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요즘은 출판 시장까지 불황이라, 매출 압박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와중에 가끔씩 대표가 망삘(?)이 드리운 원고를 들고 와 책으로 만들라고 할 땐 당장 그 얼굴에 사표를 꽂아버리고 싶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이유가 뭐냐고? 좋은 저자들과 만나 가치관을 공유하고, 그걸 책으로 내는 순간의 즐거움이 좋아서. 언젠가 베스트셀러 편집자가 될 날을 꿈꾸며 그럼 저는 원고 읽으러 이만!


[855호 – 을의 하루]

사진 출처 일본 TBS <중쇄를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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