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일시 2018.6.12. ~ 9.2 장소 대학로 자유극장

 

 

4년제 대학 졸업장, 중간 정도의 영어 점수, 그저 그런 쓸모의 자격증. 졸업을 유예한 내가 손에 쥔 것은 하나같이 애매한 것들뿐이었다. 그중 가장 애매한 것은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마땅치 않은 나 자신. 아무리 ‘자소설’이라지만, 영혼까지 무기력한 인간을 열정 충만한 인간으로 포장하기란 버거웠다.

 

여전히 어중간한 인간인 채로, 취준생에서 직장인이 되었다. 이유 모를 부채감은 좁고 더운 객석에 구겨져 연극을 보는 순간에도 여전했다. 100세 스웨덴 노인의 장수 비결(?)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단지 누워 잘 수 있는 침대와 세끼 밥과 할 일, 그리고 이따금 목을 축일 수 있는 술 한잔’. 초 미니멀리즘! 이게 바로 지구 생활 100년 차의 연륜인가? 원작인 장편 소설은 전 세계에서 1000만 부 넘게 팔렸다는데, 어쩐지 납득이 가려고 했다.

 

이 시점에 할 말은 아니지만, 베스트셀러라는 원작은 미처 읽지 못했다. 열의가 부족한 자가 손대기엔 너무 두꺼웠다. 영혼의 동반자들을 위해 줄거리를 공유하고 넘어가 본다. 1905년 태어난 알란 칼손은 100세 생일을 맞기 1시간 50분 전, 양로원을 도망친다.

 

 

창문을 넘어 도망치는 길에 갱단 ‘네버 에버’와 얽히면서 63억 4750만원짜리 돈 가방도 본의 아니게 슬쩍한다. 우연히 만난 좀도둑 율리우스에게 신세를 지다가, 실수로 불량배를 냉동시키기도 하고, 핫도그 트럭 주인과 코끼리를 기르는 농가 주인의 도움을 받아 도피 생활을 이어간다. 보는 사람이 다 숨 가쁘지만, 대체로 의도한 일은 아니다.

 

어쨌든 20대보다 기력 좋은 100세 노인인 알란의 ‘도망기’는 1900년대부터 시작된 알란의 ‘일대기’와 교묘하게 겹쳐지는데. 이게 또 거의 근현대사 자체다. 알란은 어깨너머로 배운 폭탄 제조 기술 하나로, 제 1~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중국 국공내전 등에서 살아남거든. 스페인의 프랑코 장군, 중국의 마오쩌둥 등등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 친구가 되는 건 덤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친구들을 다 만나고 오는 느낌적인 느낌. 의아할 법하다. 다 재밌고 좋은데, 연극으로 어떻게 만들 거죠? 작은 소극장, 대충 봐도 원작의 등장인물은 최소 수십 명. 창작진에 대한 짠함이 밀려오려는 찰나, 다섯 명의 배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플라멩코나 캉캉 등 최소 6개의 춤을 추며 특정 국가를 표현하기도 하고, 국적·인종·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역할을 번갈아 연기하기도 한다. 알란의 거대한 추억 장식장처럼 꾸며진 무대 위에서 이름표를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순식간에 알란으로도, 스탈린으로도, 코끼리로도 변신한다.

 

관객들은 <런닝 맨>을 보듯 ‘캐릭터 저글링’에 빠져드는 수밖에 없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연극이니까 배우와 관객을 믿어보자.” 대본의 첫 장에는 이러한 작가 코멘트가 적혀 있다고 한다. 극장을 나오며,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의 삶도 연극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불가능함을 가능함으로 만드는 것. 혼자서는 결코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일도, 함께하면 괜찮아지는 것.

 

홀로 스스로의 쓸모나 열정을 증명하려 애쓰는 게 아니라, 의지를 북돋워줄 누군가가 필요한 존재들. 우리에겐 희극이었으나, ‘알란’ 개인의 역사는 비극이다. 가난으로 부모를 잃고, 열성인자로 낙인찍혀 거세당하고, 정신병원이나 수용소에 감금된다. 지긋지긋할 법한데도, 알란은 분노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만족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침대와 세끼 밥과 할 일, 술 한잔. 그리고 마음을 나눌 친구들.” 다시 공연 소개 책자를 꺼내, 작가의 말을 정독했다. 이런 구절이 보였다. “극장 밖으로 나가는 걸음이 조금은 덜 외롭고, 아주 많이 가볍기를.” ‘취준생’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감에 몸서리치던 백만 명 중 한 명. 종종 들르는 맛집과, 알싸한 소주와, 고민을 나눌 친구들이 있다는 걸 잊었던 때. 다시 돌아간다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줄 텐데. 비록 열정은 없지만, 괜찮지 뭐!

 


# 우리를 무기력함에서 구원해줄, 밥과 술과 친구 

 

 

 

BOOK <언젠가 티파니에서 아침을>

스물여덟 살의 마리코가 맛있는 아침밥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는 이야기다. 마리코는 무기력했던 7년간의 연애를 끝내고,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소집한다. 그리고 도쿄 곳곳의 아침밥 맛집을 섭렵하는데…. 도쿄 맛집 탐방 버전 <섹스 앤 더 시티>라고 봐도 좋겠다.

 

 

DRAMA <와카코와 술>

“푸슈~.” 이것은 일상에서 쌓인 피로를 술과 맛있는 안주로 씻어낸 와카코가 내는 만족스러운 소리다. 매일 회사에서 들들 볶여도 와카코는 괜찮다. 칼퇴하고 술 마시러 가면 되니까☆ 진정한 주당은 성격이 나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만화가 원작이다.

 

 

NETFLIX <프렌즈>

미국 NBC에서 무려 시즌 10까지 방영한 시트콤으로 지금은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맨해튼에서 이웃사촌으로 거주 중인 20~30대 남녀 친구들 여섯 명이 주인공. 북적북적하게 먹고, 싸우고, 화해한다. 이런 친구들 대체 어디 있는지 94년도부터 찾고 있다. 괜히 고전이 아니다.


[857호 – culture 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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