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피로는 대학생의 생활 질병이다. 과제하느라 밤새우고, 알바 가려고 새벽에 일어나고, 알바 끝나면 자격증 공부하고. 이럴 때일수록 잘 쉬어줘야 하는데,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막상 시간이 있어도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 황금 같은 휴일에 쓸데없이 불안해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가? 하루라도 쉬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억지로 할 일을 만드는가? 삐빅! 당신은 휴식 불능자입니다. 당신을 위한 처방을 찾아 오늘부터 따라 해보세요.


 

 

 

옛말에 성공하는 사람은 할 땐 하고 놀 땐 확실히 논다는 말이 있다. 근데 나는 그게 참 안된다. 수업에 과제에 알바까지 꽉꽉 채운 하루를 견뎌내면서 ‘쉬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징징, 자비 없는 시간표에도 징징, 얇은 주머니 사정에도 징징대다 보니 우주 최강 ‘징징이’가 되고 말았다.

결국, 24시간이 모자라는 나노 단위 삶에 사표를 내고 당당히 휴학을 선언했건만, 웬걸. 나는 놀 때도 놀지 못하는 인간이었다.(흑) 밀린 잠을 자려 하니까 갑자기 불투명한 미래가 아른거리고, 하루 종일 TV나 보려고 했더니 며칠 전 한국사 자격증을 땄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쉬고 싶대서 멍석(=휴학) 깔아줬더니 열심히 사는 삶 변두리에서 알짱대는 꼴이라니. “너가 잠든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간다”라는 무지막지한 명언에 세뇌된 탓일까.

결국 휴학 기간의 반이 지나도록 ‘뭘 하긴 해야 하는데…’의 굴레에서 나오지 못하고 밤낮이 뒤바뀐 상태로 휴대폰만 하고 살았다. 급기야 이렇게 죄책감과 무력감에 빠져 사느니 차라리 휴식을 포기할까 싶어졌다.

 

 

첫날엔 모든 게 어색했다. 음악 5곡을 들으며 걸으라고? 근데 뭘 듣지? 시작도 하기 전에 생각이 많아졌다. 어떤 노래는 괜히 축 처지는 것 같았고, 어떤 노래는 명색이 휴식인데 너무 시끄러운 게 아닌가 싶었다. 노래를 고른 뒤엔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가 문제였다. 집 앞 골목은 차가 좀 많은 것 같고, 모퉁이 건너 공원은 해가 뜨거운 것 같았다.

그래도 애써 마음을 다잡고 걸었는데 20분이 생각보다 길었다. 금새 저질 체력을 탓하며 헉헉댔다. 솔직히 말하면 괜히 나왔다 싶었다. 어느새 나는 잘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대충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 휴대폰 화면을 보며 걷던 거리를 걷다 보니 평소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우리 집 아파트 벽이 그라데이션 칠이 되어 있다는 것부터, 집 앞 커피숍은 테이크 아웃하면 1000원을 할인해준다는 사실까지. 안 하던 운동을 하니 몸이 피곤해 집으로 돌아와서는 大자로 뻗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산책 후에는 늘어져서 쉬었다. 복숭아를 깎아먹거나, 책을 읽으며 졸거나. 며칠간의 처방 기간 후 내가 느낀 건 딱 하나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 것. 뭘 들을지, 어디로 걸을지를 과도하게 생각하다 보면 힘만 들고 소득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휴식이든, 공부든 ‘잘’ 하겠다는 강박에서 일단 벗어나기로 했다. 대신 매일 산책을 하고 복숭아를 깎아 맛나게 먹을 거다.

 



 

 

 

 

 

언제부턴가 ‘마냥’ 집에 있기가 힘들다. 쉬는 날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휴대폰을 하고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가는 쓰레기가 된 것 같다. 시간을 탕진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척 송구스러워진다. 고학년이 되고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좌불안석의 정도도 심해져, 겨우 한 움큼의 여유가 주어졌을 때도 꼭 밖으로 나간다. 혼자 쇼핑을 가거나 카페에 가 미뤄뒀던 뉴스를 보거나. 아니면 친구를 만나든가.

그렇게 쉬는 것도, 노는 것도, 교양을 쌓는 것도 아닌 애매한 활동을 전전하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심신의 에너지는 0에 수렴해 있다. 퍽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보며 매번 ‘다음번엔 무조건 집에서 쉴 거야!’라고 다짐하지만 인간의 불안은 끝이 없고 실수는 반복된다고. 그렇게 [집에서 쉴 거야→완전 쓰레기네!→밖으로 나감→피곤함]의 메커니즘은 현재도 ing 중인데….

 

 

“언니, 이거 진짜 효과 대박이에요!.” 후배가 ‘불안증 특효약’이라며 콘텐츠 하나를 소개해줬다. 특효약의 정체는 바로 ‘SOUPE’이라는 ASMR 유튜브 채널. 일반적인 ASMR과는 달리, 영화나 애니메이션, 일상 속의 특정한 상황과 장소를 모티브로 삼아 그 공간에서 발생할 만한 소리를 들려준다고 한다.

목록에서 <응답하라1988 택·정환의 방>을 눌러 재생해보니, 귀뚜라미 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리고 바둑알을 바스락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눈을 감고 있으면 정말 그 방에 와 있는 듯했다. 대망의 ASMR과 함께하는 첫 주말. 2시쯤 되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과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상념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준비해둔 영상을 틀고 흘러나오는 한음한음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에 집중할수록 주변을 배회하던 잡념들이 하나둘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음들이 머릿속을 채워나가면서 생각을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한 시간 이상 들었을 땐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고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두시간이 채 되기 전에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주말 동안 ASMR을 들으면서 깨달은 건 제대로 쉬기 위해선 심신의 힘을 좀 빼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 해오던 버릇이 있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ASMR의 도움을 받아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몸과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있지 않을까?

 



 

 

나는 깨어 있는 내내 잠시도 쉬지 않는다. 딱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항상 바쁘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일부러 학교에서 제일 바쁘다는 방송부, 신문부를 골라 전전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도 쉬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굴었다.

한 학기에 단체 2개는 기본, 대외활동과 공모전, 팀플, 과제를 병행하다 보면 헤르미온느의 타임터너가 절실해졌다. 중간중간 짬이 생겨도 단톡을 확인하거나 새로운 일을 벌였다. 그러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온전히 쉴 수 있는 이틀이 단비처럼 찾아오곤 했다. 근데 이상하다? 분명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다? 아무것도 안 하는 1분이 흐를 때마다 사회에서 한 달씩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체력이 바닥인 채로 영화를 보거나 요리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알아야하는 사람처럼. 각종 SNS에 올라온 게시물을 다 보고 나서 겨우 잠을 청하면 세 시간이 채 안 돼서 해가 떠올랐다. 덕분에 혓바늘과 뻑뻑한 눈 그리고 종합비타민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만성피로가 늘 따라다녔다.

 

 

비는 시간을 못 견디는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잠이었다(내 성격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려면 잠을 자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먼저 암막 커튼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첫날 집에 들어온 시간은 새벽 2시였다.

세 시간만 지나면 동이 튼다는 생각에 암울해졌다. 속는 셈치고 암막 커튼을 쳤더니 웬걸 달빛까지 완벽하게 차단됐다. 내친 김에 기계들의 깜박이는 빛까지 옷으로 죄다 가렸다. 그러자 완전한 암흑이 찾아왔고 눈앞에 갖다 댄 손조차 안 보였다. 신기해하며 잠시 뒤척이다 깜빡 잠이 들었다. 알람 소리에 일어나는데 평소보다 개운했다.

다음 날은 비교적 일찍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암막 커튼을 쳤다. 아직 잘 시간이 멀었기에 습관처럼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방이 영화관보다 어두워서 그런지 화면 밝기를 아무리 낮춰도 빛 때문에 눈이 아팠다. 강제로 스마트폰을 내려놓게 됐다. 암흑이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가능하게 해준 셈이다.

나른한 음악을 틀어놓은 채 누워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처음엔 좀 불안했지만 점차 편안해졌다. 한 트랙이 끝나고 고요한 가운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암막 커튼을 쓰고 있는데 만성피로가 50% 정도 해결된 느낌이다. 여전히 빡빡한 일정 속에 살고 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한 것만으로도 기쁘다.


[863호 – campus]

CAMPUS EDITOR 김예란, 박지원, 원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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