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 결혼식 피로연에서 친구들과 뷔페를 처묵하고 있을 때였다. “마미손 뮤비 봤냨ㅋㅋㅋ개웃김” “오늘 배그 몇시쯤 접속할거야” “너 여자친구는 결혼 얘기 없어?” 한 달이 멀다 하고 보는 놈들이 묻는 건 참 많다. 갑자기 “니 결혼식 때 우리 동기들은 몇 명 정도 올 것 같나?” 라는 질문이 건너편에서 맥주병과 사이다 캔 사이로 훅 치고 들어왔다. “뭔 시답잖은 소리야” 조금 당황하며 손가락으로 하나둘 꼽아 봤다. 몇몇은 ‘당연히 올 사람들’. 몇몇은 ‘부르면 과연 올까?’싶은 이들. 나머지는 ‘에이, 얘를 왜 불러’정도구나.

 

하객으로 만난 친구들은 이런 모습. 가운데가 나임

 

4년씩이나 다닌 대학에서 내 결혼식 때 부를 사람을 세는 데는 한 손이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흔히 고환 친구라고 말하는 이들, 그리고 최근 관계를 맺은 회사 사람들 정도였다. 흰 천이 덮인 6인용 원형 테이블 위에서 이런 얘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와, 내는 생각해 보니 대학 동기들, 선후배들 다 꼽아도 부를 사람이 몇 명 안 된다” “원래 대학 친구들은 평생 안 간다 안하나”

 

많은 관계를 맺는 시기, 20대

보통 우리가 겪는 대학생활 소울메이트의 바람직한 규모

 

20대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수많은 관계를 맺었다. 누구나 비슷할 거다. 교복을 입고 어색한 기운까지 입던 교실에서, 서로 눈치만 보던 15세의 봄과는 달랐다. 우리는 교내/교외 OT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80명이 넘는 카톡방에서 먼저 만났다. 게다가 그 날, 우리는 관계를 단기간에 좁혀 주는 ‘술’이라는 현질템도 썼다.(물론 이 아이템은 20이라는 렙제가 있지만, 이전에 먼저 까는 애들도 많았다)

 

하루 이틀 지내며 동기라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수용 능력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탓일까. 어젯밤 함께 놀던 동기와 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아, 각자 이어폰을 끼고 서울로 돌아오는 두 시간이 하염없이 길었다. 어젯 밤 나는 너무 많은 사람을 알아버렸구나.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수많은 뷔페 음식 같았다. 그리고 그 음식 중에 제대로 맛이 기억나는 음식은 한 개도 없었다.

 

‘아는 사람’은 많지만, ‘친한 사람’은 아닌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들을 친구라고 부르기보다 ‘동기’라는 이름으로 부르길 원했다. 나와 같은 영역에 상대를 묶는 말 같지만 사실 안 친한 대학 친구를 호칭하는, 생각보다 먼 관계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버려지는 인간관계가 많았다. 아, 이래서 대학 시절 맺는 인간관계가 허상이니 뭐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거구나. 단순히 대학교 친구들이라서 겪는 문제라기보다는 무리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 보니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누가 내게 과 동기, 선후배 모두와 친하게 지내라고 강요한 적은 없으니까. 그러지 못한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도 전혀 없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니까

이해와 오해,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싸움의 연속

 

경험과 살아온 환경은 가치관과 인간관계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당연히 각자 살아온 시간이 적을수록 가치관과 태도의 차이가 작을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야, 나 유치원 때는 말야 입생로랑 턱 끈 하고 다녔어”라고 자랑하는 거 본 적 있냐. 이런 얘기 들은 애들이 자괴감 느끼는 걸 본 적은?

 

살아온 시간, 그리고 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한 집단에 있으면서도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하, 빨리 졸업해서 돈 많은 사람 꼬셔서 결혼하고 싶다.” 라는 친구가 있었고(실제로 들은 얘기임) 그 집단엔 “난 내가 성공해서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들 많이 만나고 다닐거임 ㅋㅋ”이라는 얘기를 하는 애들도 있었다. 그 둘은 뒤섞일 수 없었지만, 공교롭게도 10년이 지난 지금 그 둘의 운명은 완전히 서로 뒤바뀌어 있다는 게 좀 웃긴 점이긴 하다.

 

개인적인 가치관뿐 아니라 자기 학교, 과에 대한 인식 자체도 굉장히 다르다. “이거 완전 똥통 학교구만! 나는 편입시험 준비할 거임”이라고 습관처럼 말하던 애 옆에서 “강철 XX! 민주 XX!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체육대회 꼴을 보면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이런 애들이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하고, 술을 함께 먹고, OT도 같이 간다. 와, 이게 대학이구나!

 

우리는 이 수많은 ‘다른 이’들 중에서 ‘내 과’의 친구들을 찾아야 한다. 그런 ‘내 과’ 친구들은 어느 날 운명처럼 다가온다.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졌고, 나와 비슷한 생활 패턴을 영위하며, 나와 비슷한 성격에, 나와 비슷한 취향까지 가졌다. 심지어 이상형도 비슷하다(어 이건 아닌데).

 

이해관계가 생기다

웃어 웃으라고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드디어! 사귀게 됐다. 보통 수십 명 동기 중 많게는 10명, 적게는 2~3명 정도 무리를 지어 다닌다. 이들과 공강 시간에 카페도 가고, 수업 끝나면 떡볶이도 먹고, 방학 땐 계절학기도 듣는다. 그렇게 평화로운 친구 관계를 유지하나 싶었지만, 은근히 별 것 아닌 이유로 삐걱거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예컨대, 이런 상황이 있다. (카톡 내용)

 

A: 오늘 나 종로쪽에서 보는거면 난 보기 힘들 거 같은데
B: 뭐야 그런 게 어딨어… 오늘 다 같이 보기로 했자낭
A: 음 근데 내가 오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서ㅠ
C: 그럼 홍대쪽에서 보든가.
A: 흠… 거기서 보면 몇시쯤 볼 거?

 

약속 장소를 정하는 상황이고, 셋이 만나기로 한 상황이다. 생각해 보면 별 게 아닌 문제인데, 셋의 감정이 묘하게 불편하고 팽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뭐, 그럴 수도 있잖아? 근데 왜 이렇게 서로 촉을 세우는 걸까.

맨날 노래방 같이 가는 친구가 늘 돈이 없어도 네 명이 낼거 세 명이 나눠 내며 데려가던 시절이 있었고, 샤프든 지우개든 뭐든 빌려줬더니 맨날 잃어버려도 그러려니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나도 아까운게 뭔지 잘 모르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10대 시절과 달리 손익을 따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정해 준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짜 놓은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반강제로 자습이나 학원에 가던 10대 때와는 다르다. 아르바이트하며 나만의 경제 규모가 생기고, 시간표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며(음 아닐지도), 내 의지대로 스케줄이 생기다 보니 모든 활동을 판단할 때 손익을 생각하게 된다.

 

남는 시간과 돈은 이제 부모님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며, 손해도 이제 더는 남의 손해, 부모님의 손해가 아닌 ‘내 손해’가 된다. 그래서 손해를 체감하는 정도가 예전보다 훅 커진다. 이러니,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돈 문제나 시간 문제에 예민해지게 된다. 단순히 나이가 들며 돈과 시간의 단위가 커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이런 상황이다보니, 생각보다 크다고 생각지 못한 서운함에 깊은 감정의 골이 생긴다. “쟤는 눈치가 졸라 없어. 지금 왜 끼어들어?” “야 시X, 누구는 하고 싶어서 과 행사 하나하나 다 참여하냐?” “아니 쟤는 왜 맨날 밥 사달랄 때만 친한척함?ㅋㅋ” 결국 이런 식으로 감정의 골이 생기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줄 알았던 주변인들은 하나둘 멀어져 간다. 알고 보면 ‘친구’가 아니었던 거다.

 

그렇게 대학에서 겪은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오랜만에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 야, 역시 대학교에서 만난 애들은 진짜 영 아닌 거 같아. 열심히 수다를 떨고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역시 어릴 때 친구들이 짱이야’. 그리고 집에 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말한다. “어라, 야! 나 지갑 안 가져왔다…헐” 그리고 씁쓸한 표정으로 카드를 긁으며 생각한다. ‘하 얘는 성인이 되 갖고도 완전 습관적이네 짜증나게’.

 

중요한 건 타이밍이 아니야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베프와 함께 보면 가슴 찢어지는 영화

 

대학에서 겪은 ‘얕은 인간관계’에 지쳐 다시 옛 친구들을 찾았는데, 현실은 미화된 과거처럼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다시 만난 추억 속 옛 친구들은 그렇게 옛날 같지 않다. 그들 역시 많이 변했을 거다. 어쩌면 바뀌지 않은 그들을 대하는 내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혹은 좀 더 단순하게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더 깊어질지도 모른다.

 

진정한 친구, 평생 친구라는 그 중요한 걸 결정하는 건 고작 만나는 시기만이 아닐 것이라 본다. ‘언제’ 보다 중요한 건 ‘어떤’이 아닐까. 대학 친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학 친구와는 깊어질 수 없어”라고 생각하기보다, 그렇게 이것저것 다 따지는 관계를 극복하고도 인연의 끈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어쩌면 어린 시절 친구들보다 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남은 게 맨날 게임 얘기, 쇼미 얘기, 연애 얘기만 하는 시답잖은 사람들이지만.

 

“야, 그래서 넌 몇 명 정도 올 거 같냐고, 마.”라는 말에 손가락 다섯 개 정도를 펴 보였다. “야 니 그것밖에 안되갖고 우짜냐. 새끼 대학생활 허투루 했네” 라고 핀잔을 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 같다. 대학 동기로 한 테이블만 채울 수 있다면, 4년 간 만든 인간관계에 딱히 후회는 없을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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