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변했다고들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들어서는 카페, 비수기 없이 예약이 꽉 차버리는 숙소, 한 시간 웨이팅은 기본인 힙한 식당들…. 한 달 만에 다시 찾아도 동네의 지도가 바뀌어 있을 만큼 제주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제주의 변화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진짜 우려하는 것은, 그런 흐름에 밀려 변하거나 사라질 마음 속의 어떤 장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가 고향인 사람, 제주가 너무 좋아 정착한 사람, 제주를 자주 여행하는 사람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주를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제주의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자연’,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가게’들은 어디인지. 믿을 만한 추천을 따라간 그곳엔 가장 제주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 별 아래, 용이 놀다 간 오름

용눈이오름

+ 제주 사진집 『가치』를 만든 포토그래퍼 이민영의 추천

 

ⓒ플레이스 캠프 제주, ‘용눈이오름 야간 트레킹’ 

 

제주 동부, 중산간 지역은 오름의 왕국이다. 백약이오름, 아부오름, 둔지오름… 이름을 들어본 오름들은 거의 다 이 근방에 몰려 있다. 이중, 용눈이오름은 유일하게 분화구가 세 개인 오름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용의 눈처럼 보여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20분 정도면 충분히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경사도 완만한 편. 올라가는 길목마다 한가롭게 말들이 풀을 뜯으며 노닌다.

 

이곳은 제주의 자연을 담은 사진으로 유명한 故 김영갑 작가가 생전에 즐겨 찾은 촬영지이기도 하다. “능선이 가장 아름다운 오름”이라는 그의 극찬처럼, 첫눈에 윈도 배경화면 같은 굴곡이 경이롭게 펼쳐진다. 저편으로는 커다란 풍력발전기와 억새가 만개하는 금백조로가, 반대편으로는 ‘오름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높은 다랑쉬오름, 그 옆에 자그마한 다랑쉬라는 뜻의 아끈다랑쉬오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낮에 봐도 근사하지만  밤에 별과 함께 보는 용눈이오름은 더 아름답다. 두 모습을 모두 보고 싶은 여행자들은 플레이스 캠프 제주에서 운영하는 오름 야간 트레킹으로 오름의 밤을  만끽해보면 좋겠다. 가이드와 함께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안전하게 별 보러 가는 오름이라니. 까만 밤, 낭만이 절로 자라난다.

권혜은

 


제주의 서쪽 끝에서 보는 노을

수월봉

+ 한때 제주 주민이었던 서울러 한가희의 추천 

 

 

오름에 간다고 하면 “안 힘들어?” “그 힘든 델 왜 가?” 하는 친구들이 꼭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오름이 있다. 정상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는 제주 서쪽 끝의 수월봉이다. 제주 지도를 놓고 동서남북을 짚을 때 딱 ‘서쪽’이라 부를 수 있는 자리에 수월봉은 위치해 있다. 그 말은 곧 바다 위로 해가 떨어지는 근사한 풍경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말. 그래서 수월봉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 명소로 알려져 있다.

 

언뜻 수월봉은 밋밋한 언덕이지, 오름같이 보이지 않는다. 용암이 터진 자리, 즉 ‘굼부리’가 없기 때문. 하지만 수월봉이 거대한 화산체의 일부임을 짐작케 하는 진짜 모습은 오름을 내려가야 볼 수 있다. 1만 8,000년 전 바다에서 태어난 후, 지금까지 바람과 파도에 깎여나가고 있는 해안 절벽의 단면은 보는 순간 감탄을 자아낸다. 나이테와 같은 화산의 속살을 따라 걷는 1km 남짓의 탐방로는 전 세계 지질학 연구자들에게 교과서와 같은 현장이라고. 수월봉을 올라가야 하는 오름이 아닌 ‘내려가야 하는’ 오름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수월봉에 간다면, 손에 꼽는  노을을 지닌 위쪽의 풍경과, 손에 꼽는 해안절벽을 간직한 아래쪽의 풍경을 꼭 모두 살펴보길.

김신지

 


마음에 물을 주러 가는 오름

대수산봉(큰물메오름)

+ 고성리 주민이자 프로 등산러인 할아버지의 추천

 

 

안개가 뿌옇게 서린 이른 아침 대수산봉을 찾았다. 나무가 우거진 길을 산책 삼아 오르니 금세 중턱에 이른다. 산책로 근처에서 맨손 체조를 하던 어르신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아, 주민들이 아침 운동하러 오는 오름이라니! 진정한 동네 오름에 맞게 찾아왔나 보다. 어르신들은 뭐 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올라왔냐고 걱정하시지만, 흰 벤치가 새초롬 올라앉은 대수산봉 정상에서는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보인다. 탁 트여 있어 조선시대에는 위급한 일을 전하는 봉수대가 있었단다.

 

성산리 마을도 한눈에 들어오고, 날이 맑을 때는 멀리 우도에서 섭지코지까지 이어지는 경관이 또렷해진다. ‘물이 솟아나 못을 이루었다’고  하여 ‘큰물메오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한참 보고 있자니 ‘푸른 바다를 껴안고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닐까?’ 없던 상상력도 생긴다. 작고 평탄한 동네 오름이 분명하지만,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 갈 장면은 충분하다.

권혜은

 


산신령과 마주칠 것 같은 신비의 오름

물영아리오름

+ 느영나영 게스트 하우스 매니저의 추천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내내 어둑어둑한 밤길을 걷는 것 같았다. 빽빽이 둘러싼 나무들 때문이다. 위를 올려다보면, 나무 틈새로 하늘이 한 조각 보인다. 걸어도 걸어도 하늘은 가까워지지 않는다. ‘오름’이 제주말로 ‘산’이라더니… 그동안 오르내렸던 왕복 20분 코스의 ‘언덕’ 같은 오름들과 물영아리오름은 차원이 달랐다. 높고 가팔랐다. 그러나 고통 끝엔 늘 꿀이 오는 법! ‘이제 더는 못 걷겠다’ 하고 마음의 소리가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 즈음이면 끝이 보이지 않던 계단이 끝나고, 내리막길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내리막길 끝엔, 지난여름 제주에서 봤던 최고의 비경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오름 가운데 푹 파인 분화구에 물이 고여 만들어진 습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습지 보호 구역이자, 2006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물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 어디선가 산신령이 나타나 “이 도끼가 네 도끼냐!” 하고 외칠 것만 같았다. ‘신비롭다’는 단어를 풍경으로 표현하면 딱 물영아리오름이지 않을까. 멍 때리며 습지를 내려다보는데 반대편에서 걸어 나오는 노루와 눈이 딱 마주쳤다. 반대편 둘레길을 돌아 하산하는 동안에도 노루의 까만 눈동자가 잊히지 않았다.

서재경

 


이 오름은 가성비 甲입니다

아부오름

+ 오름 좀 다녀본 제주 토박이 김수환의 추천

 

 

“와, 알프스 안 가도 되겠어.”

아부오름에서 마주친 커플이 서로에게 속닥대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10분 정도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왔을 뿐인데, 거짓말 조금 보태 스무 살 때 스위스에서 보았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기차 타고 한참을 올라가서 봤던 풍경을 10분 남짓 걸어 올라와 보다니, 가성비 좋은 오름이다. 아부하는 거 아니다. 이 풍경, 진짜다…! 오름 한가운데 넓고 깊은 분화구가 눈에 띈다. 그 안쪽엔 쭉 뻗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대부분의 오름이 그렇듯 아부오름도 목장의 일부인데, 나무가 빼곡한 분화구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소들이 삼삼오오 모여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과연 소 팔자가 上 팔자(!)구나 싶었다. 제주에 있는 동안 가성비 甲인 이 풍경을 즐기기 위해 아부오름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 한 번은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 또 한 번은 해 질 녘에. 나중에 알고 보니 밤엔 게스트 하우스 손님들이 모여서 별 나들이를 오는 명소이기도 하다고. 인스타그램에 아부오름 별 투어 사진을 검색해보니 별도 제법 많이 보였다. 다음 여행 땐 하루에 세 번은 와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서재경

 


자연인 효리 언니가 사랑한 오름 

금오름

+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번주 표지모델 김나연의 추천 

 

 

제주 서쪽에 위치한 금오름은 이효리의 ‘서울’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탔다. 이후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와 아이유가 함께 오르기도 했던 곳. 울창한 숲길을 따라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지는 정상에 이른다.

 

금오름의 풍경이 특별한 것은 정상 한가운데는 너른 분화구가 있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길이 나 있기 때문. 요즘은 가물어서 보기 힘들지만, 비가 온 뒤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작은 연못이 만들어지는 풍경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효리 언니가 왜 이곳을 촬영지로 삼았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는 풍경!).

 

하지만 신비로운 연못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너무 아쉬워하지 말길. 분화구를 마주 보고 오른편 언덕을 오르면, 멀리 비양도가 떠 있는 서쪽 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해 질 무렵, 나무 평상에 앉아 바다를 물들이는 노을을 보는 것만으로 이곳에 온 이유가 조용히 채워질 것이다. 금오름 탐방로는 이니스프리 모음재단에서 제주다우미와 함께 여섯 번째로 친환경 야자매트를 설치한 곳이기도 하다. 폭신한 야자매트 덕분에 편히 탐방로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사방에 펼쳐지는 각기 다른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덤.

김신지

 


EDITOR 김신지 김혜원 권혜은 서재경 suhjk@univ.me

PHOTOGRAPHER 김윤희 studio AL, 김신지,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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