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cm에 69kg L사이즈. 신체 건강한 평범한 ‘남자’의 사이즈죠. 그런데 제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면 어떨까요? 방금 ‘한 덩치 하겠는데~’ 생각하지는 않으셨나요? 저는 L사이즈를 입는 여자사람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비만’이 아니라 아주 건강해요. 운동을 좋아해서 지방보다는 근육이 더 많고요. 더욱 놀랍게도 제 주변에는 키 큰 여자사람들이 많은데요. 다들 365일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요. 키가 큰 여자는 조금만 살이 쪄도 뚱뚱해 보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거죠. 170cm가 넘는 성인 여성들이 쫄쫄 굶어가며 50kg대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는 거예요.

 

제 인생 최저 몸무게는 64kg이었어요. 바빠서 밥을 못 먹고 운동량만 많았던 시기죠. 체지방은 최저, 근육량은 최고치를 찍었지만, 사는 동안 가장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저혈당 쇼크로 쓰려진 거죠. 나중에 들어보니, 한창 말하다가 그대로 넘어갔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친구가 받아서 머리는 안 다쳤는데, 일어나니까 기억은 없지, 머리는 깨질 듯 아프지, 몸에는 힘도 안 들어가지. 그 이후로 굶으면서 하는 다이어트는 절대 안 해요.

 

사람에게는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건강한 몸무게가 있어요. 그런데 ‘표준’이라며 떠도는 미용 몸무게에 맞추려다 보면, 몸도 마음도 망가지죠. 집착하지 않기란 어려워요. 아주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악의 없는 강요를 받게 되기도 하거든요. 고등학교 입학할 때 저는 채 160cm가 안 됐어요. 입학 후 1년 만에 10cm가 넘게 커서 지금의 키가 된 거죠. 자연스럽게 살이 빠질 수밖에요. 그런데요. 그때 엄마한테 엄청난 칭찬을 받았어요.

 

“살이 빠지니까 너무 예쁘다.” “옛날엔 좀 뚱뚱했었지.” 자꾸 듣다 보니까 살이 찌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기더라고요. 안 먹고, 그나마 먹은 것도 토하고. 위염, 식도염을 달고 살았죠. 문득 이전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인데 왜 거울을 보면서, ‘나 되게 별로였나 보다. 지금은 괜찮나?’ 걱정을 하지 싶더라고요. 완벽하지 않았어도 나는 내가 싫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때부터 맘 편히 먹기 시작했어요. 살은 쪘지만 건강해졌고, 체력도 돌아왔죠.

 

“여리여리해야 아름답다.” 여성의 몸에 대한 고정관념은 생각보다 넓고 깊게 퍼져 있어요. 얼마 전엔 친구랑 쇼핑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20대들이 자주 가는 편집숍에서 웬 어린이용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는 거예요. ‘귀엽네’ 하고 뒤적이다가, 그게 성인 여성이 입는 ‘S사이즈’라는 걸 알았어요. 55 사이즈인 친구도 머리조차 안 들어가겠더라고요. 평범한 성인 여자의 골격으로는 입을 수 없는 옷들이 S사이즈라며 버젓이 팔리고 있는 거죠.

 

2~3년 전까지만 해도, 저도 M사이즈를 입었어요. 말랐었냐고요? 아니요. 그때도 키나 몸무게는 같았지만, M사이즈가 M사이즈답게 나오던 시절이었거든요. 해외로 여행을 가보면 국내의 기준이 얼마나 혹독해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죠. L사이즈가 침대 커버만 한 사이즈로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XS을 골라야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죠.

 

저도 예쁜 옷 입을 줄 알아요. 입고 싶고요. 하지만 국내에서 L사이즈는 구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해요. “사이즈 있어요?” 묻기도 무안해요. “고객님 사이즈는 저희 브랜드에 안 나와요.” 칼답이 되돌아오니까.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감히 너 같은 덩치가 우리 옷을 입으려고 해? 눈을 보호하기 위해 너 같은 건 입지 마’라는 무언의 질책이 들리는 것 같아요. 내가 판단해서 안 입는 게 아니라, 애초에 선택권 자체를 박탈당하는 거죠. 랩 원피스로 유명한 글로벌 브랜드는요. 한국에는 큰 사이즈 수입 자체를 안 한대요. 웃기는 건 그 브랜드가 저처럼 키 크고 골격이 있는 체형을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으로 유명해졌다는 거죠.

 

지금까지 저는 딱 붙는 옷만 즐겨 입었어요. 안 그러면 부하고 커 보이니까.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저런 스타일에 다 도전하고 있어요. 얼마 전엔 통바지에 도전했는데 나쁘지 않더라고요. “너는 태어날 때부터 아름답고 괜찮은 사람이야. 러브 유어 셀프!” 이런 말은 듣기만 해도 뻔하잖아요. 누가 남들 시선 중요하지 않은 것 모르나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작아질 땐, 내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거울 속 나와의 간극을 줄이려 시도해보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엄청 좋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상하지 않아’가 쌓이다보면, ‘어? 괜찮은데?’도 늘어날 거예요. 그거면 됐어요. 우리가 스스로를 인정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게 제일 먼저니까요.


[866호 – 20’s but]

※ 매일매일 내 몸에서 괜찮은 구석을 발견하고 있는 20대와의 인터뷰를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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