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살에 대학을 그만뒀어요. 돌이켜 보면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듯 관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했던 것 같아요. 다들 그렇잖아요. 12년간 당연하게 공부하고, 수능을 치르고. 전 성적이 안 나와서 심지어 1년 재수까지 했어요. 어떻게든 ‘인서울’ 대학 입학을 노렸죠. 다행히 합격은 했어요. 성적에 맞추느라 생각지도 않았던 인문대 어문학과에 지원해야 했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뭐지?’ 고민할 여유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요.

 

입학 직후에는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에 즐겁기도 했어요. 마음껏 풀어져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더라고요. 학교가 멀다는 핑계로 멋대로 결석하거나, 자체 휴강을 하고 동기들과 술 먹고 당구치는 게 일상이었죠. 모든 책임도 내게 떨어진다는 걸 몰랐던 거예요.

 

군대에 갈 시기가 다가오자 초초해졌어요. 그제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문득 어려서부터 요리하는 걸 좋아했다는 게 떠올랐어요. 부모님이 맞벌이시라 혼자 밥을 차려 먹어야 할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내가 한 요리를 맛있게 먹는 게, 또는 누군가 먹어주는 게 제일 즐거웠어요. 인문계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아예 경험해볼 기회조차 없어서 그렇지, 사실 제 안에는 이미 적성이 있었던 거죠.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했어요. 휴학을 하고, 일부러 취사병에 지원했죠. 혹독한 환경이 적성을 파악하는 데는 제일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근데 제대를 했는데도 요리하는 게 여전히 즐거운 거예요. 복학을 미루고, 바로 레스토랑의 주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막내에게는 거의 허드렛일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했어요. 운이 좋아 배울 점이 많은 멘토 셰프님도 만났고, 두 달 만에 정직원 제안까지 받게 되었죠.

 

노력하니 기회가 왔지만, 선택해야 했어요. 정직원으로 일하려면 복학을 더 미루든가, 아니면 아예 학교를 그만둬야 했죠. 저는 후자를 선택했어요. 대학에 미련이 없었거든요. 대학을 관두는 것보다, 대학을 졸업해도 깜깜할 미래가 훨씬 두려웠어요.

 

대학 간판이 프리패스였던 시대,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 보장되던 시대는 저물었잖아요. 엇비슷한 스펙을 쥐고 공무원 시험에 목숨 걸거나, 좋아하는 일도 아닌데 초봉 2400을 겨우 맞춰주는 회사를 감사해야 하는 문송한 현실이 무서웠습니다.

 

 

들인 등록금이 아깝진 않았냐고요? 왜 아니었겠어요. 하지만 원하지도 않고 흥미도 안 생기는 공부에 더는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버리는 게 가장 절약하는 길이다!’란 확신이 들었죠. 그렇게 주방에서 요리한 지 4년 차예요. 환기가 잘 안 되는 공간에서 10시간 이상 서있어야 하는 일이라, 체력적으로 상당히 힘들어요. 칼과 불을 다루다 보니 베이고 다치는 일도 많죠.

 

몸 쓰는 일도 많아서 아주 잠깐 ‘대학에 다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긴 해요. ‘사무실에서 일하면 몸은 지금보다 훨씬 편하겠다’는 생각. 하지만 그 뿐이에요.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몸이 힘든 것쯤이야, 내 음식을 손님이 끝까지 싹싹 비우는 뿌듯함이면 금세 잊히죠.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주변의 반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너무 피곤해하면 요즘에도 부모님이 “다시 학교 가고 싶은 생각 안 들어? 후회 안 하겠어?” 물어보기도 하세요. 간혹 주방 선배들이 “학교나 계속 다니지 왜 굳이 힘든 길로 왔냐”며 의아해하기도 하고요. 근데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요. 내 인생이고, 대신 살아줄 건 아니잖아요.

 

대학을 그만두었다고 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도 아니고요. 현장에서 더 많은 걸 공부하고 있어요. 또 지금은 요리를 만들고 있지만, 나중에는 메뉴를 개발하는 일도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어요. 도움이 된다면 나이가 더 들어서라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학위를 딸 생각도 있어요. 내가 필요로 하는 배움이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남들이 가니까 대학 가고, 시험공부하는 그런 것 말고요.

 

되게 강한 척 말했지만, 사실 저도 두부 멘탈인데요.(웃음) 각자의 상황이 다르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모두 대학을 뛰쳐나와 꿈을 찾으세요!”라고 떠들고 싶은 건 아니에요. 다만 사회가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하니까 “안 된다”고 미리 못 박지는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현실에서 고를 수 있는 세 개의 선택지가 있다면, 한 번씩 경험해보면 좋겠습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돼!” 속단하지 마세요. 직접 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도 분명 있으니까요.


[867호 – 20’S BUT]

대학 안 다녀도, 마음껏 꿈꾸는 20대와의 인터뷰를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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