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의 8할 이상이 전공에 의해 좌우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공은 단순히 어떤 학문을 배우느냐 이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공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특정 방향의 진로를 접하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전공 선택에 실패한 가여운 친구들은? 전과를 꿈꾼다. 이들은 매우 조심스럽다. 두 번째 전공마저 실패하면 정말 노답이니까.(주륵) 새 출발을 위해 고민하는 예비 전과생들을 위해, 다양한 전과 고민과 선배들의 전과 사례를 모아봤다.


저는 어렸을 때 중국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별 고민 없이 중어중문학과에 왔어요. 중국어는 할 줄 아니까. 그런데 막상 배워보니 중국 문화나 언어에 그다지 흥미가 안 생겼어요. 그냥 고등학생 때처럼 수업 듣고 시험 보고 수동적으로 지냈죠. 그러다 우연히 철학교양강의를 들었는데….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제가 원하던 대학 공부를 드디어 찾은 듯했어요.

이후 철학책도 여러 권 읽어보고 다른 강의도 들어봤는데, 알면 알수록 더 배워보고 싶고 제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철학과로 전과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모두가 쌍수를 들고 말리더군요. 나중에 취직은 어떻게 할 거냐면서요.

그런데 제 목표는 ‘나답게’ 사는 거라서, 돈은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만 벌고 원하는 지식을 쌓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거든요. 물론 주변 사람들이 뭘 걱정하는지는 알지만, 대학까지 와서 원하지도 않는 걸 배우는 게 정말 시간 낭비 돈 낭비처럼 느껴지는데, 어쩌죠?

 

국어국문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한 선배 A

저도 교양수업을 계기로 철학의 매력에 빠져 전과를 한 사람입니다.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과정이 적성과 잘 맞아서 만족스럽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명확하고 철학적 사고를 하는 게 재미있다면 전과해도 좋을 거예요.

다만 이건 꼭 알아두세요. 수업에는 만족하더라도 진로 때문에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요. 대안이 없어서 무작정 대학원에 진학하는 친구들도 꽤 있는데, 그마저도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팁을 드리자면 철학은 타 전공과 함께 배울 때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아요. 저는 사회학을 복수 전공하고 추가로 인지과학을 연계전공하고 있습니다. 취업할 때도 이 장점을 살려서 진로를 정할 계획이에요.

 

화학공학과에서 신문방송학과로 전과한 선배 B

제가 잡지 에디터가 되고 싶어 신방과로 전과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고개를 저었어요. 대학 말년에 고생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요.

하지만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전과한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전공을 바꾸니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이 달라졌어요. 친구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 글을 첨삭해주기도 하고, 신문사와 방송국에 들어간 선배들을 통해 직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었죠.

물론 전공을 바꾼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 과마다 가진 인프라가 다르기 때문에, 진로를 보다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선 전과가 필요한 것 같아요.


디자인예술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 그리고 만드는 데 소질이 있었어요. 전공 공부도 나름 재밌었어요. 새로운 툴을 배우고 디자인에 대해서 고민하고. 여기 와서 만난 친구들도 마음에 들고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제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느낍니다.

예술대 특성상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 틈에서 학점을 받으려고 애써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이렇게 잘 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 같은 사람이 업계에 발을 들일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취업이 잘 되는 과로 전과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기업에서 우대하는 상경 계열으로요. 전과를 하려면 올해 신청해야 할 것 같은데. 취직을 좇아서 전과하는 게 맞을지 고민입니다.

 

응용생물공학에서 기계공학과로 전과한 선배 A

일찍이 취업 생각해서 냉큼 공대로 옮긴 1인으로서 한마디 보태자면, 단순히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섣불리 과를 선택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주변사람들 중에 취업을 목적으로 전과했다가 전공공부가 너무 힘들고 안 맞아서 좌절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저도 처음엔 같은 이유로 엄청 후회했고요.

그러니 관심 있는 과의 수업도 들어보고 선배들과 이야기도 나눠보면서 내가 이 공부를 잘 해낼 수 있을지, 이쪽으로 취업한다면 어떤 직무를 맡고 싶은지 충분히 생각해본 다음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사학과에서 경영학과로 전과한 선배 B

경영학과로 전과하는 건, 취업에 있어서 탁월한 선택입니다. 저는 취직 걱정 끝에 2학년이 되자마자 전과했거든요. 지금은 막 학기 취준생인데 요즘 따라 전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기업, 사기업 불문하고 경영학과를 우대하는 자리가 정말 많아요.

하지만 전과하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해야할 게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라요. 저는 교수님 수업 스타일, 과 분위기 등 전부 다시 적응해야 해서 솔직히 좀 힘들었거든요.

또 전과 덕분에 남들보다 1년 늦게 시작한 셈이 되어서, 졸업요건 맞추기 위해서 매학기 학점을 꽉꽉 채워들을 수밖에 없었고요. 이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취업 잘되는 과가 좋다면 전과를 추천합니다.


수험생 시절 학과를 선택할 때 많은 고민을 하진 않았습니다. 막연히 궁전 같은 곳에서 각 잡힌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호텔리어’가 되고 싶었죠. 하지만 막상 대학에 와보니, 전공이 적성에 너무 안 맞았어요.

저는 원래 낯도 많이 가리고 내향적인 성격인데, 조별 과제와 발표, 야외 실습과 같이 적극성을 요하는 활동이 무척 많았거든요. 그 모든 과정이 저한텐 고역이었어요. 심지어 어색한 사람들과 답사를 가서 숙박을 해야 할 때도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면 일주일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곤 했죠. 지금까진 꾸역꾸역 학교를 다녔는데 더는 안 될 것 같아 과를 바꾸고 싶어요.

하지만 막상 전과를 하려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고, 또 바꾼 다음에 나랑 안 맞으면 어떡하지 싶고. 걱정이 많아 마음이 심란합니다.

 

건축학과에서 심리학과로 전과한 선배 A

잘못된 전공 선택으로 고통 받는 심정 매우 공감합니다. 저도 성적에 맞춰서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과에 지원했어요. 그리고 전공의 이미지와 실제 전공 공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교수님은 늘 창의적 디자인을 요구하셨고, 저는 마치 미대생이 된 것처럼 각종 디자인 툴을 배워야 했어요.

이대로는 아니다 싶어서 전과를 결심했습니다. 전공 선택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보니, 어떤 과로 진학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교양 3과목, 전공 기초 2과목을 미리 수강하면서, 과연 이 전공이 나에게 맞는지 차근차근 확인해 나갔습니다. 당연히 지금은 만족하고요. 조급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두 번 실패하고 싶지 않다면 우선 관심 분야부터 찾아보시길.

 

지구환경과학과에서 신문방송학과로 전과한 선배 B

일단, 어딜 가나 낙원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과가 적성에 끔찍이 안 맞아 전과를 결심했는데요, 옮긴 과도 생각보다 썩 잘 맞진 않았어요. 흥미 있는 과목도 있었지만 몸이 배배꼬일 정도로 듣기 싫은 수업도 있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전과를 후회하지 않는 건, 지금은 힘들더라도 제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에요. 예전 학과에선 정말 버틸 수가 없었거든요. 적성에 꼭 맞는 학과를 찾기 힘들다면, 역으로 자신이 견딜 수 있을만한 공부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전과의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시는 광탈했고, 수능 성적은 처참하고. 그냥 갈 수 있는 대학 중에 어문계열 피해서 국제관계학과로 입학했어요. 첫 학기 성적표는 C밭이었습니다. 환율과 무역 파트에 완전 젬병이었고, 과 특유의 통암기 공부와 논술형 시험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어요. 2학년이 되면 괜찮아질까 싶어서 기다렸지만 점점 어려워질 뿐이었어요. 그제야 적성에 맞고, 재밌게 공부할 수 있는 과는 없을까 찾기 시작했죠.

뒤늦게 영화나 방송 관련 교양을 들을 때마다 흥미롭게 공부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가장 비슷한 걸 배우는 과는 문화콘텐츠학과인 거 같았어요. 관심이 생겨서 전공 두 과목을 들어봤더니 크게 어렵지도 않았고 성적도 잘 나왔어요.

그래도 고민이 되는 건, 아직 들어보지 못한 과목 중에 복병이 있을 수 있잖아요. 더욱이 이제 3학년 2학기를 앞두고 있어서 이미 늦었단 생각도 듭니다.

 

경제학과에서 중어중문학과로 전과한 선배 A

저도 첫 학과 공부가 너무 안 맞아서 힘들었습니다. 그래프, 숫자의 융단폭격에 이과로 진학한 듯 고통스러웠죠. 실제로 통계 관련 수업은 이과생들이 교양 삼아 듣고 A권을 쓸어가기도 했답니다. 전공 공부에 이골이 났을 때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어요. 그리곤 중어중문학과로 전과를 결심했습니다.

원래 중국어에 능통한 편이었고, 중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물론 전과한 이후에도 공부가 마냥 쉽진 않았어요. 한자로 된 고전 시들을 외워야 하고 무엇보다 논문 과제가 정말 많아요. 그래도 그래프를 분석하는 경제보다는 암기형 공부가 훨씬 잘 맞더라고요. 세상에 쉬운 전공은 없겠지만, 내가 더 쉽게 할 수 있는 전공은 있는 것 같아요.

 

환경대기과학과에서 영어영문학과로 전과한 선배 B

제 생각엔 3학년 때 전과를 하는 건 리스크가 좀 큰 것 같아요. 저는 밑도 끝도 없이 어려워지는 물리가 감당이 안 돼서 뒤늦게 과를 바꿨는데요, 오히려 전과한 후에 더 멘붕이었습니다. 영어 성적이 곧잘 나와서 영어영문학과에 가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제대로 배워보니 발만 담그는 것과 전공 공부는 천지 차이더라고요. 학점도 잘 안 나왔고 실력도 애매해서 나중엔 어중이떠중이가 된 것 같았어요.

진짜 배워보고 싶은 것이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 시기엔 차라리 복수전공을 하거나 전공 외의 다른 활동에 집중하면서 나만의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걸 추천하고 싶네요.


[867호-CAMPUS]

CAMPUS EDITOR 박지원 김예란 yeran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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