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표 때문에 진짜 너무 힘들다. 갑자기 난생처음 보는 뭘 가져와서 새 프로젝트라 하고, 실컷 만들면 엎었다가 다시 했다가, 낮술이나 마시면서 자유롭게 산댔다가 어떤 날은 매출 때문에 불안해서 밥도 안 먹고, 옆에서 완전 눈치 보임. 근데 그 대표가 나야. 인생 경영 더럽게 못 해서 내 안의 부하 직원만 이리저리 구르는 중. 대표랑 헤어질 수도 없어서 평생 이렇게 살 생각하니 헛웃음만…ㅎㅎ. 아이고.’

 

지난여름 내 SNS에 올린 글인데, 지금 봐도 여전히 웃음이 난다. 인생 경영 능력이 백종원 씨 만나기 전 골목 식당 수준인데, 내가 인생 CEO라니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뭘 해도 안 되는 시기가 있다고들 한다. 내게는 올해 상반기가 그랬다. 9년간 책을 만들다가 이제 다른 걸 해보겠다며 무턱대고 회사를 그만뒀는데 퇴사 2주 만에 컴퓨터가 삐이이이 소리와 함께 다시는 켜지지 않았고, A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최종 면접까지 패스했으나 대표의 변덕으로 입사 무산, B 기업에서는 두 달에 걸친 긴 전형을 잘 해놓고 최종 단계에서 탈락, 멀쩡하던 스팀 청소기는 더 이상 물이 끓지 않았고, 전기 포트는 갑자기 뚜껑이 안 열려서 버려야 했다.

 

작은 불행들이 겹치는 게 진정한 지옥이라 했던가. 내 나이 벌써 3n살. 남들은 차도 사고 연봉도 올리며 승승장구하는데 직업도, 컴퓨터도, 스팀 청소기도, 전기 포트도 없는 나는 실패한 인생이 확실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어떻게든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독립출판을 하겠다는 둥,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겠다는 둥, 굿즈를 만들어서 팔겠다는 둥 불안 상쇄용 일을 잔뜩 벌였다.

 

하지만 끝을 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독립출판은 이걸 해서 얼마나 벌까 싶어 포기했고, 여행은 좋은 기업에서 구직 공고가 날까 봐, 굿즈는 업체 선정과 단가 조정이 힘들어 그만뒀다. 틈틈이 이력서도 썼다. 서류를 제출하고서도 만일을 위해 온종일 구직 정보를 검색했고, 이제 그만하자 싶어 책을 펼쳤다가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아까 본 구직 정보를 보고 또 보고, 즐겨찾기에 넣었다 빼며 새벽까지 마우스를 놓지 않는 나날이 이어졌다. 이룬 것 하나 없이 매일 피곤했다. 그러다가 새벽 2시에 이력서를 수정하려고 이불을 박찬 내 모습에서 두둥, 현타를 맞이했다.

 

만약 내가 한 회사를 경영하는 대표라면 직원을 이렇게까지 굴릴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보면 당시 나는 실패만 반복하던 상태가 아니었다. 소액이지만 글쓰기 강의로 돈을 벌고 있었고, 출판사와 계약해 책도 쓰고 있었으며,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쓴 글들이 카카오톡 채널 등에 부지런히 노출되었다. 최종 입사일을 논의 중인 회사도 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김 대표는 성에 차지 않아 했다. 일을 마치고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잡은 고기에 만족하지 말고 더 대단한 일을 해내라고, 현금도 더 만들고 플랜 B, C도 짜내라고 채찍질했다.

 

회사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뭔가를 잘 해내면 내 안의 대표는 잘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며 심드렁하게 말했고, 실수하거나 잘 못 해내면 도대체 뭘 한 거냐며 윽박질렀다. 절대 저렇게는 되지 말자고 생각했던 최악의 상사, 그게 바로 내 인생 CEO의 실체였다. 더 최악인 것은 이 망할 대표와 나는 평생 함께해야 할 운명 공동체라는 점이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를 끄고 내 안의 대표에게 진지하게 면담을 신청했다. 당신이 뭔가를 해보고 싶다 하면 김 대리는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해주지 않았냐고, 이쯤 했으면 직원 복지도 한 번쯤 생각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제 대표인 당신이 좀 바뀌어보라고 말이다.

 

영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었던지 그날 이후 김 대표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같은 일을 하면서도 김 대리의 업무량을 줄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각종 간식과 탕비 용품을 무한대로 제공했으며, 그간 열심히 일했으니 휴가도 언제든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또 뭔가를 잘 해내면 김 대리의 공을 동네방네 자랑했고 실수를 하면 오류 따위 바로잡으면 그만 아니냐며 셀프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여전히 모르나 적어도 자신에게 예의 바른 파트너가 되어준 것이다. 그래서일까. 갈팡질팡했던 상반기와 달리 우리는 글과 강의에 집중하며 나름 안정된 경영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표가 통 크게 선물한 에어컨 덕에 올여름도 서늘하게 보냈고 말이다(물론 36개월 할부라 함께 갚아야 하지만). 인생 경영 이래 직원 복지 최고의 나날이다.

 

작은 불행들이 겹쳤을 때 삶은 지옥이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그렇게 만들어진 지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반면 자신을 윽박지르며 스스로 더 깊은 지옥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평생을 그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 지금껏 내가 그래 왔듯 말이다.

 

당신도 지금 자신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한 번만 자신을 제3자로서 예의 바르게 대해보시라. 뭔가를 잘못했더라도 ‘내가 제3자에게도 이렇게 윽박지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시라.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에게 선을 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은 좋은 파트너로서 자신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지? 저는 이제 복지 차원에서 직원에게 맥주라도 한잔 사 줄까 생각 중입니다만.


[869호 – think]

Writer 김은경

책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저자, 전 편집자

illustrator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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