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당신의 좌우명, 인생의 모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 건 유명인 인터뷰에서나 물어보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하게 살면서도 좌우명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취업 준비를 위해 각종 지원서를 쓰면서. 또 말주변이 없는 소개팅 상대에게. 혹은 긴 술자리 끝에 이야기가 문득 진지해질 때. 솔직히 말하면 그때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모르겠다.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대충 그럴싸해 보이는 아무 말을 뱉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일까. 스스로 정한 삶의 방침을 따라 꼿꼿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는 멋진 사람들을 살펴보면 다들 나와는 달리 견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프로듀서 그레이의 인생 모토는 ‘하기나 해’인데, 불안정한 미래가 걱정돼도, 내 재능이 의심스러워도 일단 ‘하기나 해’라는 마음으로 본인을 다독이며 작업에 집중한단다. 실제로 그는 매우 다작하는 프로듀서이며 본인의 가치관에 꼭 맞는 가사를 쓴다.

 

“뭐든지 걱정만 많으면/잘 될 것도 되다가 안 되니까/그냥 그냥 하기나 해”, “안 될 거란 생각은 뒤로/언제나 네 자신을 믿어/끝나기 전에 계속 도전해.” 그리고 그렇게 ‘하기나 한’ 결과 최고의 프로듀서가 됐다.

 

만약 나였다면? 해봤는데 안 되더라며 계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노선을 수정했을 것이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로. 그렇다. 나는 수시로 가치관이 바뀌는 줏대 없는 인간이다. 그런 주제에 크고 작은 다짐을 양산하며 설레발 치는 대책 없는 인간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좌우명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던데. 그럼 내 가치관은 육 개월에 한 번씩 바뀐 셈인건가?

 

한번은 인간관계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겠다며 각종 SNS를 비활성화하고 잠정적 잠수 모드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쯤 인간관계의 허망함에 대해 고민중이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자고 다짐했는데… 얼마 가지 못하고 외로워져버렸다.

 

결국 웃긴 이야기를 단체방에 공유해 낄낄거리고 싶은 욕구, 허름한 술집에 모여 왁자지껄하게 놀고 싶은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은근슬쩍 SNS 계정을 활성화 했다. 비장하게 세웠던 인간관계에 대한 지침도 대폭 수정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왜냐하면 그새 또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핫), 아마 ‘끝날 때 끝나더라도 눈앞에 놓인 관계에 최선을 다하자’쯤이었을 거다.

 

 

사실 좌우명이나 가치관처럼 거창한 이야기까지 꺼낼 것도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내 생각은 멜론 실시간 차트처럼 수시로 변하니까. 안 그러려고 해도 무언가를 다짐하고 나면 꼭 번복해야 할 일이 생긴다.

 

“요즘 밥벌이의 숭고함에 대해 새삼 느끼고 있어. 돈 벌어서 계속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싶어.” 

“김혜원 변했네.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더니.”

“내가 그런 철없는 소릴 했었나. 나 소비왕인데.”(머쓱)

 

“결혼하니까 안정적이어서 좋아. 일과 삶이 분리되는 느낌이야.”

“언제는 결혼은 죽은 제도일 뿐이라며. 너 변했다?”

해보니까 괜찮더라고….”(민망)

 

뭐 이런 식이다.

 

물론 나라고 실없는 사람처럼 이랬다저랬다 하며 사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부끄럽다. 아침에 커피 마시듯 다짐을 번복하는 건 아무래도 모양 빠지는 일이니까.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기도 했다.

 

생각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입 밖으로 뱉지 말아 볼까? 놉. 그건 현실성이 없잖아.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게 생각인데. 묵언 수행을 할 게 아니라면 실현 불가능한 대안이지. 그럼 다짐하고 난 뒤엔 틀린 것 같아도 일단 지속해볼까? 아냐, 그건 좀 바보 같아. 틀린 답으로 고집부리는 것보단 우유부단한 게 낫지. 이것도 실패.

 

오랜 기간 부질없는 문제를 붙들고 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주변에선 나름대로 해답을 내려주려고 했는데, 여론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쪽으로 기울었다. 나이가 들면 아무리 오락가락 하는 사람이라도 나름의 기준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과연 그럴까? 마흔 쯤 되면 줏대 있는 사람이 될까? 나를 둘러싼 환경은 죽을 때까지 계속 변할 텐데? 환경이 변했는데도 자신의 답을 고집하는 건 꼰대 아닌가. 꼰대가 되고 싶은 건 아닌데.

 

생각 많은 사람 특유의 듣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던 중, 나는 뜻밖의 정신승리를 하게 된다. 마트에서 장난감 코너를 구경하다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마론 인형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던 거다. ‘쥬쥬의 장점: 금방 반성한다.’ 함께 있던 친구는 이런 게 무슨 장점이냐며 낄낄거렸지만,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 뒤집듯 다짐이 바뀌는 건 분명 멋없는 일이다. 하지만 관점을 살짝 바꿔서 보면 내가 사는 방식이 옳지 않았다는 걸 빠르게 인정하고 옳은 방향으로 수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태도가 유연한 사람인 거지. 그래! 잘못 하는 걸 피할 수 없다면 반성이라도 빠르게 하면 되잖아. 이대로 늙는다면 적어도 고집쟁이 할머니가 되는 건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좋았어, 앞으로는 오락가락하더라도 조금씩 정답에 가까워지는 인생을 살겠다. (이런, 또 다짐을 해버렸네.)

 

P.S. 언젠가 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건너편에 있던 친구가 “불편해 보이는데 왜 계속 그 자세로 있어?”라고 말해서, “그러게. 왜 이러고 있었지?” 하고 고쳐 앉은 적이 있다. 인생 1회 차인 내게 있어 삶의 자세란 딱 그 정도의 단단함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자꾸 변한다고 해서 너무 머쓱해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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