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덕에 둠칫거리며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출퇴근길, 퀸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라이브 중인 프레디 머큐리에 빙의하여 파워 워킹을 하다 보면 힘이 난다고. 나도 그랬다.

 

어제는 고민이 있어 집 앞 개천을 산책했는데 흥분한 프레디 머큐리가 “we will we will rock you”를 내 양쪽 귓구멍에 내리꽂아주고, 흐드러지는 낙엽 사이로 개천이 햇빛을 반사하며 끝도 없이 막 졸졸 흐르고, 중간에 허기가 져서 버거킹의 머시룸치즈와퍼 세트를 손에 들고 콜라를 홀짝이며 걷는데 크으, 여기가 바로 브루클린이구나. 와썹 베이비스! 고민이고 뭐고 기분이 좋아져 집에 돌아와서도 둠칫거리며 일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산책이었다.

 

글을 쓰고, 글을 읽고, 강의를 하면서 산 지 약 1년. 나는 대부분의 일을 집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온종일 음악을 듣는다. 설거지할 때는 어깨가 절로 움직이는 시원한 시티팝, 산책할 때는 지아코와 크러쉬(요즘은 단연 퀸이지만), 책을 읽거나 가벼운 일을 할 때는 주앙 지우베르투와 스탠 게츠의 잔잔한 보사노바,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때는 천재들이 나오는 영화의 OST를 MC스퀘어처럼 스트리밍한다.

 

재즈 마니아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음악 취향이 확고한 나머지 한낮에 커피숍에 갔을 때 은은하게 들려오는 BGM을 듣고 ‘음, 이건 저녁 노래인데 한낮에 틀다니 곤란하군’이라고 생각했다는데 하루키만큼 민감하지는 않지만 어떤 순간에 어떤 BGM을 선택하느냐는 확실히 중요하다. 음악은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이 아니고 쿠크다스 멘탈을 가진 나의 정신 건강을 지켜주는 거대한 에어백이므로.

 

 

이렇게 상황과 장르를 매칭해서 음악을 듣게 된 계기가 있다. 나는 사실 음악보다는 영화 마니아로 매주 금요일 저녁 유튜브에 올라오는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이라는 영화 평론 프로그램을 2년째 보고 있는데 그날의 주제는 ‘우주 영화 3선’이었다. <마션>, <인터스텔라>, <콘택트> 세 작품을 두고 두 입담꾼이 주거니 받거니 설을 푸는데 <마션> 부분에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BGM으로 어떤 음악을 까느냐에 따라 관객이 그 장면을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

 

화성에 홀로 남은 맷 데이먼이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감자 농사 및 각종 실험에 실패한다 한들 경쾌한 음악이 실리면 그 장면을 재미있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당사자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일지라도 그런 음악을 들으면 실험이 실패할 확률도 적게 느껴지고, 설사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 일 때문에 주인공이 죽거나 큰일을 겪지 않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면서 말이다.

 

우주 영화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 당시에는 ‘음, 그렇군’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나이를 먹다 보니 여기가 지구임에도 불구, 맷 데이먼보다 내가 먼저 구조를 받고 싶은 상황이 허다했다. 그리고 어느 휴일, 풀리지 않는 일 때문에 무기력하게 소파 위를 뒹굴거리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이 혹시 한 편의 영화라면, 지금은 기막힌 결말로 치닫기 전 반드시 겪어야 할 시행착오의 순간이 아닐까? <마션>에서 맷 데이먼이 감자 농사에 도전하고,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제시 아이젠버그가 기숙생들 사진으로 이상형 토너먼트 프로그램을 만들고,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온갖 방법으로 수표를 위조하던 것처럼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갑자기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매우 도전적이고 희망적인(하지만 어디서 듣도 보도 못 한) BGM이 머릿속에 스트리밍되는데 평소 쓰지도 않던 안경이 갑자기 막 쓰고 싶고, 이까짓 일쯤 어떻게든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이 샘솟았다. 생각해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결정적인 순간 굉장한 BGM을 내리꽂으며 희망과 사랑을 극대화하는데 우리는 왜 맹숭맹숭 BGM 빠진 영화처럼 인생을 정면 돌파하며 살아가지?

 

그렇게 나는 BGM 신봉자가 되었다.

몇 건은 신나는 음악 덕에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이뤄냈고, 또 몇 건은 본능이 예고한 것처럼 망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겠지’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기에 손해는 아니었다. 이왕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절망과 우울에 빠져 꾸역꾸역 나아가기보다 망해도 죽지는 않을 것이라 믿으며 미래를 긍정하는 것이 확실히 이익이었다(그리고 그 어려운 것을 음악이 도와주고 말이다!). 참고로 지금 이 글은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의 창업기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OST 중 하나인 <Painted Sun in Abstract>를 들으며 썼다.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의 음악이라 이 글 덕에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슬쩍 해본다.

 

이런 이유로 나는 각각의 상황마다 적절한 BGM을 흘려보내며 둠칫둠칫 산다. 괴로운 일이 있을 때면 ‘시바, 이까짓 게 뭔데!’ 하는 마음으로 볼륨을 최대치로 올리고 지아코와 크러쉬의 힙합을 들으며 집 주변을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긍정성이 한없이 느껴지는 음악을 들으며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마음으로 뭔가에 임한다. 그래서 나는 출퇴근길 퀸의 노래를 크게 들으며 파워 당당하게 걷는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봤을 때 떠오르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BGM은 중요하다.


[872호 – think]

Writer 김은경 

책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저자, 전 편집자자

illustrator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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