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 10명 중 9명이 지방에서 왔다고 하면 “거기 시골 아니야?”라고 되묻는다. 서울에 대해 잘 모르면 ‘촌놈’이라고 놀리면서, 정작 서울 외 지역에 대해선 알아보지도, 알고 싶지도 않아 하는 지독한 서울 중심주의,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서울공화국에 반대하는 지방사람 8명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 속의 크고 작은 차별들을 집어 봤다.

 

# 재미없는 ‘감자국 타령’, 그만 좀 해

출처: Jtbc 예능 <아는 형님>

 

서울 사람들이 지방에 대해 아는 거라곤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특산물뿐인 것 같다. 지나친 일반화라고? 고향을 밝혔을 때 모두가 짜기라도 한 듯이 똑같은 농담을 하는데도? 천안에서 온 내 친구한테는 “천안 삼거리 흥~ 거기? 올 때 호두과자 사다 줘.” 강원도 출신인 나에게는 “강원도 사람들은 진짜 감자가 주식이야?” 처음엔 웃어 넘겼다. 그런데 1년 내내 ‘감자’ 타령을 하니 기분이 상했다.

 

그만할 때도 됐는데 아직도 페이스북에 ‘감자’만 등장하면 나를 태그 한다. ‘강원도에서는 돈이 부족할 때 감자로 가불한다. 성인은 감자 한 개, 학생은 감자 반 개를 내면 버스를 탈 수 있다. 하트 모양 감자로 고백한다’ 등등.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감자 유머’가 왜 이렇게 양산되나 싶어서 지켜봤더니 주범은 TV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강원도 출신 연예인들이 게스트로 나올 때마다 몇몇 출연자들은 감자 얘기할 틈만 엿본다. 그러고는 생뚱맞은 타이밍에 2005년에 개봉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올 법한 사투리로 내뱉는다. “니 감자 묵어 봤나?”라고.

 

여러분 이런 철 지난 유머는 그만 좀 합시다. 재미 1도 없어요.

 

-강원도가 고향인 L

 

# 왜 꼭 서울에서 모여야 해요?

출처: Jtbc 드라마 <청춘시대>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대학생이다. 그런데 충청도에서 대학을 다니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자주 놓친다. 일단 연합 동아리 대부분이 필수 사항에 ‘매주 서울 회의 참석 가능자’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아예 ‘수도권 거주자’만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단체도 많다. 참석 불가한 일정을 통보 받아 어렵게 얻은 면접 기회를 허무하게 날리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번엔 면접 이틀 전에 “수요일 오후 3시, 서울 본사 3층으로 와주세요”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방 사람이 평일 오후에 서울에서 면접을 치려면 그날 수업을 몽땅 빠져야 하는데. ‘전국’ 연합 동아리라면서 왜 지방 학생들의 이동 시간은 고려해주지 않는지.

 

우여곡절 끝에 단체에 들어가도 문제다. 다들 서울에서 모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행사가 서울에서 치러진다. 우리 팀에는 서울 사람보다 지방에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왜 꼭 서울에서 모여야 하는 걸까? 언젠가 “이번엔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모이자”고 해봤는데, “대전까지 갈 시간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뭐 시간이 남아돌아서 매번 서울로 가는 줄 아나? 뭐든지 서울 중심으로 생각하는 못된 태도.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

 

-충청도에서 대학 다니는 J

 

# 태풍,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서울’에는요

 

2018년 8월 23일 새벽. 태풍 ‘솔릭’은 본격적으로 제주도를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론 옆집 아저씨의 닭장이 저만치 날아가는 게 보였고, 한발 늦게 가지러 간 내 자전거는 눈앞에서 공중 2회전을 하며 하늘로 승천해버렸다.

 

이틀 후, 태풍은 마법처럼 사라졌고, 뉴스에선 “솔릭, 한반도에는 큰 피해 없어”와 같은 문구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주도는 휩쓸고 갔지만 수도권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 솔릭은 한순간에 ‘역대급 허풍’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누군가는 이 상황에 대해 “제주도는 한국이 아니냐”라며 비판했지만, 사실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만다. 서울에 첫눈 왔다는 소식은 하루 종일 검색어 1위를 차지하지만, 제주도 자연 재해는 지상파 뉴스에 한 줄 나오고 마는데 뭐. 어차피 우리나라는 서울민국인데, 서울에만 큰 피해 없으면 된 거잖아요?

 

-제주도 사는 대학생 S

 

# 지방 사는 취준생은 최하위 계층이에요

출처: Jtbc 드라마 <청춘시대>

 

1학년이었을 적, ‘서울에 사는 게 스펙’이라며 항상 푸념을 늘어놓는 선배가 있었다. 나는 선배가 그런류의 말을 할 때마다 ‘뭐야, 부산에도 있을 거 다 있는데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야’라며 마음속으로 콧방귀를 끼곤 했다.

 

그리고 대학의 끝자락에 서 있는 지금, 나는 과거의 내가 품었던 어리고 어리석었던 생각들에 콧방귀를 끼고 싶다. 왜냐하면, 나의 드림컴퍼니는 서울에서만 채용설명회를 개최했고, 평소 관심 있게 보던 기업들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취업박람회에만 고개를 내밀었거든.

 

어디 그뿐이랴, 부산 지사에서 인턴을 뽑는 경우에도, 면접은 서울 본사로 올라가서 봐야 한다. 그리고 며칠 후 회사 OT에 참석하라는 문자가 오면 군말 없이 다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하고.

 

그렇게 몇 번인가 붙을지, 안 붙을지도 모를 면접을 위해 시간과 돈과 체력을 쏟아붓고 나니, 5년 전 그 선배가 했던 푸념이 내 입에서도 자연스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서울에 사는 게 지인짜! 스펙이다, 스펙!”

 

-부산 사는 취준생 D

 

# 사투리를 왜 고쳐야 돼?

출처: Jtbc <김제동의 톡투유2>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한 지 어언 4년. 나는 여전히 경상도사투리를 쓰고 있고, 그 대가로 새내기 때부터 지금까지 말투에 대한 이런저런 코멘트를 들어왔다. ‘신기하다’, ‘재밌다’부터 ‘드세 보인다’, ‘사투리 참 안 고쳐지네’까지. 급기야 최근에 참가한 모의면접에서는 “지원자의 이미지와 말투 사이에 괴리감이 크면 안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표준어로 말한다면 더 논리적이고 단정해 보일 것이다”라는 피드백까지 받았다.

 

일단 그 자리에선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게 뭐야, 그냥 사투리 쓰니까 촌스럽고 깬다는 선입견을 표현한 것뿐이잖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서울 사람이 지방으로 내려가 산다 하더라도, “너 서울말 진짜 심하게 한다”, “왜 이렇게 서울말이 안 고쳐지지?”같은 소리는 듣지 않을 텐데.

 

‘치마는 이왕이면 다홍치마고, 말씨는 웬만하면 서울말’이라는 건가? 억울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이어 이제는 ‘말투’까지, 모든 게 서울이 기준이자 정답이 될 줄 알았으면, 나도 그냥 처음부터 서울에서 태어나는 건데!(?)

 

-경상도 출신 서울 거주자 Y

 

# 엄마, 과제 하러 서울 다녀올게요

 

예술대 학생이면 다 공감할 거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전시회 중 98%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걸. 그래서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는 미대생은, 전시회 한 번을 보기 위해서 왕복 5시간의 여정에 나서야 한다. 교수님이 전시회 관람 과제를 내주시면 걱정부터 앞선다. 아니나 다를까 리스트에 있는 전시 모두 서울에서 열리는 거다. 심지어 전시 기간이 일주일밖에 안 되는 것도 있다.

 

전시회뿐인가?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은 전공 과제를 인쇄물로 제출해야 한다. 지방의 인쇄소에서는 소량 인쇄를 취급하지 않을뿐더러 종이 종류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프린트를 하기 위해 서울에 가야 한다. 교수님들도 “웬만하면 충무로 가서 인쇄하세요”라고 대놓고 말한다. 과제할 시간도 부족한데 인쇄하러 서울행 버스까지 타야 하다니.

 

중간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서 인쇄소만 세 번이나 다녀왔으니까 교통비만 대체 얼마가 들었을까. 내가 서울에 살았다면 일주일에 다섯 시간, 한 달이면 꼬박 스무 시간씩을 아껴서 훨씬 만족스러운 과제를 할 수 있었겠지.

 

-충청도 사는 미대생 S

 

# 대중교통 불모지에선 집돌이가 될 수밖에

 

“대학교는 많은데 대중교통이 시원찮잖아, 여기만큼 택시 사업이 잘되는 곳이 없어~” 택시아저씨의 허심탄회한 고백에, 나는 공감의 헤드뱅잉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맞추는 대중교통 승하차 안내에 익숙한 서울 사람들이 여기 와서 산다면 아마 화병이 나서 앓아누울 것이다.

 

일단 여긴 노선 대부분이 승하차 안내 서비스 구역이 아니다(물론 도보 길 찾기도 잘 안 된다^^). 조선 시대처럼 정류장에 붙은 시간표를 봐야 하는데 그마저도 제시간에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 노선은 얼마나 구린지. 승용차로 15분이면 도착할 거리가 버스를 타면 40분 이상 걸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생활 반경은 자연스레 ‘집-학교-도서관’으로 축소됐고, 지갑 사정은 예기치 않은 택시비로 인해 자꾸만 얇아져 간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밤 10시만 되면 끊기는 버스 때문에 아르바이트 마감반은 꿈도 못 꾸고, 오후 늦게 수업이 끝나는 날이면 시내에서 영화 한 편 보기 힘든 서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서울에서 겨우 한 시간 반 남짓 떨어져 있을 뿐인데, 왜 교통 인프라는 10년 이상 차이 나는 것 같지? 옆 동네처럼 오색 빛깔 찬란한 지하철은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버스 노선만이라도 개편해주길!

-강원도 원주 거주 중인 대학생 J

 

# 외국 유학 전, 서울 유학은 필수 코스

출처: Jtbc 예능 <비정상 회담>

 

교환학생 지원 결심부터 서류 접수까지 장장 8개월이 넘게 걸릴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필수 조건 중 하나인 토플 점수 90점 만들기가 이렇게 험난할 줄이야. 토익 학원은 지방에도 제법 있지만 토플, 아이엘츠처럼 비교적 특수한 시험을 위한 학원은 전부 서울에 몰려 있다. 같은 학원의 분점이라고 해도 자료의 질이 확연히 달라서 끝내 서울로 가야 한다.

 

작년 7월, 부산 시내에 위치한 모 브랜드 영어 학원에등록했다. 몇 달이 지나도록 목표 점수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서 고민했더니 친구가 조언을 해줬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서울 가서 점수 만들고 오라고. 결국 겨울방학에 강남으로 상경했다. 비싼 학원비에 생활비까지. 금전적인 부담이 커서 잠은 1.5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해결했다.

 

춥고, 배고프고, 낯설고. 가난한 유학 생활을 이렇게 미리 경험해보는 건가? 서울에 살아서 일찌감치 강남 학원에 다닌 친구들은 두 달 만에 토플을 끝냈다는데. 나는 지방에 사는 죄로 4배가 넘는 시간을 허비했구나. 고시원 천장을 볼 때마다 문득 자괴감이 든다.

-교환 학생 준비 중인 부산 사람 K


[872호 – 20’S Life]

Campus Editor 김예란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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