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을 재밌게 하는 데 소질이 없다. 내 말에 아무도 대꾸 안 해주는 건 아닐까, 혹시 내 얘기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고민하다가 말할 타이밍을 놓칠 때가 부지기수다. 그래도 예전엔 ‘수줍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종종 긴 이야기를 꺼내기도,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설사 이야기가 재미없더라도 이 사람들은 나에게 면박 주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엔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몇 달 전 ‘갑분싸’ 사건을 겪은 뒤 나는 부쩍 주눅이 든 채로 지내고 있다. 딱딱한 회의 분위기를 풀어 보겠다고 괜한 농담을 던진 게 화근이었다. 실패한 농담 뒤 잠깐 정적이 흘렀고 이어서 후배가 한마디 했다.

 

“아~ 갑분싸네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실소를 터트렸지만, 당사자인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문득 그 말이 떠올라 머쓱해졌다.

 

JTBC <아는형님>

 

수많은 신조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세상에서 갑분싸는 ‘성공한 신조어’다. 어디에 가져다 써도 착착 달라붙는 탓에 갑분핫, 갑분교, 갑분사 등 수많은 파생어까지 만들어졌다. 그렇게 사람들은 갑분싸라는 단어에 익숙해졌다. 아는 사람 몇몇만 쓰던 신조어는 이제 오십 살 넘은 아빠까지 사용하는 일상적인 말이 돼버렸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피해자들이 생겼다. 바로 나처럼. 주위에는 갑분싸라는 말에 상처받고 입을 닫아버린 사람들이 늘어났다. 심지어 친구 A에게는 ‘김갑분싸’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몇 번 대화의 맥락을 잡지 못했을 뿐인데. 누군가 A를 ‘김갑분싸’라고 놀리기 시작했고, 그 후로 걔가 말을 할 때마다 주변에서 “김갑분싸님이 또 한 건 하셨다”며 조리돌림을 했다. A는 애써 웃어 넘겼지만 같은 상황을 겪어본 내 눈에는 그가 감추고 있는 당혹스러움이 보였다.

 

 

갑분싸가 효율적이고 재치 있는 신조어임은 부정할 수 없다. 대화가 끊기는 복잡 미묘한 상황을 단박에 이해시키니까. 이제 우리는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 세음절만 외치면 된다. 갑분싸! 하지만 그 편리함에 빠진 나머지 갑분싸를 너무 남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편리한 줄임말 뒤에 숨어서 상대방이 받을 상처를 모른 척 하고 있진 않은가?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사실 대화의 흐름 좀 끊으면 어때.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친구가 던지는 농담이 재미없다고 쳐. 그래도 그 이야기를 준비한 정성을 봐서 귀엽게 봐줄 수 있잖아. 안 그렇습니까 친구 여러분? 팍팍한 인생이잖아요. 우리 서로서로 귀엽게 봐주면서 삽시다.


[874 – special]

Campus Editor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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