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매일 밤마다 짧지만 성스러운 의식을 반복한다.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씻지도 말고 소파에 드러누워야 한다. 그러곤 차가운 발만 담요사이에 쏙 넣은 채로 스마트폰을 꺼낸다. 팔을 아프지 않게 치켜들고, 화면과 얼굴을 1대1 수평으로 맞춘 뒤 SNS에 접속한다. 페이스북, 다음에는 인스타그램, 그 다음에는 트위터. 더 이상 볼 내용이 없을 때까지 새로 고침을 반복한다. 이것이 최근의 내 취미다. 별 이유는 없다. 이래야 하루의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얼마 전까지는 술을 마실 때 그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빨리 취해버리는 게 취미였다. 허름한 대포에서 하루의 시름을 잊는 일드의 부장님을 흉내 내곤 했다. 별 이유는 없다. 빈속에 소주를 연거푸 들이켜 ‘캬아!’를 외치면 기분이 좋거든요.

 

방금 약간 한심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디톡스 시대에 역행하는 게 취미라니 쯧쯧. 알코올 쓰레기를 자처하는 게 취미라니 쯧쯧. 고작 저런 게 취미라니 쯧쯧쯧(다 좋은데 인간적으로 혀는 차지 말자). 아니 그런데 ‘고작인 것’들이 취미이면 안 되는 걸까? 겨우 ‘그깟 것’이 취미이면 안 되는 거야? 언제부터 취미가 이렇게 ‘귀하신’ 몸이 됐지.

 

“취미란에 뭘 써야 할지 도통 모르겠어.” 몇 년 전, 공채 시즌을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쓰던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단번에 맥주 500ml를 꿀꺽꿀꺽 마셔버리는 거다. 그 모습을 보며 쥐포를 씹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맥주 마시기라고 써.”라고 해버렸다. 진짜다.

 

몇 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그렇게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사람은 내 평생 본 일이 없었다. 술기운이었는지, 친구는 마구 웃더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취미란에 ‘맥주 마시기’를 적어 넣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내 친구는 얼마 뒤, 지난한 취준 생활을 뽀개게 됐다.

 

당연히 내 친구가 맥주를 잘 마셔서 뽑힌 건 아닐 것이다(물론 나는 죽는 날까지 맥주 마시기를 취미로 적은 덕분이라고 믿겠지만. 친구야 보고 있니?).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 수 있다. (적어도) 인사 담당자들은 취미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만큼 세상은 우리의 취미에 관심이 없다. ‘반정부 테러 단체를 조직하는 게 취미예요.’처럼 불법적인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그럼에도 다도와 요가로 마음의 평화를 다스리는 효리 언니를 보고 있노라면, 내겐 제대로 된 취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겨울마다 제철 생선 붕어빵 먹는 걸 좋아한다고 적어도 되나?’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엽떡을 먹는다고 쓰면 없어 보이겠지?’ 고민하다가 취미를 만들어준다는 클래스에 가입한다. 십중팔구는 똥손인 자아를 무시하고 향초, 프랑수 자수를 만들다가 성질만 나빠진 채 돌아온다.

 

우리는 취미를 어지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의 선생님들은 아주 예전부터 표준국어대사전에 취미를 이렇게 정의해두었다.

취미(趣味)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요약하면 ‘잘할 필요 없고 맘 가는 대로 즐겨라’ 정도가 되시겠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억지로 만들 필요도 없고, 전문가처럼 완벽하게 할 필요도 없고, 허접하거나 잘 못 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그게 바로 취미다. 사실은 쓸데없고, 하찮고, 시시하고, 별 볼 일 없을수록 좋은 것이다. 문방구에서 유리 반지를 색깔별로 뽑는 것처럼. 별 이유는 없지만, 해보면 즐거운 것들 전부가 취미가 된다.

 

마침 내 앞자리에 앉은 대학내일의 김신지 에디터는 최근에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라는 책을 냈다(맹세코 홍보는 아니다). 좋아하는 순간을 모아둔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내가 구구절절하게 전달하려고 했던 말이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모쪼록 ‘취미가 뭐예요?’란 질문에 부담을 덜 수 있길 바라면서, 한 구절을 인용하여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결코 내가 쓰기 귀찮아서가 아니다).

 

행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원하는 데 있다고 말해준 건 누구였더라. 이런 순간들을 수집하면서 나는 차츰 내가 가진 것을 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지려 애쓰는 대신, 내가 가진 순간을 다시 한 번 더 원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거나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삶을 그저 산책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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