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문학동네


 

 

막 학기를 끝내고 학교 기숙사에서 본가로 향하는 길, 스물넷의 나는 어쩐지 알 수 없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무언가가 새로 시작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된 희망이었다. “엄마 아빠, 저를 대학에 보내줘서 감사해요. 값진 경험이었어요. 저는 봄이 오기 전에 취업해서 독립하려고요.” 나는 희망에 취한 채로 제법 호기롭게 말했다. 그리고 그 후 1년간 취업에 실패했다. 긍지와 패기로 자기소개서를 썼던 나는 불합격을 거듭하며 서서히 좌절에 길들여졌다.

 

내게 진정한 비극은 취준생의 고난이 이미 흔하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취업 전선에 있는 또래가 아닌 먼 세대의 어른들도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취준생이 얼마나 고단하고 불안한지 잘 알고 있다. 내 경험은 어느 청춘 웹드라마 속 장기 취준생 김 아무개의 것과 별다를 바 없었다. “맨날 그렇지 뭐” “앞으로 더 열심히 해봐야지.” 여기저기 앓는 소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내 흔한 실패담 또한 지루하진 않을까, 나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나조차도 내 괴로움이 지겨웠다.

 

내겐 좀 더 세심한 위로가 필요했다. 격려의 말이나 미디어에서 보내는 응원 말고, 쌈박하면서도 진득하고, 진득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위로 말이다. 그런 위로를 뜬금없이 소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서 마주했다. 이 소설은 한때 꿈꾸던 것들을 완전히 실패하고 소위 ‘망한 인생’을 사는 주인공들에게서 구태여 희망을 찾지 않는다. 대신 슬픈 유머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회식 자리에서 고주망태가 된 앙숙을 고급 택시에 태워 강원도로 보내는 복수를 하는가 하면, 승무원 시험에서 낙방을 거듭한 전직 무용수 친구와 ‘픽미’에 맞춰 파워풀한 군무를 추다가 노래방 마이크를 훔쳐 달아나기도 한다. 갈 데까지 간 주인공은 술에 절어 우는 친구를 달래기 위해 거리 한복판에서 창작 무용을 선보이다가 우리는 세상의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고 소리 지른다. 나는 이 명랑하고도 슬픈 유머 덕분에 이상하게 기운이 났다. 이들 옆에서라면 비로소 나도 망했다고 후련하게 한탄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소설집을 묶었다고. 이를테면 만취해 택시를 타면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사람, 스스로를 바람 빠진 풍선처럼 여기는 사람…. 읽다가 나는 조용히 속으로 대답했다. 저요. 만약 당신도 같은 마음이라면 주인공을 따라 찬란한 밤을 보내고 돌아오길 추천한다. 답답한 속이 한결 편해질지도 모르니까. 서유정


[875호 – culture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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