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이다. 방학에 대한 흥분들로 어수선한 분위기, 연말 특유의 활기가 가득한 캠퍼스.
‘나도 작년엔 저랬었는데…’
다들 종강에 기뻐하는데, 난 종강이 무섭다. 신년을 맞이하는 희망찬 군중 속에서 지구종말론을 외치는 사이비교도가 된 느낌이다. 방학을 맞이한 캠퍼스는 점점 공허해진다. 무섭다, 4학년의 종강.
마지막 학기는 꼭 무언가를 이뤄야 했다. 2018년 1월 1일에 써놓은 목표대로라면 토익 900점에, 토스 레벨 7을 달성했어야 했고, 자소서 40개 중 3개 정도는 면접관을 광광 울려 어떤 회사를 갈지 ‘내가’ 골랐어야 했다. 회사를 결정하고 입사 전까지 남은 기간 동안은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겠지, 아마 유럽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오늘은 2019년을 열흘 앞둔 12월 21일. 취업은 안 됐고 유럽 아닌 자취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18년 다이어리 속 목표를 돌아보았다. 결의가 가득한 글씨체가 안쓰러웠다. 마땅히 성취한 건 없었고, 그것들은 남은 열흘 동안 이룰 수 없을 것들이었다. 한 달 한 달 순순히 자신을 넘겨주는 천박한 달력! 애꿎은 시간을 다그치며 종강을 맞이한다.
다른 친구들이 종강을 향해갈 때 나는 어떻게든 2018년을 붙잡고 싶었다. 아직 못 이룬 게 많아 2019년 달력을 넘길 수 없었다. 내년엔 이 안락한 캠퍼스를 새내기에게 양보해야 할 4학년. 졸업유예를 고민했다.
4학년 2학기 종강은 방학이 아닌 방생이다. 대학생이 아닌 다른 직업을 찾아야한다. 학교엔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다. 학교를 가장 오래 다닌 사람이지만 학교의 이방인이 된 4학년. 더 이상 들을 과목이 없어 학교에 나올 이유가 없지만 항상 학교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든 수험서가 각자의 목표를 말해주었다.
‘졸업식엔 갈 수 있을까?’
졸업식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의 안부를 묻지 않는 것. 졸업식 참석은 취업을, 불참은 취업 실패를 의미했다. 나는 졸업식에서 꼭 학사모를 던지고 싶었으나 축하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가지 않기로 했다.
취업 실패가 준 슬픔도 컸지만, 취업 여부가 대학생활 4년의 결론이 되는 게 더 슬펐다. 돌아보면 2018년은 내게 좋은 일이 꽤 있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고양이를 키우게 됐으며, 편찮았던 외할아버지의 건강이 호전되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슬픔에 매몰되어 더 큰 행복을 보지 못 한 건 아니었을까. 그들은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었는데…
할머니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인생은 부질없이 길고 덧없이 짧다’는 말. 이팔청춘이었는데 살다 보니 금새 일흔이 되었고, 일흔 살이 돼도 30년 더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는 세상이라고. 그래, 인생 부질 없이 긴 만큼 많은 기회가 남았고, 덧없이 짧은 만큼 후회는 잠깐이겠지.
버릇처럼 산 2019년 다이어리에 뭐라도 적어볼까 하다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라고 적었다. 조금 무책임한 것 같아 한 문장 더 붙였다. ‘될 대로 돼서 뭐라도 되면 된 거지’
4학년 2학기 종강. 여전히 무섭지만 뭐든 되겠지 뭐. 2019년의 목표는 목표의 여집합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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