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OO예고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어.”
내 인생 최초의 라이프플랜이었다. 얘기를 들은 아빠는 내게 춤을 춰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뼈 빠지게 공부시켜놨더니 무슨 예고냐고. 너는 예술에 재능이 없다고. 공부를 제일 잘 한다고. 아직까지 문예창작과 춤이 무슨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결국 예고는 가지 못했다.
잘 살지 않았다. 어쩌면 조금 가난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111번 시내버스를 몰았고, 엄마는 작은 화장품 회사에서 근무했다. IMF가 닥쳤을 무렵 아빠는 일을 그만두셨다. 엄마도 전자 부품을 조립하는 공장으로 이직을 하셨다. 그런 와중에도 난 수학 과외를 받았다. 3학년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 아닌 초등학교 3학년. 검도와 보습 학원도 다녔다.
어렸지만 부모님이 얼마나 내 교육에 사활을 걸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밤늦은 시간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에 잠이 깨는 경우가 많았는데 항상 학원비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 당시 부모님의 벌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절반 가까이 내 교육비로 지출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야 말겠다는 일념 따위는 없었고,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난 꼭 전문직 화이트칼라 종사자가 돼야지! 우리 엄마 아빠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사실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찾을 기회가 없었다. 구강기와 항문기 이딴 것처럼 공부는 또 하나의 욕망이었다.
고등학교에 오니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내가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게 공부였는데 말이다. 우리 고등학교는 모의고사 점수로 심화반을 뽑아 운영했고, 대부분의 심화반 아이들이 ‘월드 뭐시깽이’라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집에 복도가 있는 50~60평대 아파트라지. 18평짜리 대림빌라 전세를 살고 있는 나는 걔들보다 모의고사 점수가 50점은 낮았다. 그 때 알았다. 어쩌면 성적은 평수에 비례하는 것이라고. 절망에 채 다다르기도 전에 50점만큼의 가난을 수긍해버렸다.
“예서, 이 망할 년아 망하지 마!”라는 밈을 보았다. 망해야 마땅하지만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의 변태 같은 바람.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에 매혹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은 보통 악역의 악행까지 응원하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예서의 목표 그 자체를 응원하고 있다. ‘우리 예서 꼭 서울의대 길만 걷길’ 바란다고. 공부가 유일한 욕망인 예서는 우리들 그리고 나와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다.
예서는 3대째 의사 집안을 꿈꾸는 어른들의 욕망을 먹으며 자랐다. 나 역시 그랬다. 꿈과 장래희망을 구분하지 못했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은 내가 선생님이 되길 원했다. 의사라는 꿈보다 소박해보이지만 스카이캐슬이 아닌 대림빌라에서 선생님이란 목표는 이룰까 말까한 대단한 욕망이었다. 욕망의 크기가 가진 것에 비례했을 뿐이다.
<스카이캐슬>엔 수많은 내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수임 외에 마땅히 미운 사람이 없었다. 서울의대만을 꿈꾸는 부자 예서와 가진 것들을 증오하는 가난한 혜나는 모두 나였다. 예서와 혜나가 서울의대를 욕망한 것처럼 나또한 모 대학의 사범대를 욕망했다. 전교 1등은 쳐다보지도 못할 나무였지만, 전교 10등은 죽이고 싶은 라이벌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한서진보다 더했을지도 모른다. 벌이의 절반을 자녀에게 투자하진 않았을 테니까. 다만 한서진의 5%가 우리 집의 50%보다 더 컸을 뿐.
스카이캐슬을 보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교육현실에 대한 회의감도, 욕망에 눈먼 가족에 대한 환멸도 아니었다. ‘예서 부럽다’였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파멸로 치닫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부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대학과 그곳에 가기 위한 공부 때문이지. 10만원짜리 독서실을 다니든, 1억짜리 입시 코디를 고용하든 간에 누가 더 고결하게 공부를 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 같은 욕망, 같은 목표다. 스카이캐슬보다 스케일은 작지만 대림빌라에도 늘 욕망은 있었다. 어차피 공부만을 욕망해야한다면 난 대림빌라보단 스카이캐슬에 살고 싶었다.
“예고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어요.”
만약 내 아들이 이런 소리를 한다면 나는 춤 춰보라고 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뼈 빠지게 공부시켜놨더니 무슨 예고냐고. 너는 예술에 재능이 없다고. 공부를 제일 잘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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