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서 성공한 남자
“착해서 망했다”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는 말했다. 하지만 착함이나 정의로움, 한결 같음보다는 꼼수나 이기주의, 기회주의를 권하는 사회에서 영화 <제보자>의 심민호는 진실성으로 세상을 바꿨다. 그렇다면 배우 유연석은 어떨까. 이제는 가장 핫한 배우인 그의 앞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수식들은 10년간의 무명 생활과 지칠 줄 몰랐던 노력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의 아역으로 스크린에 등장한 게 2003년이니 어쩌면 지금 그를 비추는 스포트 라이트들은 진즉 켜졌어야 옳을 지도 모른다. 한눈팔 줄도 꼼수 부릴 줄도 모르고 묵묵히 연기라는 한 길만 판, 착해서 성공한 남자 유연석의 청춘은 지금부터다.

 

 


매 순간 다른 얼굴을 꿈꾼다

영화 <제보자>에 대한 주위 반응이 어땠나요?
다들 영화 좋았다고 칭 해주셨어요.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이라는 얘기도 있었고요. 반응이 좋아서 저 역시 기분이 좋습니다.

 

대본을 받고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응답하라 1994> 이후 칠봉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이런 점에서 영화 <제보자>의 ‘심민호’라는 역할은 상당히 다른 느낌의 캐릭터 였고요. 복합적인 이유인 것 같아요. 시나리오도 흥미로웠고 감독님도, 박해일 선배님도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하게 되었어요.

 

<응답하라 19994>를 통해 청춘스타의 이미지를 얻었으니, 다음 작품은 밝고 트렌디한 걸 택할 수 있었을 텐데 진지한 영화를 택하셨어요. 비교적 쉬운 길도 있는데 굳이 이 길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어떤 작품이 더 쉽다 어렵다 이야기하긴 힘들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은 작품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칠봉이의 연장선보단 정반대의 모습,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타보다는 배우로서 필모를 진지하게 쌓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컸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제보자라는 캐릭터를 구축할 때 디테일한 측면에 많이 신경을 쓰신 것 같아요.
가장 큰 고민은 ‘심민호라는 제보자가 진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였어요. 심민호는 증거 없이 제보를 하기 때문에 이를 얼마만큼 설득력 있게 연기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고민을 계속 하다보니 사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잔재주나 수식어 없이 진짜 담담히 이야기할거란 걸 깨달았어요. 연기할 때도 최대한 담담하게 팩트를 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스타보단 배우라는 이름으로

연기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많이 느껴져요. 언제부터 배우를 꿈꿨나요.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연극을 했어요. 연극이 끝나고 박수를 받는데 어린 나이임 에도 그게 너무 짜릿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부터 제가 무언가 준비해서 보여드리고 박수도 받고, 보시는 분들 역시 즐거워하면서 서로 교류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어요. 정확하게 배우가 되겠다는 것보단 그런 퍼포머를 꿈꿨던 것 같아요.

 

여러 작품을 연기했지만 이번 작품처럼 굵직한 선배들과 가깝게 호흡을 맞춘 작품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워낙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끔 배려를 잘 해주셔서요. 좋아하던 선배들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정말 컸어요. 제 캐릭터의 부각보다는 작품 안에서 제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을지가 더 고민이었고요.

 

배역을 선택할 때 본인이 부각되는 배역보다는 필모그라피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것 같네요.
종전에 보여드리지 않았던 모습에 더 흥미를 느끼는 편이에요. 장르도 마찬가지고요. 작품의 다양성이 크게 작용해요. 함께 하는 배우들도 고려 요소 중 하나고요. 딱 한 가지 기준을 고집해서 작품을 결정하는 편은 아니고 종합적인 요소를 생각하는 편입니다.

 

유연석이라는 배우의 강점은 선악이 공존하는 이미지와 어느 작품이든 완벽하게 녹아드는 점인데요. 스스로 생각하는 장단점은 뭐가 있나요?
제 강점이 라고 생각해주신 부분에 공감해요. 사실 제 외모는 하나의 이미지가 각인되기 쉽지 않은 편이라 콤플렉스였어요. 왜 이렇게 밋밋할까. 심심할까…. 하지만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니 한 이미지를 강하게 어필하기 보다는 다양한 역할을 어색하지 않게 연기해 나가는 것도 배우로서 장점이 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했고요.

 

취미가 많으신 것 같던데요. 사진전을 연 적도 있었고요. 예술적 감각을 활용해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너무 동떨어진 일을 하기보다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면서 살고 싶어요. 연기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고, 사진 작업도 좋아하는 일이긴 한데… 취미로 남기되 더 공부하고 싶어요.

 

끝날 때까진 끝이 아니다

무명 생활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길다면 긴 시간이 걸렸어요. 그 동안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거나 고민했던 시간은 없었나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 회의를 느껴본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어요. 물론 많은 고민이 있었고 힘든 적도 있었지만 갑자기 나락으로 빠지거나 작품을 못 하는 순간이 오진 않았어요. 아역, 단역, 조역… 조금씩 계단을 밟아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좌절하거나 회의감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람이다 보니 무너지거나 약해지는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무너진 적은 없었던 것 같고 조바심을 느낀 적은 있었죠. 공백기가 있다보니 ‘다시 작품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 그럴 때마다 스스로 채찍질을 했어요. 또 같이 일하는 형들이 “남자 배우는 서른부터다, 그러니 조바심을 가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항상 해주셔서, 마음속으로 그 말을 따르려고 노력했어요.

 

상당히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 같아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저한테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테고. 여러 가지 힘들다보면 나쁜 쪽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래도 다행히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편이에요.

 

무명 생활을 지나 지금은 가장 핫한 배우가 되었는데, 타인터뷰에서 스스로가 변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되고 두렵다고 하셨더라고요. 유연석씨가 지양하고자 하는 지점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누구나 환경이 달라지면 본인도 변하기 마련이거든요. 또, 예전보다 저에 대한 기대감과 관심이 굉장히 달라졌어요. 그러다보니 혹시 안 좋은 쪽으로 변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나쁜 쪽으로 변하지 않고자 스스로를 다잡으려고 노력해요. 물론 저도 변하겠죠, 변했을 거고요. 다만 지금의 저를 좋아해주신 단걸 알기 때문에 좋아해주시는 그 모습을 변하지 않고 계속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남자 배우는 서른부터라고 이야기하셨어요. 20대에 연기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작품에 임하는 태도와 서른이 넘어서의 태도 사이에 변화가 있었나요?
작품에 임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싶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다만 제게 주어진 책임감이나 기대치가 더 커진 만큼 신중해졌죠. 작품 선택에서 연기까지 모든 과정에서요. 어릴 때는 ‘나’라는 배우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연기했다면, 이제는 한 작품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그 안에 어떻게 녹아들지를 고민하게 돼요. 예전보다 더 크게 보는 편입니다. 또 제가 하는 일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이 함께 해나가는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저 혼자만의 잘못된 판단이 많은 것을 좌우할 수도 있으니 책임감도 많이 느껴요.

 

 

 

평생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있다

좀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연기… 재밌으세요?

(웃음) 재밌죠.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고 많은 걸 바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재미있지 않으면 10년 동안 특별한 수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오지 않았겠죠.예술 계통은 정해져 있는 길이 있는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것 같아요. 저는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긴 하지만 평생 ‘일’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지 좋아하고 있는 거죠.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사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렇게 사는 게 나쁘다고 할 수 없죠.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 역시 좋아 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죠. 다만 적어도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 때 뛰어들었으면…. 자기가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에 의해 직업이나 일을 선택하는 건 아쉬운 것 같아요.

 

유연석씨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어떤 배우일까요?
어려운 질문인데… (한참을 생각하다가) 혼이 깃든 배우라고 표현하면 적절할까요. 장인정신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적어도 배우는 연기를 할때 본인의 온전한 혼이 들어가야 하지 않나 생각해 요. 혼이 깃들지 않고, 모든 걸 다 걸지 않은 채 연기한다면 좋은 배우라고 하긴 힘들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요즘 저에겐 꽃할배 선배님들이 앞으로의 목표가 된 것 같아요. 그분들은 평생 연기를 해오셨고, 지금도 열정적으로 모든 걸 다 바치시면서 연기하고 계시니까요. 아직도 도전하고 계시고. 그런 모습들이 본받아야 할 배우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배우로서의 최종 목표는 다양한 모습, 혼이 깃든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되는 것이라면 인간 유연석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요?
평생 새로운 꿈을 꾸면서 살고 싶어요. 지금도 ‘연기’라는 좋아하는 꿈을 꿔왔기에 힘들어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래야 달릴 수 있고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틸 수 있으니까요. 좋아하는 꿈들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Editor 전아론 aron@univ.me

김민정 학생리포터 comicomet@hanmail.net
Photographer 박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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