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우리 배드민턴 제대로 한번 배워볼래?” 종종 배드민턴을 함께 치던 기숙사 룸메이트가 툭 던진 말에, 다음 학기 교양과목은 ‘기초 배드민턴’으로 정해졌다. 한층 더 프로페셔널하게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고, 건강에도 좋으니 일석이조네그려. 껄껄거리며 좋아하던 우리는 첫 수업이 끝나자마자 수강 삭제 버튼을 눌렀다.

 

이유는 수강생 대부분이 배드민턴 동아리의 실력자였기 때문. 서브를 넣는 팔의 각도, 흔들림 없는 눈빛, 군더더기 없는 스텝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아, C+각.’ 전공 공부 하기도 벅찬데 교양까지 노오력을 요하는 수업을 듣고 싶진 않았다. 더군다나 그렇게 노오력을 했는데도 성적이 보장되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운 좋게도, 나는 배드민턴 대신 일명 ‘꿀강’이라 불리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 강의는 과제와 발표가 일절 없고, 정해진 시간보다 무려 30분이나 일찍 마치며, 무엇보다 교수님께서 시험문제를 정확하고 간략하게 짚어주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한마디로 ‘출석은 하되, 출석만 하면 되는’ 그런 수업이란 말씀. 그래서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강의를 듣다가 졸리면 자고, 몸이 뻐근하면 잠시 밖으로 나가고. 나간 김에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돌아오곤 했다.

 

물론, 시험은 잘 봤다. 교수님이 짚어주시는 타율 98프로의 예상 문제들을 시험 하루 전날 달달 외우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A+짜리 시험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아, 이토록 손쉽게 최고 점수를 거머쥘 수 있다니. 그렇게 한번 꿀강의 맛을 본 나는, 그 후로 눈에 불을 켜고 또 다른 꿀강을, 되도록이면 개꿀강을 찾아다녔다. 학기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수강 신청 스킬 덕에, 나중에는 ‘꿀강 All 클릭 신화’라는 칭호까지 얻게 됐다.

 

 

적당히 복붙해서 쓴 리포트로 시험이 대체되는 수업부터 출석만 하면 pass를 받을 수 있는 강의까지. 가끔 돈을 주고 학점을 사는 것 같은 느낌에 회의감이 들었지만, 듣고 싶은 걸 다 신청했다가는 성적이 망할 것이 뻔했다. 하루는 24시간인데. 매일 몰아치는 팀플에, 알바에, 취업스터디까지 해야 하는데. 전략적으로 수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잖아. 게다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친구들, 선후배까지 전부 그러는데 뭐.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

 

지난날의 행보에 위화감을 느낀 건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서였다. 성적증명서를 제출할 일이 있어 서류를 발급받고 찬찬히 훑어보는데··· 세상에, 내가 이 수업에서 뭘 배웠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이 그랬다. 심지어 그중에는 내가 수강 신청을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것들도 있었다. 옆에는 분명 A+라고 버젓이 적혀있건만, 나는 여전히 아동이 어떻게 발달하는지, 인간 심리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알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나의 기호나 흥미를 배제한 채 ‘얼마나 쉽고 편하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만 생각하며 강의를 선택했으니. 수업에 집중을 할 필요도, 집중이 될 리도 없었겠지. 교양과 자율 선택 과목을 합쳐 적어도 28개 이상의 강의를 들었을 텐데, 그중에 기억에 남아있는 건 단 두 과목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머릿속에 점조차

찍지 못한 채 시험지를 내는 순간 다 날아가버린 것이다.

 

 

그렇게 놓쳐버린 과목은 후에 더 큰 대가를 주고 배워야 한다는 걸, 나는 머지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성적을 잘 받지 못할 것 같아 신청하지 않았던 ‘시나리오 쓰기’ 수업을 후에 외부 기관에서 배우려니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다. 근처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강의는 학교 수업에 비해 수강료가 2배 이상 비쌌는데, 전체 강의 시간은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제야, 이제껏 꿀만 빠느라 훗날 내 몸에 정말 필요한 영양소와 비타민을 흡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양질의 지식과 교양을 마음껏 쌓을 수 있는 건 대학 시절 나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축복이었는데. 그땐 왜 그걸 몰랐는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인생에서 대학 성적의 유효기간은 짧고, 심지어 그 효력마저 점점 약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실제로 요즘은 이력서에 학점을 표기하는 란 자체가 없어지는 추세이다. 면접에서도 수업·학점보다는 직무 이해도와 관련 경험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고.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이미 졸업을 하고 학교를 떠난 몸이거늘. 그러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현직 대학생 여러분에게 조심스레 한마디 올리는 것밖에 없을 듯싶다. 흠흠, 친애하는 대학생 여러분. 알바에, 토익에, 각종 자격증 공부와 대외활동, 인턴 경험까지. 현실에 이다지도 숨 쉴 틈이 없으니, 당연히 꿀강에 마음이 갈 수밖에 없지요. 그 심정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꿀은 눈 깜짝할 새에 녹아 없어져버리더라고요. 많이 먹으면 충치가 생겨 나중에 몸 고생, 마음고생도 하게 되고요. 그러니 되도록이면 진짜 배우고 싶은 과목을 두 귀 쫑긋 세워 들으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내면에 쌓은 교양은 삶의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빛을 발할 테니까요!

 


 

[882호 – special]

Writer 김예란 yeran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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