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의 알려지지 않은 얼굴들

 

장기하가 새 앨범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왔다. 자취방에서 장판을 뜯으며 싸구려 커피를 마시던 청년백수는, 시린 마음 추스르며 ‘집에 가자’는 어른으로 컸다. 여기까지는 모두 아는 이야기다. 장기하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긴장 따윈 남 얘기인 듯 무덤덤한 말투에, 기쁨도 슬픔도 드러나지 않는 조용조용한 얼굴. 그래서초연한 표정 뒤에 숨겨진 장기하의 진짜 얼굴, 보통 사람처럼 조바심내고 불안에 떨 그의 얼굴이 궁금했다.

 

꾸며낼 필요가 없다기보다도, 꾸며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장기하의 멋

 

처음 ‘싸구려 커피’를 들었던 때의 충격이 떠올라요. 덥수룩한 수염, 판소리하듯 읊조리는 노래까지. 그땐 옆집에서 발톱 깎고 있을 것 같은 복학생 오빠였는데. 지금은 연예인이에요. 멋 부리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어요?

저는 늘 최선을 다해서 멋을 냈어요. 무대에 설 때나 방송에 나갈 때도 한 번도 막 입은 적은 없었어요. 대학생 때부터 수염을 길렀고, 눈이 나빠서 안경을 썼지요. 일부러 안 꾸민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네요. 방송 출연을 조금씩 하다 보니까 든 생각인데. 굳이 늙어 보이면서까지 수염을 기를 필요는 없겠더라고요. 수염을 밀었고, 지금은 만족합니다.

 

예전 모습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는데요.

예전의 저를 그리워한다고 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지금의 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최선이에요.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싸구려 커피’를 부르던 남자는 2008년의 가장 저다운 모습이었고요. 다른 사람인 척 꾸며내는 게 가장 안 좋아요. 꾸며낼 필요가 없다기보다도, 꾸며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다 어떤 척을 하면서 일상을 살아가잖아요. 잘 살려면 사회생활에 걸맞은 가면을 써야 하기도 하고요. 장기하씨는 어때요?

남들보단 적어요. 음악에서건 방송에서건 안 꾸미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제 속에 없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말하는 건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돼요. 진심 위에 방송용 모습이 한 꺼풀 있고…. 귀찮아서 못 견뎌요. 아예 속마음을 숨기면 숨겼지. 제가 방송에서 저답지 않게 행동한들 보는 분들이 좋아할 것 같진 않아요.

 

예전에 노래 ‘별일 없이 산다’가 만들어진 배경을 들었거든요. 사람들은 내게 별일이 있길 바라기 때문에, 별일 없이 산다고 말해줘야 한다고요. 차라리 마음을 숨기겠다니까 궁금하네요.

어머니 말씀을 듣고 만든 노래예요. 친부모라든지 사랑하는 애인이라든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제가 잘되길 바라죠. 하지만 대부분은 안부를 물을 때 뭔가 좀 안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기도 하잖아요. 남이 잘 안 되면 반사적으로 안도감이 드니까요. 일견 나쁜 마음이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사람 심리예요. 그 앞에서 “나는 별일 없는데~” 라면 약 오르지 않을까요?

 

초창기보다 노래도 멋있고 화려해진 느낌이에요. 밴드 특성이 강해져서 그런가요?

오히려 ‘싸구려 커피’가 이번 앨범 ‘사람의 마음’ 수록곡보다 화려한 노래일 수도 있어요. ‘싸구려 커피’에선 여러 장면이 묘사되고, 단어도 많이 들어가니까요. 이번엔 노래를 단순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밴드 사운드 때문에 화려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사실은 사운드도 단순해요. 단지 저희가 원하는 소리를 내려고 계속 시도했기 때문에 화려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음반을 만드는 과정에선 이게 좋은 음악인가? 사람들이 좋아할까? 아무래도 신경 쓰이죠.

 

장기하의 약한 모습

 

장기하의 약한 모습은 상상이 잘 안 돼요. 약한 모습 보이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싫은 얘기를 굳이 할 필요도 없고요. 또 TV에 나와서 징징거리면 보는 분들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잖아요.
원래 약한 모습 보면서 정들잖아요. 맞아요. 요즘 라디오 DJ를 하면서 그 생각 해요. 라디오는 매일 두 시간씩 말해야 하니까 속마음을 못 숨겨요. 그래서 요즘은 힘든 부분에 관해서 솔직해지려고 하고 있어요. 살면서 고단하고 피곤한 일들…. 그래서 솔직하게 했더니 요즘은 청취자들이 “장디(장 디제이) 목소리가 피곤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엔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음반을 만들었죠. 금은 작업 환경이 훨씬 좋아졌고요. 그때와 지금 사이에 우열을 가리기엔 뭐하지만, 더 나아졌나요?

좋아지기도 했고, 나빠지기도 했어요. 일단 그때보다 살림살이는 나아졌어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먹고살고 있으니까, 어른으로서 좋은 일이죠. 새 음악을 내면 많은 분이 관심도 가져주시고요. 그런데 신경 쓸 일도 많아요. 음반을 만드는 과정에선 이게 좋은 음악인가? 사람들이 좋아할까? 아무래도 신경 쓰이죠.

 

저는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은 사람일 뿐, 초연한 사람은 아니에요.

 

장기하의 불안

 

평소 장기하씨는 담담하고 여유로워 보여요. 긴장이나 불안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남들 하는 걱정 다 하고 살죠. 음반 만들고 ‘이거 망하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고. 굳이 “저는 오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라고 얘기를 안 할 뿐이지. 물론 무대에선 잘 안 떨어요. 늘 즐거웠어요. 긴장한 적도 없고요.

 

가수 이상은씨가 장기하씨를 칭찬하던데요. “가수는 100%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만 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자존심을 버리면 대중들이 외면한다. 균형을 잘 맞추는 게 장기하”라고요.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은 다 사랑받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방송 나오는 사람은 다 애정 결핍 같다고요. 순수예술 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분들의 생각을 다 물어본 건 아니지만요. 창작물을 발표하는 사람들은 모두 관심을 원해요. 누가 듣건 말건 상관없다는 태도는 솔직하지 않아요. 반대로 인기만 얻으면 된다는 태도는 진짜 멋없는 것 같고.

 

사랑받는 건 행복한 일이잖아요. 하지만 팬들의 관심은 왔다가도 쉽게 사라질 수 있는데, 불안하진 않아요?

우리 공연을 보는 사람이 3명이건, 30명이건, 300명이건 간에 본 사람은 우리를 기억하게 해야 한다. 장기하와 얼굴들 시작할 때 마음이에요. 공연 보러 온 관객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늘 지켜요. 관객이 우리 공연을 보고 ‘괜찮다’는 감정을 느끼면 좋겠어요. 꼭 긍정적인 감정만 느낄 게 아니라, 슬퍼하셔도 괜찮아요. 차트 순위 같은 수치에만 매달리면 이 가치를 고수하기 힘들어요.

 

그래도 음악 차트에서 밀리면 조바심 나진 않아요?

분명 그렇죠.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이왕이면 내가 1등 하는 게 낫긴 하죠.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척한 적 있어요?

없어요. 평소 과하게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않으니까, 초연해 보일 거예요. 신이 나는데 슬프고, 슬픈 것 같은데 웃긴 걸 좋아해요. 저는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은 사람일 뿐, 초연한 사람은 아니에요.

 

경청할 부분은 새겨듣되 속상해하지는 않아요.

 

장기하의 나쁨

 

시트콤 <감자별>에선 착하고 가난한 뮤지션을 연기했어요. 가난한 뮤지션은 아니지만, 착한 뮤지션인가요?

꼭 착한 부분뿐 아니라, 저 역시 말이 느릿느릿하고 반응이 늦어요. 시트콤 보면 무릎을 치는데, 무릎마저도 뒤늦게 올라오죠.(웃음) 제 특징들이 과장돼 있지만, 느리고 자연스러운 성격은 제 모습이에요. 김병욱 감독님이 “너랑 같은 캐릭터니까 평소같이 해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착하다는 말이네요.

나름대로 착해요. 어쩌면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하는 거야말로 나쁜 일인데.

 

노래의 화자는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많아요. 장기하씨는 가해자인 적 없었어요?

남한테 상처 주고 나서 노래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진 않아요. 아무래도 노래를 만들면서 나 자신을 정당화하게 되죠. 그래도 찾아보면 나쁜 노래 꽤 있어요. ‘기억 안나’라는 노래도 참 나쁘죠.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기억하는 여자에게, 전혀 기억 안 난다고 말해요.

 

자전적 이야기인가요?

비슷한 마음이 들었던 적은 있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어요. 구린 짓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라서. 하다못해 사과라도 해요. 하지만 또 모르죠.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자기 구린 행동은 기억 못 하니까.

 

노랫말로 연애 방식을 추측해 봤어요. 짝을 “한참 동안을 찾아다니다가”(‘내 사람’ 中), 그녀가 호의 어린 태도를 보이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알 수 없는 사람’ 中)며 의심하거나. 막상 사귀고 나면 “난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니 너그러이 이해해달라”(‘구두쇠’ 中)라고 투정 부리진 않을까요. 또 헤어지고 나면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그때 그노래’ 中)라며 후회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떠세요?

‘구두쇠’란 노래는 제 경험담이에요. 사실 남자들은 주는 방법을 잘 몰라요. 통념상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할 존재인데. 남자 또한 여자가 자기를 챙겨주길 바라죠. 하지만 10대나 20대 남자들은 방법을 잘 몰라요. 잘한다고 하는 건데도 여자친구에게 혼나고요. 혼나고 배워야 다음 연애 때 더 나은 남자친구가 돼요. 지금 좋은 남자친구를 만나고 계신다면, 이 남자의 전 여자친구가 잘 가르쳐놓은 덕분에 호강한다고 보면 됩니다.

 

팬들이 노래에 관해 쓴소리할 때 속상하거나 화난 적은 없어요?

엄마한테 혼나면 무안하잖아요. 엄마도 가끔 기분 안 좋아서 혼내는 경우도 있고. 경청할 부분은 새겨듣되 속상해하지는 않아요.

 

언제 감동하고 언제 부끄러워요?

다음 노래의 가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공연 생각뿐이에요. 부끄러운 부분은 비밀로 할게요.

 

Editor 조아라 ahrajo@univ.me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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