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궁금하세요? 이영돈 PD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음식으론 성이 안 찼는지 바퀴벌레를 먹는다. 수술실에 누워 프로포폴 6cc를 맞고 잠꼬대를 한다. 심지어 이스라엘까지 날아가 말 그대로 ‘요단강을 건넌다’. 자학 증세인가? 아니다. 이영돈 PD의 등을 떠민 건 호기심이다. 뭐든 직접 해보지 않고는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 넘치는 호기심은 <소비자 고발>, <먹거리X파일>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다. 새 예능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 JTBC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내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재밌게 다가가는 게 목표다. 쉽진 않겠지만.

 

저도 예능 참 좋아하는데요

 

오랜만의 복귀작이 탐사보도가 아닌 예능 <에브리바디>예요. 예능인이 아닌 PD님을 섭외한 이유가 뭘까요?
예능인이 아니니까. 내가 들어가면 뭔가 달라진다고 생각했겠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가 중요하다. 다른 예능인처럼 똑같이 웃기고 까불 거면 굳이 내가 나올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지도 못할 거고. 내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재밌게 다가가는 게 목표다. 쉽진 않겠지만.

 

최근엔 <해피투게더>에 게스트로도 출연하셨는데, 첫 예능이죠?

〈SNL〉에서 줄기차게 나오라고 했었는데 다 거절했다. 성적 코드가 너무 강하더라. 나는 음식을 먹는데 이엉돈 PD는 다른 걸 먹으니까.(웃음) 거기서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해피투게더>는 토크쇼니까 괜찮겠다 싶었는데, 초반에 엄청 얼었다. 어제 녹화 때도 예능 해보니까 어떠냐고 누가 묻기에 “유재석이 <그것이 알고싶다> MC 보는 꼴”이라 그랬다. 하다보면 적응되겠지.

 

<에브리바디>에선 MC잖아요. 게스트 출연과는 또 달랐을 것 같은데요.

가장 적응 안 되는 부분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거. 논리를 깨는 게 예능이라는 걸 이해는 하겠는데 너무 앞뒤 없이 말하더라. 편집을 믿고 일단 지르는 거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말 뒤에 그 이유를 쭉 나열한다. 근데 여기서는 갑자기 술 얘기로 넘어가니까 당황스럽다. 사이에 갭이 있는 건데.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예능 프로그램 있으세요?

<삼시 세끼> 보고 충격 받았다. 프로그램 기획은 갑자기 뚝딱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해야 한다. 나영석 PD는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캐치한 거지. 채소 키워서 그걸로 요리하고, 염소 젖 짜고 이런 그림이 풋풋하면서도 새로우니까. 단순 말장난으로 채워진 예능들과는 성격 자체가 다른 거다. 시청률도 잘 나오던데?

 

<에브리바디>는 시청자들의 어떤 욕구를 채워주는 프로그램인가요?

요즘 건강 프로그램이 참 많다. 먹고살 만해지니까 건강에 관심이 많거든. 근데 방송에서 보여주는 건강 정보라는 게 뭐 하나만 먹으면 허약했던 사람이 갑자기 튼튼해지고, 머리털이 갑자기 나고, 시금치는 어디에 좋고, 배추는 어디에 좋고. 그것들 먹으면 천년만년 살 것 같다. 말이 안 된다. 새 프로그램의 핵심은 제대로 된 건강 정보를 주자는 거다. 난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보를 내 나름대로 해석한다. 시청자들은 의사보다 내가 말하는 걸 훨씬 쉽고 친숙하게 느끼니까.

 

 

PD의 역할은 어젠다를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제가 뭐든 해보겠습니다

 

2013년 최고의 유행어를 만드셨죠?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다. 대본에 적혀 있는 것도 아니고 진행하다가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그냥 내 말투인데, 신동엽 때문에….(웃음)

 

보통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좋다’, ‘싫다’는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었잖아요. 직접 먹는 것도 그렇고요.

그게 포인트다. 예전에 <바이블루트>라는 다큐멘터리를 할 때 헤엄쳐서 진짜 요단강을 건넜다. “나는 요단강을 건넜다!”라고 소리도 지르고.(웃음) 사람이 죽으면 요단강을 건넜다고 하지 않나. 내가 직접 건너고, 여전히 살아 있는 모습을 촬영하는 건 일종의 메시지다. 요단강 건너도 안 죽는다는. 그 유행어도 시청자들한테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연출 기법이고. 시청자를 대신해서 내가 직접 먹어보겠다는 거. 내가 하는 프로그램이 다 그렇다.

 

그래서 프로포폴도 맞으셨잖아요.

진짜 궁금했다. 모든 프로그램은 내 호기심을 푸는 과정이다. 연예인들은 대체 왜 이걸 맞을까. 맞아봤는데 좋더라.(웃음) 5시에 가서 6cc 맞고 12분 동안 잤는데 8시간 잔 것처럼 개운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하룻밤 자고 나면 충격이 완화되는데, 딱 그 느낌이다. 사실 또 맞고 싶을 정도였는데, 그렇게 말할 순 없으니까. 또 좋았으면서 기분 나빴다고 거짓말할 수도 없는 거고. 그래서 8시간 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것 때문에 방통위에서 한소리 들었다.

 

고발 형식의 프로그램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이영돈 PD의 프로그램이 오래 기억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PD의 역할은 어젠다를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소비자 고발>은 당시 소비자 의식이나 권리에 대한 관심을 많이 키웠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그해 10대 키워드에 ‘소비자’를 넣었을 정도니까. <먹거리X파일>도 그렇다. 개판인 식당 많거든. 음식을 막 만든 다음에 조미료 맛으로 다 감춘다. 그러니 맛있지. 우리 입은 MSG에 중독되어버렸고. 내가 하도 MSG 욕을 하니까 식약청에서 ‘유해하지 않다’고 발표를 했다. 유해하냐 무해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난 MSG를 무지막지하게 쓰는 풍조를 바꾸고 싶었다. 착한 식당으로 선정된 분들, 방송 전에는 돈 못 벌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맛이 약하면 잘 안 간다. 잘못된 거지. 조미료 쳐서 맛있게 만든 사람은 돈 많이 버는데. 세상에 돈 벌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나.

 

항의 전화도 많이 받으셨겠어요.

의도치 않게 피해자가 생기니까. 피해자라 하기도 좀 그렇다. 고발된 사람들은 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문제가 있는 거다. 그럼 고치는 게 당연하지.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근데 고치려 하기보다는 자기방어를 한다. 항의 전화에, 소송까지 걸면서. 그 사람들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까?

 

난 남이 안 된다고 하면 속으로 ‘이건 되겠다’ 생각한다. 그게 내 강점이다.

 

이적의 아이콘

 

KBS에서 시작해 SBS, 채널A, JTBC까지. ‘이적의 아이콘’이 되셨어요. 우리나라는 충성심을 중시하는데 고깝게 보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요.

PD는 창의성이 생명이다.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공식을 만드는 사람인 거지. 조직에 얽매이는 시스템은 PD에 맞지 않는다. PD 중에는 회사에 대한 의리보다 자기가 만드는 콘텐츠에 목숨 거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런 사람한테는 사실 조직이 필요 없지. 요즘은 지상파에서 새로운 게 안 나온다. 나영석 같은 친구는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도 잘되지 않나. 나도 거기 끼워주면 좋고.(웃음) 윈-윈 해야지. 나도 도움이 되고 조직도 도움이 되고. 잘못되면 책임을 지고. 그게 프로페셔널이다.

 

JTBC로 이적할 때, 손석희와 이영돈이 만났다는 기사가 많이 났어요.

근데 아직 사장님을 못 봤다. 엄밀히 말하면 영역이 다르다. 그쪽은 아나운서 출신에 뉴스 진행을 맡고 있고, 나는 PD니까. 내가 올 때 퍼즐 맞추기 얘기는 나왔었다. 이미 예능•드라마는 잘나가고 있고, 뉴스 손석희, 탐사보도 이영돈이면 JTBC 퍼즐이 완성된다고.

 

계속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이직도 가능한 건데요, 이영돈 PD의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한국 사회에선 순발력이 정말 중요하다.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아서 임기응변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판단이 좀 빠르다. KBS에 있을 때 성지순례 기획을 했는데 33일 만에 7개국을 다 돌고 4부작 방송을 만들었다. 해외 취재 20일 하고, 편집은 이틀에 하나씩.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난 남이 안 된다고 하면 속으로 ‘이건 되겠다’ 생각한다. 그게 내 강점이다.

 

30년 넘게 PD 생활을 하시면서 시사교양 쪽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셨어요.

교양이니 예능이니 하는 말로 방송 영역을 나누는데, 그것도 고정관념이다. 지금부터라도 유재석이 ‘뉴스 진행자가 되어보겠다’고 노력하면 훌륭한 앵커가 될 수 있다. 나도 <개콘> 한 번 꼭 연출해보고 싶다. 잘할 자신 있거든. 요즘 공대생도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며 학문의 통섭을 많이 강조하는데, 방송도 마찬가지다. 어느 분야를 하겠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어느 정도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결국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프로그램의 사회적 영향력이다.

 

종착지는 이영돈 채널

 

아무래도 탐사보도는 사람들과 많이 부딪쳐야 하는데, 처음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취재하다 보면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데, 난 그것까지 프로그램에 다 담는다. 의외로 그런 걸 사람들이 재밌어한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박정희 암살’을 다루는데, 당시 비서실장을 찾아가면 응해주겠나? 문도 안 열어준다. 거절당하고, 다시 찾아가고 이런 과정이 끝도 없다. 근데 언젠가 결국 만나면, 실패했던 과정들에도 의미가 생긴다. 성공 못 하더라도 자료로 쓰면 되고. 그래서 난 테이프 분량이 엄청 많다.

 

처음 PD로 입사한 80년대는 사회적으로 부조리가 엄청 많을 때였어요.

그렇지. 운동권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때도 내가 맡은 역할은 재밌는 프로그램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KBS1에서 ‘땡전뉴스(매일 전두환씨 얘기로 시작하는 뉴스)’ 하던 시간에, 난 KBS2에서 <오늘>이란 교양 프로그램을 했다. 정치적이진 않았지만 당시 내 프로그램엔 스토리가 있었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다큐든 보는 사람이 몰입하려면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시청자를 설득하는 방법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읽고 또 읽었던 스물 몇 권짜리 세계추리문학 도움을 많이 받았다. 추리소설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스토리텔링이다. 흥미진진한 사건 해결 과정에 반전도 있으니까. 나는 모든 프로그램을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영화를 좋아하시나 봐요.

가장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이 영화다. 난 드라마는 안 본다. 가끔 보면 미칠 것 같다.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웃음) <아이리스> 때도 PD나 작가한테 다음 주엔 어떻게 되냐고 물어봐도 안 가르쳐주더라. 영화는 아무리 후져도 오래 준비했기 때문에 2시간 안에 기승전결이 압축되어 있다. 밤 11시, 12시에 술 먹고 졸면서도 영화를 본다. 화제작은 보통 첫날 가서 다 보고.

 

앞서 말한 프로그램 외에도 <추적 60분>, <생로병사의 비밀>까지 굵직한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셨어요. 이영돈 PD의 대표작은 뭔가요?

6부작 <술•담배•스트레스에 관한 첨단보고서>의 첫 편이 ‘간접흡연, 그 동반자살의 실체’였다. 간접흡연도 암이나 심장병의 원인이 된다는 내용인데, 실내 금연정책의 기초가 됐다. 그 전까지는 사무실, 학교 과방에서 담배 다 피웠다. 이젠 군대에서도 담배 안 나눠주지 않나. 결국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프로그램의 사회적 영향력이다.

 

또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으세요?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다 비밀이다.(웃음) 다 새로운 것, 남이 안 해본 것들이니까. 언젠가는 이영돈 채널을 따로 만들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프로그램들을 다 담을 수 있는.

 

Editor 기명균 kikiki@univ.me
Photographer 박광희 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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