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en, boy! 음악 작가 배순탁
파고, 파고, 파고들었더니 길이 됐나보다. 7년째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선곡을 책임지고 있는 음악 작가의 얼굴에서, 교복을 휘날리며 레코드점으로 달려가던 소년이 비친다. 앳된 목소리도 들린다. “누나, 신해철 앨범 나왔어요?”

 

음악과 관련된 삶을 살고 싶었어요.

 

열여덟 음악광

 

책 『청춘을 달리다』 첫 챕터에서 회고하셨죠. “명문대는 거뜬히 갈 거라고 생각했던 특목고 학생에게 ‘신해철’이라는 침입자가 끼어들었다”고.

사실 그 이전까지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길을 가야 하는 걸까’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전 명문대에 가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훌륭한’ 사람이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신해철 음악을 들으면서 대학에 가고,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고, 그러다 한세상 가는 삶… 그것과는 다른 인생을 꿈꾸게 된 것 같아요. 음악과 관련된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냥 듣기 좋았던 정도가 아니었나봐요. 넥스트 노래의 어떤 점이 열여덟 배순탁의 내면을 건드렸던 걸까요?

물론 비슷한 철학을 제공해주는 음악은 많아요. 제 인생에선 그 첫 번째가 신해철이었던거죠. 신해철씨의 유작이 된 jTBC <속사정 쌀롱>에서 이런 구절이 나와요. “신해철의 음악을 듣는 소년은 어른이고, 신해철의 음악을 듣는 어른은 소년이다.” 신해철의 음악을 듣는 소년은 뻔한 어른들의 세상을 비웃어요. 난 저렇게 안 될 거야. 반면에 어른들은 그의 음악을 들으며 소년 시절을 떠올리죠. 누구나 어릴 땐 남다른 삶을 꿈꾸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신해철의 음악은 언제나 낭만적이에요.

 

‘껍질의 파괴’ 이후 꿈꿨던 다른 삶에 대한 열망은 어떻게 표출됐나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기 싫어서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음악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었어요. 용돈이 한정돼 있으니까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 나오면 녹음하고, 엄마한테 거짓말해서 받은 돈으로 CD 사고…. 공소시효가 끝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영풍문고에서 도둑질 하다 걸린 적도 있어요. 무슨 음반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세 장을 과감하게 훔치려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죠.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신보가 나온다고 하면 한 달 전부터 설레고, 일주일 전이면 금단 현상을 느낄 정도로 음악이 고팠어요.

 

처음으로 음악에 푹 빠졌던 때라서 그 시절의 풍경을 떠오르게 만드는 노래가 많을 것 같아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가 정릉 산꼭대기에 있었거든요. 어느 날, 집에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퍽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주변 공사장에 있던 깡패들한테 신나게 얻어맞고 워크맨을 뺏겼어요. 엄청 비싼 거! 15만원짜리 오토 리버스까지 되는 워크맨이었는데…. 그때 신해철인가 케니 지의 음악을 듣고 있었어요. 그 시절엔 학교에선 메탈리카 이야기를 하고 집에선 케니 지나 머라이어 캐리를 들었어요. 대중적인 걸 좋아하면서도 남들 앞에선 안 그런 척했던 거죠. 일종의 ‘길티 플레저’랄까. 지금은 반대로 마니악한 음악을 숨기고, 누구나 듣는 음악을 얘기해야 어울릴 수 있는 시대인 것 같고요.

 

야자 시간에 친구와 이어폰을 바꿔 끼며 ‘음악력’을 겨뤘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네요.

음악 좀 듣는 친구들을 통해서 몰랐던 아티스트들을 많이 배웠죠. 대표적으로 Earth, Wind and Fire 같은 그룹이요. 처음엔 싫어했지만요. 대학 가서는 음악평론가들이 하는 강좌를 들으면서 새로운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 아는 분들 역시 다 거기서 만난 거고요. 제일 많이 했던 짓은… 음악 바에 맥주 두 잔 마실 돈 가져가서 주인 형한테 계속 물어보는 거예요. “형, 이 노래 뭐예요?”

 

본격 음악 덕후의 삶이 시작됐군요.

학교 잠깐 갔다가 오후 5시에 음악 카페에 출근해서 12시까지 일했어요. 집까지 되게 멀어서 끝나면 그냥 음악 들으면서 밤을 새웠죠. 그리고 주말에는 만화방 알바,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 과외. 집이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려면 제가 돈을 벌어야 했어요.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가 2학기 때까지 F 10 개에 학사 경고 두번 받고 바로 군대 갔죠.

 

부모가 정해놓은 길을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친구들과 경쟁하며 걷는다 …
세상은 날 길들이려 하네
이제는 묻는다 왜
– N.E.X.T의 ‘껍질의 파괴’

 

이승열 노래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가사 내용 상관없이 목소리 자체에 특수한 힘이 있거든요.

 

가진 건 시간, 그리고 음악

 

음악밖에 모르는 대학 생활을 보내고, 20대 후반엔 뭘 하고 계셨어요?

스물여덟쯤부터 돈을 벌었어요. 음악평론가들 모임 중에 ‘IZM’이란 사이트가 있는데, 제가 창단 멤버 중 하나예요. ‘IZM’에 글을 쓰고, 당시 음악 잡지에 외고를 쓰면서 데뷔했죠. 음악에 관해 글을 쓰고 말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그때는 음악을 많이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매일 음악 카페에 가서 제가 모르는 노래만 틀어달라고 했고, 제목을 적어 가서 또 듣고… 이걸 5년 정도 반복하니까 뭐가 되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수입 걱정은 없으셨어요?

있었죠. 글만 쓰니까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서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음반사에 취직했어요. 해외 음반을 국내에 배급하는 인디 레이블이었어요.

 

음반사 일은 어땠어요?

확실히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건 글 쓰고 말하는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3년 일하고 그만뒀어요. 퇴직금이 나오니까 한 달만 쉬고 어떻게든 다른 일을 하려고 했는데, 운 좋게 MBC 프로그램에 작가로 들어가게 됐어요. 제가 원고를 썼던 잡지사 편집장님에게 한 PD가 음악 원고를 쓸 만한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한 거죠.

 

음반사를 그만둘 당시에는 작가가 될 거란 걸 몰랐을 텐데, 마음이 복잡하지 않으셨어요?

그때 아빠랑 반지하에서 둘이 살았는데, 150만원만 벌면 생활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천천히 일을 찾으면서 알바를 2개 정도 하려고 했죠. 그 정도의 무모함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 작가님에게 가장 영향을 미쳤던 노래는 뭔가요?
이승열 노래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가사 내용 상관없이 목소리 자체에 특수한 힘이 있거든요. 최근에 <미생> 엔딩 곡에 나오기도 하던데… 이승열이나 허클베리핀 같은 인디 밴드의 음악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그런 음악들을 많이 찾고 들었던 시기였죠.

 

20대 후반쯤 되면, 들을 때마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노래도 생기잖아요.

이소라의 ‘기억해줘’라는 노래요. 대학 때 사귀었던 친구가 선물로 줬던 앨범이에요. 헤어진 후에 연락이 끊겼는데 알고 보니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더라고요. 그 후에 정신적으로 많이 아팠고요. 그 애를 보면서 ‘기억해줘’라는 노래를 떠올렸고, 이소라 앨범을 다시 챙겨 듣기 시작했어요. 이소라 노래는 함부로 거짓 위로 하지 않거든요. 듣기엔 힘들지만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요.

 

사랑을 할 때 특히 노래 가사를 곱씹게 되는데, 심장이 쿵 할 정도로 감정이입이 됐던 가사가 있나요?

윤종신씨의 가사를 굉장히 좋아해요. 특히 ‘이별 택시’요. 이별 뒤에 이 노래를 들으면 심쿵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일상의 단어들로 쓰였기 때문에 더 깊게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아요.

 

음악 듣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시대의 귀’로 듣는 거예요.

 

낯선 것을 사랑하는 법

 

7년째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로 일하고 계시죠. 좋아하는 음악만 들어선 안 된다는 점이 괴로울 것 같기도 해요.

처음엔 괴롭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안목이 생기더라고요. 영화나 책을 볼 때 본능적으로 ‘이건 내 스타일이다’ 알 때가 있잖아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전 짧은 시간에 많은 음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1분 안에 절 매혹시키지 못하면 바로 넘겨요. 특히 요즘엔 초반에 승부를 거는 곡이 많아져서 요령을 부릴 수밖에 없죠.

 

옛날엔 별로였는데 나이 들수록 좋아지는 노래도 있잖아요.

물론 있죠. 대표적으로 비틀스! 헤비메탈에 빠져 있을 땐 비틀스를 왜 그렇게 찬양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공부를 하면서, 음악적인 바운더리를 넓혀보니 알겠더라고요. 음악 듣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시대의 귀’로 듣는 거예요. 1960년대 음악을 2014년의 귀로 들으면 당연히 올드죠. 비틀스가 시도한 변화들이 지금의 관점에선 아무것도 아니에요. 적어도 기술적인 측면에선. 그런데 그 시대의 귀로 들으면 어마어마한 혁명이거든요.

 

라디오 선곡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선곡의 기준은 뭔가요?

다양한 장르와 시대를 잘 섞으려고 해요. 어떤 분들은 “왜 옛날 노래만 나오느냐”고 하시고, 어떤 분들은 “왜 올드 팝 안 트냐”고 하세요. 사실 라디오를 두 시간 내내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에요.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신곡과 올드 팝이 다 나온다고 말씀드릴 뿐, 청취자들께 다 알아차려 달라고 요구할 순 없죠.

 

DJ 배철수씨가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팝을 안 듣는 게 고민”이라고 하시던데, 우리는 왜 팝을 들어야 할까요?

음악을 듣는 기쁨을 더 누리고 싶다면 팝을 듣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으면 안 들어도 돼요. 우리나라 대중음악 뮤지션들이 들려주는 가요가 거의 팝에서 비롯된 거거든요. 이 노래가 어디서 영향을 받았을까 궁금하고, 취향을 넓히고 싶을 때 팝을 들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팝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노래가 있으세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피처링한 A Great Big World의 ‘Say Something’이요. 에릭남씨가 커버하기도 했는데… 팝송을 알면 그런 기쁨이 있어요. 누군가 커버하거나 나와서 불렀을 때 “어? 나 저 노래 아는데!” 하는 자그마한 즐거움이요.

 

예전의 작가님에게 음악이 절박함이고 치유제 같은 존재였다면, 음악 작가·평론가가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이제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요?

전 순수를 내어준 대신 직업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때처럼 음악이 고프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가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호의’거든요. 우린 관성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고, 문화에 대해서도 익숙한 것만 찾게 되잖아요. 그런데 호기심이 죽는 순간 인생 자체가 죽는다고 생각해요. 낯선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제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주고 저란 사람의 밑바탕을 차지하는데, 음악은 여전히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Editor 김슬 dew@univ.me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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