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해도 괜찮아’ 식의 위로는 이제 지겹다. 난 안 괜찮은데 어쩌라고? 뼈 좀 맞더라도 제대로 된 조언이 듣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를 쓴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허지원 교수를 만났다. 뇌 과학자이자 임상심리학자인 그는 “나도 아직 나를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무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남에겐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지만 자신에겐 늘 채찍질만 해대는 우리. 어떻게 하면 나를 잘 알고, 스스로에게 무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뼈를 맞는 중에도 마음은 따뜻해지던 대화 속에서 그 답을 찾고 왔다.

 

 

“이번 생은 망했다”가 위험한 이유
책을 다 읽고 나서, 저를 포함한 요즘 20대들이 스스로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생은 망했다” “대충 살자” 식의 자조적인 농담이 유행하는 것이 그 증거인 것 같고요.

자조적인 농담이 위험한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는 성취를 할 수 있는데, 그 자리에 머무르게 만든다는 거예요. 내가 진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못하는 것’으로 프레임을 바꾸는 식으로요. 둘째는, ‘실망’으로부터 미리 방어하게 만드는 것. 성취를 이뤄야 하는데 안 될 것 같으니, 실망하기 전에 그냥 안 해버리는 거예요. 이런 태도를 가지면 ‘노력’하기 머쓱해져요. 더 해봐도 될 텐데, 이미 자조적인 농담을 던졌으니까 멈춰버리죠. 그런 행동들이 어느 순간 20대들을 누르고 묶어버릴까봐 걱정스러워요.

 

‘노오력’ ‘노력충’ 같은 말도 떠오르네요.

사실 이런 말이 나온 건 기성세대 탓이 커요. 노력이라는 단어를 무기처럼 휘두르니까 반발이 커진 거죠. 그렇지만 노력은 디폴트(Default) 값으로 기본이거든요. 응당 노력하며 살아야 돼요.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노력해서 상냥해야 하고, 나 자신을 대할 때도 노력해서 잘 보살펴야 되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노력’이 폄하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싶어지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됩니다. 특정 가치를 격하시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으면 해요.

 

이런 말을 자꾸 쓰게 되는 이유가 실패를 계속 경험하게 만드는 사회 때문이란 생각도 들어요. 어떻게 하면 실패해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할 수 있을까요?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탈락하면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경험하는 게 당연해요. 사실 우울감이나 무력감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거기서 술을 많이 마신다거나, 갑자기 모든 걸 놔버리는 등의 2차적인 행동이 문제가 되는 거죠. 그러니 우울해하는 것까지, 무력해지는 것까지만 했으면 좋겠어요. 실패나 탈락의 패턴을 ‘관조적’으로 보는 게 스스로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저번에 떨어졌을 땐 이만큼 흔들렸는데, 이번에는 덜 흔들렸구나. 괜찮은데?’라고 생각하는 거죠.

 

‘관조적’으로 본다는 게 어떤 뜻일까요?

‘내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인물인가?’ 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의미예요. 솔직히 꼭 ‘내가’ 성공해야 할 이유는 없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들 중 누군가가 나보다 운이 좋아서 더 빨리 성취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늦게 하기도 하잖아요. 꼭 내가 성공해야 한다는 것은 비대한 자의식인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그 자리에 못 갈 수도 있어요.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관조적일 필요가 있다는 거죠.

 

 

자존감? 좀 낮으면 어때

책을 보며 지금껏 자존감을 오해했구나 싶었어요. 높은 자존감이라는 허상이 오히려 우리의 자존감을 낮추는 경우가 많다고요.

지금까지 자기계발서나 스타 인문학 강사들은 자존감을 높이라는 요구를 해왔어요. 하지만 임상심리학자들은 절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요. 높은 자존감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된 바가 많지 않고요. 낮은 자존감의 장점도 있어요.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보이는 행동은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인데요. 이런 점을 ‘다른 사람을 더 잘 배려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 높은 것’으로 볼 수도 있거든요. ‘내가 자존감이 낮은가?’라는 생각이 들 땐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자존감이 높은 ‘척’ 하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자존감이 높은 척을 하면 여러모로 편리해요. 예를 들어 낮은 자존감을 과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힘들잖아요. 말 한 마디가 조심스럽고. 그런데 자존감 높은 척을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할 때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어요. 나도 남을 편하게 대할 수 있고요. 여기서 오는 시너지가 굉장히 큽니다. 나에게 악의를 품은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도 있어요. 때문에 자존감이 높은 척하는 것이 자기 보호를 위해서는 한 편으로 필요한 부분이에요. ‘척’하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 덜 상처 받고, 자존감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가면’에 대한 해석도 새로웠어요. 보통 사회적 가면을 쓰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자기만 아는 자기와 타인에게 보이는 자기가 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가면은 다양할수록 좋다고 하셨죠.

‘가면’은 인간이 적절하게 발달시켜온 기술이고, 고도로 발달한 사회성인 거예요. 그런데 사회는 가면을 폄하하곤 해요. 타인에 대해 적정한 수준의 예의를 갖추는 것을 두고 ‘가면’이라고 얘기한다든가, ‘가식’이라고 얘기하는 거죠. 이런 점이 개인한테 큰 혼란을 줘요.

 

그렇다면 자신의 또 다른 가면으로 ‘SNS’를 활용하는 것은 긍정적인가요?

건강한 방식으로 활용한다면 의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10~20대는 SNS에 압도되기 쉬워요. 사람의 전두엽은 23~24세까지 계속 발달하거든요. 이 전두엽은 행동을 억제하거나, 계획·감독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그 기능이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SNS를 하면 행동을 억제하고 유연하게 사고를 전환하는 것이 힘들어져요. 그래서 중독되기 쉽고요. 따라서 SNS는 되도록 서른 넘어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긴 해요.(웃음)

 

 

완벽주의와 게으름의 차이는?

미루고 또 미루는 것이 게으름이 아니라, ‘완벽주의’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다는 내용에 공감이 됐어요. 그런데 그 둘의 경계를 구분하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임상적으로는 행동이 지연되다 못해 일의 데드라인을 넘기는 경우를 완벽주의로 봐요. 하지만 데드라인까지 일을 해낸다면 그건 그냥 게으른 거예요.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지 오래됐다면 병리적인 수준의 완벽주의를 의심해봐야 됩니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해내고 있다면, 약간 게으른 거고요.

 

저는 게으른 것이군요.(웃음) 완벽주의거나 그로 인한 불안을 지닌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연습하면 좋을까요?

‘이만하면 됐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표현을 입 밖으로 꺼내거나, 글로 써봤으면 좋겠어요. 말이 가진 힘이 크거든요. 사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말로 짧게 줄이기는 했지만, 1960년대부터 있었던 ‘인지행동치료법’에서 나온 이야기예요. ‘나는 꼭 성공해야 해!’ ‘꼭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야 해!’처럼 ‘Should’나 ‘Must’를 포함한 생각은 병리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바꾸는 것이 좋다는 거죠. 예를 들어 ‘난 꼭 학점을 잘 받아야 해’를 ‘학점을 잘 받으면 좋지! 아니면 어쩔 수 없고’로 바꾸는 거예요.

 

일종의 쿨한 태도를 갖는 거네요? 우울증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어 왔어?’라고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요즘 심리치료 트렌드라고도 하셨죠.

이전 치료법은 환자의 결함에 대해 정신 승리로 대처하는 식이었어요. 예를 들어 외모에 자신감이 없는 환자에게 “아니야, 그래도 너 눈은 예뻐!”라고 얘기하는 거죠.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본인이 느끼기에 그렇지 않은데. 그러면 그냥 그 사실을 인정하는 거예요. “나는 외모가 매력적이지는 않구나.”라고요.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죠.

 

‘이게 다 내가 귀여운 탓이지!’라는 유행어가 있잖아요. 이것도 일종의 정신 승리인데… 위험할까요?

아뇨! 저는 이런 거 너무 귀엽고, 좋아요. 유머 같은 기재를 활용해서 적절하게 대처하는 건 필요한 요소예요.

 

책 마지막 부분에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를 막 대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정말 우리는 아직 우리를 잘 모르고 있는 걸까요?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잘 모르고 있어요. 먼저, 자기는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는 것인데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의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증거죠. 한편,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본인이 목표를 꼭 달성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지나친 자의식 때문이거든요. 그러지 못할 수도 있는데,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못 봐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플랜 B~Z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성공할 수 있는 다른 길도 생각해 두는 거죠. 나를 잘 아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첫 걸음을 뗄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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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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