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속 정성 한 스푼

 

요즘 매일 밤 잠들기 전 꼭 하는 루틴이 생겼다. ‘브이로그’를 챙겨 보는 것이다. 남들이 브이로그를 본다고 할 땐 덕질하는 연예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게 뭐가 재미있으려나 싶었는데. 하나둘 보다 보니 어느덧 구독하고 있는 유튜버만 몇이 될 정도로 브이로그에 빠져든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디자이너부터 개강을 맞이한 어느 대학생까지. 얼굴도 모르고(대다수 브이로거들은 얼굴을 ‘하관’ 정도만 공개한다), 이름도 모르는(닉네임만 안다)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잠들기 전 나의 습관이 될 줄은 몰랐다.

 

사실 그들의 일상이 내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거나, 매일 재미있는 이벤트가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해 먹고, 옷을 입고, 집에 돌아오기 전 장을 보고, 친구들을 만나는 보통의 일상을 보낼 뿐이다. 따지고 보면 나도 매일 하는 일인데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을까? 혼자 자문을 해보다가 답을 내렸다. 내가 찬밥을 물에 말아 먹듯 ‘대충’ 보내는 일상을 그들은 꽤 ‘정성스레’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브이로그 주인공들의 일상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성이 딱 ‘한 스푼’ 정도 더 들어간 느낌이다. 계란말이 하나를 먹어도 새하얗고 예쁜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 ‘차려 먹는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옷 한 벌을 입어도 신발과 액세서리까지 잘 어울리는 것들로 매치해 깔끔하게 ‘차려입는다’는 인상을 준다. 먹고 입는, 모두가 매일 겪는 평범한 일과에 좀 더 공들이고, 좀 더 신경을 쓰는 거다. 누군가에는 이런 정성이 영상을 찍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오버’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그 오버가 그들의 일상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여유 있을 때’는 영영 오지 않기에

 

그래서 나도 브이로그를 찍기로 했다… 는 거짓말이고. 내가 브이로그 속 주인공이 된다면 어떨지 상상해봤다. 아마 내 영상은 바닥에 빨랫감이 널브러져 있고, 온갖 잡동사니가 나뒹구는 지저분한 방에서 시작될 거다. 그러곤 알람을 다섯 개쯤 맞춰 놓았지만, 다 꺼버리고 가장 마지막 알람에 간신히 눈을 뜨는 모습으로 내가 등장하겠지. 아침밥은 쿨하게 패스! 그다음엔 서둘러 샤워를 하고 아무 옷이나 집히는 대로 주워 입은 채 허겁지겁 집 밖으로 나서는 장면이 이어질 거다. 퇴근 후엔 요리할 기력이 없어 그냥 ‘배달의 민O’ 같은 앱을 켜고 떡볶이나 치킨을 시켜 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겠지. 안 봐도 뻔하다. 누가 봐도 엉망진창이라고 느낄 만한 하루다.

 

생각해보면 브이로거처럼 일상을 사는 게, 이번 생엔 실현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지금보다 약간의 정성과 부지런함만 있으면 내 일상도 분명 나아질 텐데. 그러나 나는 늘 정성 들이고 부지런해지는 일을 ‘좀 더 여유 있을 때 하지 뭐’라며 미루고 미뤄왔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여유 있을 때’는 영영 오지 않고 있고.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여유 있을 때 일상을 가꿀 생각하지 말고, 일상을 가꾸며 여유를 찾아보자고. 피로가 등에 업힌 듯 찌뿌둥하지만 15분 일찍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잠들기 전 ‘내일은 뭘 입을까?’ 미리 고민해두기로 말이다. 계산해보면 스마트폰 화면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30분만 줄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30분의 정성 덕분에 내 하루는 덜 허둥대고 더 여유 있는 하루가 될 것이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계란말이

 

살다 보면 문득 현실이 시궁창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험 기간과 과제에 치이던 학생 때, 서류 탈락과 면접 탈락에 지겹도록 치이던 취준생 때. 직장인이 되면 더는 이런 고통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엔 매일 쏟아지는 업무에 치일 때. 대체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터널은 언제쯤 끝나려나. 눈앞에서 당장 시궁창 같은 현실을 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긴긴 터널을 걸어오며 깨달은 건, 시궁창 같은 현실을 치우는 데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내 힘만으론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무기력해질 때, 브이로거들이 준 교훈을 떠올리며 시궁창 같은 현실 대신 내 방을 치우고(내 방도 못지않게 시궁창 같으므로), 맛있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고, 좋아하는 셔츠를 잘 다려 입어야겠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치울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약간의 정성을 들여 일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 순 있을 테니.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계란말이 팬을 주문했다. 팬이 도착하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아침밥으로 예쁘게 계란말이를 만들어 먹을 거다. 매끈매끈한 계란을 골라 톡톡 두드려 깨고, 거품기로 휘휘 저어 샛노란 계란물을 만들어야지. 그런 다음 공들여 저은 계란물을 팬에 붓고, 천천히 계란말이를 마는 거다. 한 끼 대충 때우거나, 굶고 넘어가지 않고 정성 들여 계란말이를 만들어 먹으면 내가 어제보단 조금 나은 삶을 살게 됐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나저나 내 계란말이 팬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으려나.


[884호 –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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