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가 부러운 이유

 

“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뻔한 질문 앞에서도 가끔 말문이 막히곤 한다. ‘OOO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할까?’ ‘아냐, 그렇게 말하기엔 난 그 감독의 영화를 다 보지도 못했어. 내가 안 본 영화 얘기가 나오면 망신만 당할 거야.’ ‘그럼 그냥 OO 장르를 좋아한다고 답할까?’ ‘그런데 갑자기 그 장르의 역사를 물어보면? 난 잘 모르는데….’ 머릿속에서 이런 고민들이 떠다니는 동안 내 답변은 점점 늦어져만 간다. 그러다 질문을 던진 상대방이 나의 침묵에 머쓱해질 때쯤 힘겹게 입을 뗀다. “저는… 그냥 안 가리고 다 좋아해요….”

 

이렇게 세상 재미없고 뭉툭한 답변을 내놓을 때마다 ‘덕후’들이 부러웠다. 덕질하는 대상에 대해 확신을 갖고 “얘가 내 최애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 담대함과 누가 물어도 “아 그건 말이지…”라며 막힘없이 최애에 대한 썰을 풀어놓는 정보력까지.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덕후들을 볼 때면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나는 끈기가 부족해서 무언가에 꽂혀도 그 열정이 3개월 이상 가지 못했고, 이내 다른 대상에 눈을 돌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적어도 한 가지씩은 ‘덕질’을 하는 덕후들의 세상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대는 죽도 밥도 아닌 나.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인생 헛산 것 같은 현타가 밀려들었다.

 

나는 서핑을 좋아하는 걸까?

 

이런 나와는 달리 뭐든 하나에 빠지면 끝을 보고야 마는 친구 K가 있다. 예를 들어, K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치자. 그럼 K는 종이에 낙서를 끄적대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태블릿을 사서 본격적으로 웹툰을 그릴 정도로 깊숙하게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이런 K가 얼마 전 새롭게 빠져든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서핑’이다. 재작년쯤 서핑에 입문한 K는 여름만 되면 서퍼들의 성지라는 양양과 부산의 어느 바다들을 오가며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얘 참 대단하네’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엔 하다 하다 호주로 서핑 트립까지 다녀왔다.

 

이쯤에서 놀라운 사실 한 가지. 이런 K를 서핑에 입문시킨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거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K보다 한발 먼저 서핑을 시작했음에도 나는 아직껏 제대로 된 자세로 파도를 타는 것조차 힘겨워한다는 것. 당연한 결과다. K가 서핑에 꽂혀 미친 듯이 바다를 오가고 서핑 트립까지 떠나며 명실상부 ‘서핑 덕후’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고작 두어 번 더 바다를 찾았을 뿐이니까.

 

 

이번에도 나는 뜨뜻미지근하게 서핑의 주변부만 맴돌았다. 그러나 신기한 건, 몇 번 안 되는 서핑의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때 참 재밌었지’라며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는 것.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K만큼 뜨겁게 빠져들진 않았지만, 나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서핑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몇 번 타보진 않았지만 보드에 엎드려 패들링을 하고, 폼 나게 서핑 수트를 입고 백사장 위를 걷는 내내 꽤 즐거웠다. 운동 신경이 젬병인 탓에 멋진 자세로 유유히 파도를 가르진 못했지만, 물살이 흐르는 대로 보드 위에 누워 둥둥 떠다니는 순간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분명 서핑을 하는 내내 꽤 즐거웠다.

 

딱 알맞은 온도, 뜨뜻미지근

 

이런 상황에서 과연 K만 서핑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답을 내렸다. K처럼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당연한 말이지만, ‘좋아함’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액체마다 끓는점이 다르듯, 누군가는 100℃의 온도에서 펄펄 끓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36℃의 온도에서 적당히 끓는 마음으로 뭔가를 좋아할 수 있는 거다. 그저 각자의 마음이 끓는 온도가 다른 것일 뿐.

 

그동안 나는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그 대상에 대해 열렬히 끓는 마음을 가지거나, 뭘 물어봐도 척척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어떤 자격 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이게 좋아하는 게 맞나?’ 하고 자꾸 마음의 온도를 잰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하려 한다. 나는 원래 뭔가에 그렇게 뜨거운 사람이 아니지만, 내 나름의 온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뜨뜻미지근한’ 온도가,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기에 딱 적당한 온도라는 것을 말이다.

 

뭐든 뜨겁게 빠져드는 덕후의 마음만이 ‘좋아함’의 기준은 아니다. 각자 본인에게 알맞은 ‘좋아함’의 온도가 있겠지. 그러니 남들을 따라 무리해서 내 마음의 끓는점을 높이려 하지 않을 거다. 지금처럼 주변부만 맴돌아도, 나만 즐거우면 된다는 마음으로 뭔가를 좋아해야지.

 

나에게 필요했던 건 ‘좋아하는 마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도의 마음만으로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앞으로 누군가 내게 ‘OO을 좋아하냐?’고 물을 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봐야겠다. 다른 사람들처럼 잘하지 못해도, 완벽히 알지 못해도 나는 나만의 온도로 그것을 좋아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


[886호 –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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