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만나면 오래 사귀는 타입이신가 봐요?”

길게 연애한 경험이 꼴랑 두 번뿐이라 ‘타입’이라고 말하긴 좀 거창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 애인(이자 남편)과 7년째 연애 중이고, 직전 사람과도 2년 넘게 만났으니까. 그래서인지 ‘연애 오래 하는 비결’을 묻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십 대 초반에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연애 조루’였다. 누굴 만나도 한 계절 이상 사귀지 못하고 헤어졌다. 연애를 인생 최대의 목표로 두고 노력하는 데 비해 안 풀려도 정말 더럽게 안 풀렸다. 농담이 아니라 썸만 타다가 사그라든 관계만 모아도 소극장 하나는 채울 수 있다.

 

시작할 땐 다들 잘 해줬지만 금방 나에게 질려 했다. 초반에 한두 놈이 그랬을 땐 ‘다 내가 보는 눈이 없는 탓이요’ 하고 말았는데 상대만 바뀐 조루 연애가 반복되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사람을 질리게 하는 매력(?)이 있구나.’

 

 

진짜 모습을 보이면 더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적지 않은 연애를 말아먹고 나서야 그 ‘사람 질리게 하는 매력’의 실체를 알게 되었는데. 나에겐 이상한 악취미가 있었다. 애인이 나의 특정 부분을 좋아하거나 칭찬하는 걸 못 견뎠다. 연애 초 연인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마법인, 콩깍지의 존재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가령 이런 식의 장면이 클리셰처럼 반복됐다. “네가 쓰는 단어가 좋아. 너랑 얘기하면 재밌어”라는 말에 “오빠가 날 아직 몰라서 그래. 내가 얼마나 말을 못되게 하는데” 하고 정색하며 분위기를 박살 냈다.

 

“고마워. 나도 네가 좋아”로 충분한 걸. 왜 쓸데없는 말을 했을까. 이제 와서 추측해보면 무서웠던 것 같다. 그가 내 모습을 낱낱이 알게 되면 더는 날 사랑하지 않을까 봐. 쉽게 말해 방어기제가 잘못 발동한 것이다.

 

그래서 잘 해보고 싶고 오래 만나고 싶은 사람일수록, 나의 못난 면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만 나오는 구린 자아들을 억지로 끄집어내서 이런 나까지 사랑해 달라고 떼를 썼다. 나와 과거의 애인들은, 사탕처럼 달콤한 이야기만 해도 모자란 시기에 과도한 자기 고백을 나누느라 지쳐버렸고. 영원을 꿈꾸던 관계는 없던 일이 됐다.

 

나는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반쪽짜리 명제—‘그가 당신을 정말 좋아한다면 밑바닥까지 사랑해줄 것이다’ 류의—에 갇혀 있었다. 만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어쨌든 애인이니까. 내 모든 정보를 전체공개로 돌리고 시험에 들게 하는 게 옳다고 믿었다.

 

관계에도 단계가 있고 종류가 있다는 걸 까맣게 몰랐던 탓이다. 여러모로 납작한 세계 속에서 조루 연애나 반복할 수밖에 없던 때였다.

 

자아는 12인조 아이돌 그룹, 모든 멤버에게 입덕할 필욘 없어

나의 자아는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닌 12인조 아이돌 그룹과 비슷하다. 인사성이 바른 멤버 A도, 글 쓰는 멤버 B도, 제 분을 못 이겨 이따금 소리를 지르곤 하는 다혈질 멤버 C도 모두 그룹의 일원, 즉 나다. 그런데 이 그룹은 단체 활동보단 개인이나 유닛 활동을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래서 그룹보다는 멤버 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멤버를 보고 입덕한 사람에게 나머지 11명을 억지로 떠먹일 수 있을까? 다른 멤버들도 같은 그룹이니 어서 좋아하라고. 그렇게 못 하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다그치는 게 옳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보단 가까워지고 싶은 대상을 내 정원에 자주 초대하는 편이 더 현명한 방법일 테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나머지 멤버와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생기겠지.

 

‘자아의 유닛 활동론’을 이해한 덕분에 연애 조루 증상이 크게 나아졌다. 사실 연애뿐만 아니라 다른 관계에서도 더 건강한 태도를 지니게 된 듯하다. 이제 나는 사람을 사귈 때 내 모든 모습을 한꺼번에 오픈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일하다가 만난 사람에겐 일하는 자아를, 여행하다 만난 사람에겐 여행하는 자아를 보이는 게 당연하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그가 좋아할 만한 자아만 유닛으로 꾸려서 내보내기도 한다. 늘 맘처럼 되진 않지만(가끔 원치 않는 자아가 튀어나오곤 하므로) 할 수 있는 데까진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사랑에 빠지는 일도, 크게 실망해 절교하는 일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멋진 사람을 봐도 ‘저 언니 어딘가엔 지질한 자아가 있겠지’ 생각하면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게 된다. 반대로 예상치 못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만나도 딱히 호들갑 떨지 않고 넘어 갈 수 있게 됐다.

 

스스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 모든 자아가 완벽하게 멋진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있다고 해도 이번 생에 내가 이룰 수 있는 목표는 아니다. 그렇다면 알리고 싶지도 굳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는 못난 자아는 은근슬쩍 숨기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노파심에 덧붙인다. 여기서 말하는 ‘못난’이 범죄를 뜻하는 건 아니다) 나만 아는 비공개 멤버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렇게라도 부족한 나를 덜 미워하며 살고 싶다.

 


[887호 – 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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