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없는 남자의 욕심

 

TV를 틀면 왠지 다들 들떠있는 것만 같다. 재기발랄함과 재치, 사랑스러움을 뽐내려고 안간힘이다. 그런데 이럴 때 말없이 자기 자리에서 빛을 내는 사람이 있다. 예능 <삼시세끼>와 <집밥 백선생>의 조용한 조력자, 영화 <쓰리썸머나잇> 속 의리 넘치는 청춘. 배우 손호준이다. 착하게 살고 싶고, 손해 보는 게 마음 편하며 승부욕도 없다고 밝힌 기묘한 배우. 이 욕심 없는 남자의 욕심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먼저 자신을 믿어야만 남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영화, 나는 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많이 바쁘실 것 같은데요.
영화 <쓰리썸머나잇>을 홍보하고 있어요. 얼마 전엔 <미세스 캅>이라는 드라마의 촬영에 들어 갔고요. 예능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에선 요리도 배우는 중이에요.

 

영화 <쓰리썸머나잇>에선 베드신도 있었죠. 어려움은 없었어요?
괜찮았어요. 베드신 현장에는 사람 손호준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영화 속의 인물 ‘해구’에게 벌어지는 상황들이었죠. 대본대로,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이에요.

 

영화 <쓰리썸머나잇>에선 배우 김동욱씨, 임원희씨와 친구로 연기 하셨죠. 형들과 연기하면서 부담감을 느끼진 않았는지요?
<응답하라 1994>에서도 성균이 형(배우 김성균)이랑 친구로 나왔잖아요. 성균이 형이 워낙 연기를 잘해서, 한 번도 어색했던 적이 없어요. 그래서 원희 형과 할 때도 괜찮았어요. 감독님이 원희 형에게 “얼굴로써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을 지녔다”고 했는데, 저도 그 말에 동감합니다.

 

지금까지의 연기를 보면 남자 복이 많았던 것 같아요. 여배우와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다, 이런 마음은 아직까진 없어요. 제가 아무리 혼자서 “나는 배우야”라고 외쳐봐야 배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보시는 분 들이 인정해주셔야 배우가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배우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기간이니까 특정한 역할이 탐나진 않아요.

 

그렇다면 스스로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요. 만약 자신을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진짜 배우가 될 수 없어요. 먼저 자신을 믿어야만 남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저를 인정 안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없겠죠.

 

호준씨는 영화 <쓰리섬머나잇>의 ‘해구’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해태’ 같은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어요. 활발하고 여자를 좋아하는 젊은 남자의 모습이죠. 그런데 실제로 보니 나긋나긋하면서도 섬세해 보여요. 영화에서의 모습은 실제 호준씨와 어떻게 다르지요?
영화 속의 ‘해구’는 그야말로 영화 속 인물이에요. 제가 만든 캐릭터라기보다는, 대본에서 이미 존재하던 사람이지요.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게 제 몫이었고요. 지금 여기서 인터뷰하는 건 호준이니까. 제가 연기하는 인물과 저는 똑같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영화에서 ‘해구’는 허세가 심해요. 여자친구에게 “나는 회사 사장 아들”이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저랑은 다르죠. 다만 계획성이 없고 즉흥적이라는 면에선 그 친구와 비슷해요. 저는 머리를 써서 계획을 짜고 움직이는 편이 아니거든요.

 

계획적이지 않다고 했는데, <삼시세끼> 같은 예능에서의 모습을 보면 꼼꼼한 사람으로 보여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는 않아요. 밥을 먹고 난 뒤에는 바로 설거지를 하는 식이죠. 하지만 할 일을 미리 정해 놓지도 않아요. 친구들과 만날 때도 즉흥적으로 약속을 잡을 때가 많거든요. 날짜를 정해서 약속 잡는 게 아니라,“나 지금 할 일 없는데 커피 한 잔 마시자” 이렇게 말해요.

 

예능 <삼시세끼>에서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어요.
네. 그곳에는 배우가 아닌 사람 손호준이 있었으니까요. 100% 제 모습이긴 하지만, 방송 기술이라는 게 있잖아요. 편집 덕분에 좋게 부각된 부분들이 있어요.

 

그런데도 왜 <응답하라 1994>의 ‘해태’와 비슷한 배역들을 맡게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 역할을 굉장히 잘 소화해내기 때문인가요?
많은 분들이 절 ‘해태’로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만큼 사랑을 많이 받았고요. 하지만 제가 제일 먼저 출연했던 영화는 <고사: 피의 중간고사>였어요. 그땐 사이코패스 역할을 맡았죠. 영화 <바람>에서는 학교의 일진 역할을 맡았는데, 솔직히 그 작품으로 제가 알려지진 않았으니까 저를 ‘해태’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예능에선 형들에게 신뢰를 얻고, 나영석 PD로부턴 ‘예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호준씨가 생각하기에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무엇이죠?
글쎄요. 제가 자신에게 착하다고 얘기하는 건 웃긴 일이에요. 귀엽다거나 예쁘다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요. 단지 착해지려고 노력해요. 많이 예뻐해 주시니까요. 또 선배님들에게 예쁨 받고 싶어서 더 노력하고요. 그리고 저는 그저 사람을 만날 때 가져야 할 기본적인 예의를 지킬 뿐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기본을 지키며 살아가죠. 저만 그러는 게 아니거든요. 보자마자 반말하는 사람들은 없잖아요. 하지만 방송이다 보니까 부각된 거고 선배들이 예뻐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연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다 잘하진 못해도 다 할 줄 아는 배우

 

욕심도 없고, 착하게 살고 싶다고 하셨는데, 10년 동안 배우로 활동하면서 내 것을 내세우지 않아 손해를 본 경험은 없었어요?
손해 보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친구들과 볼링을 칠 때가 종종 있거든요. 전 솔직히 우리 팀이 이기든 지든 상관없어요. 대신에 같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다 재밌게 하면 좋겠어요. 만약 승부욕이 강한 친구들이 있다면, 전 항상 반대편에 서요. 그래야 우리 팀이 져도 기분 좋게 끝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일부러 져주기도 해요. 그쪽 팀은 이겨서 좋고, 우리 쪽은 재밌어서 좋잖아요.

 

축구나 야구를 볼 때 내 편 정해놓고 응원하는 것을 안 좋아하세요?
저는 항상 지고 있는 팀을 응원해요. 롯데가 지고 있으면 롯데를 응원하고, 역전하면 기분이 참 좋아요. 그런데 다음 날 한화가 지고 있다면, 다시 한화를 응원하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영화와 드라마, 예능, 뮤지컬에 출연했고 가수로 앨범을 낸 적도 있죠. 욕심이 없다고 하기엔 많은 활동을 하셨어요.
일상생활에서 승부욕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연기에 대한 욕심은 당연히 있어요. 어떤 분들은 저를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고 알고 계신데요. ‘타키온’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에서 앨범을 낸 적이 있거든요. 저는 원래 극단에서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기획사 매니저 분의 조언대로 앨범을 냈어요. 그때 매니저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단역과 조연부터 시작해서 연기 경력을 쌓는 시간과, 음반을 낸 뒤 인지도를 쌓아 연기할 기회를 얻는 시간이 비슷할 것”이라고요. “안 해 본 분야 한번 해보지 않겠어?” 그 말에 동의했기에 가수로도 활동했었죠.

 

양한 활동들이 연기에 도움이 됐어요?
그럼요. “배우가 다 잘할 필요는 없어. 그런데 다 할 줄 알아야 해.” 제가 몸담았던 극단 대표님의 말씀이에요. 쉽게 말하면 소주도 맛있게 먹을 줄 알아야 맛있게 먹는 연기를 할 수 있고, 소맥도 탈 줄 알아야 연기할 수 있잖아요.‘타키온’으로 활동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줄 모르니까 안 해본 일들에 도전하고 싶었죠. 궁극적으론 연기를 원해요.

 

사람들은 안 해본 일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죠. 실패를 싫어하기도 하고요.
제 실력을 제가 아는데 시험 성적이 안 나왔다고 슬퍼할 순 없어요.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오니까요. 음악은 배우는 단계였고,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괜찮았어요.

 

경상도 사투리를 배운 것도, 안 해본 경험 가운데 한 가지였죠?
저는 전라도 출신인데, 영화에선 경상도 사투리를 해야 했어요. 그땐 부산에 내려가서 어머님들을 만나고, 시장도 돌아다니면서 연습하고 공부했죠. <응답하라 1994>를 촬영할 땐 전라도 사투 리를 쓰면 되니까 편할 줄 알았지만, 막상 제가 서울에 살다보니 사투리를 꽤 잊었더라고요. 그래서 광주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만나고, 전남 해남에도 내려가 봤어요. 지금도 사투리를 잊지 않으려고 틈틈이 연습하는 편이에요.

 

스크린에서 뵐 수 있는 분들 중 요즘 가장 활발하게 여행하는 분일 텐데요. <정글의 법칙>이나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에서 여러 곳을 다녔잖아요. 여행은 사람을 풍요롭게 한다는 말은 사실인가요?
<꽃보다 청춘>을 찍고 나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아무런 준비 없이도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사실 그 전까진 여행 계획을 세우고도 실천하지 못했거든요. ‘여행할 때가 아니니까’, ‘준비가 덜 됐으니까’라는 이유를 대곤 했어요. 하지만 <꽃보다 청춘>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여행 당일까지도 가는 줄을 모르는 상태였고, 비행기 타면서도 얼떨떨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갈 수 있는 게 여행이었는데 촬영하기 전에는 몰랐던 거예요.

 

여행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적용되는 이야기겠지요?
네.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 선생님께 요리를 배우고있어요. 배우기 전까진 요리가 복잡하고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배우면서 조금씩 재미를 느껴요. 응용하면서 이 요리가 저 요리로 바뀌고, 재료에 따라 요리도 달라지죠. 준비가 없이도 일단 해보면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고등학생 때부터 연기자를 꿈꿨다고 들었어요. 어릴 적의 꿈을 이룬 사람의 하루하루는 행복한지요?
수입도 없고 힘든 무명 시절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많은 분들이 제게 질문을 하세요. 또 직장에 다니거나 자리를 잡은 친구들 사이에서 불안하지 않았느냐고요. 전혀요. 한 번도 불안한 적 없었어요. 연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집중했어요.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하나씩 조그만 역할을 맡았고요. 작은 역할이었지만, 제겐 일 년을 참을 수 있는 재미를 줬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했죠. 재밌으니까. 후배들에게 조언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동생들이 절 찾아오면 먼저 이걸 물어봐요. 왜 하고 싶어? 재미있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재밌으면 하는 게 맞아. 나도 재밌어서 시작했으니까.

 

호준씨의 꿈은 무엇인가요? 명배우, 아니면 유명한 스타가 되는 것?
아니요.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듯이,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지금은 젊은 배우지만, 나중에는 어떤 연기를 하고 있을까요? 미중년 또는…?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해요. 재밌게 일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

 

 

 

 

Editor 조아라 ahrajo@univ.me

Photographer 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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