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정도를 1에서 10 사이 숫자로 표현해보세요.” 간호사가 말했다. 10은 곧 지구와 굿바이 인사를 나누어야 할 것 같고 9는 온몸이 불타고 있을 때쯤 말해야 되는 수 아닐까 싶었다. “8이요, 8!” 간호사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기 낳을 때 고통을 보통 8이라 말해요.그 정도예요?” 아이를 낳은 적 없으니 지금 아픈 게 산통과 같은지 알 턱이 있나. 산통이 이보다 아프다면 아이는 앞으로도 쭉 낳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다급하게 다시 숫자를 불렀다.

“그럼 7!”

 

고통의 정도를 숫자로 환산하는 건 어려워도 자존심 정도를 정량화해서 표현하란 질문을 받았다면 확신을 갖고 1이라 했을 것 같다.검사를 받고 응급실로 오자 비닐봉지 같은 걸 준비할 새도 없이 저녁에 먹은 밥 덩어리와 고기 덩어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누군가가 다가와 간호사에게 갈아입을 환자복과 닦을 걸 좀 달라고 외치길래 우리 엄마가 벌써 왔나 했더니 남자친구 어머니였다…. 안녕…하세요…? 이어서 간호사가 요도에 소변줄을 찔러넣고 갔다. 이후 남자친구 어머니는 매일 내 기저귀를 갈아주게 되는데….

 

2015년 1월의 어느 날, 강변북로를 지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남자친구가 운전을 하고 있었고 나는 조수석에 있었다. 사고는 뒷 차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지 않아 일어났다. 가해자는 당일 감기약을 먹어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뒷차에 밀려나간 차는 오른쪽 가드레일을 박고 멈춰 섰고 조수석 차 문이 통째로 날아갔다. 꽂혀 있던 지갑과 함께 내 기억력이나 체력 같은 것도 그 때 많이 날아간 것 같은데 아직도 못 찾고 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받았더니 양측 골반 골절, 왼쪽 발목 골절, 방광 파열이 되었다고 했다.

 

응급 수술을 했고, 두 번의 수술이 더 남았다.전치 20주 진단이 나왔다는 말도 들었다. 발가락이 움직여지지 않아 걱정하고 있을 때 문진 왔던 의사 선생님은 너무 태연해서 소녀시대 태연인 줄 알았다. “(태연히) 발목이 부러질때 신경도 같이 다쳐 안 움직이는 걸 수 있어요.” “신경을 다치면 어떻게 되는데요?” “(태연히)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어야죠.” “그런 재수없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태연히) 꽤 있죠.” 검사를 하고 나니, 진단서에 다리 신경 손상 소견이 추가되었다….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다. 사고가 난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후부터는 마약성진통제도 줄이고 잠도 밤에만 잘 수 있게 되면서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게 되었다. 친구들은 나를 위로하며 긍정적인 말을 해주었다. “이 정도로 끝나 다행이지.” “이 참에 푹쉬는 것도 괜찮을 수 있어.” 좋은 말이었고 나도 맞장구쳤다. 이성적으로는 동의가 되니까. 단, 머리로는 받아들여지는데 마음으로는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슬픔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남자친구나 가족에게도 표현할 수 없었다. 간호사가 요구했던 것처럼 숫자 1과 10 사이로 환산해 말하기에는 너무나 생경하고 개인적인 일이라 도저히 커뮤니케이션 되는 방식으로 말할 자신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표현했다가 영영 이 억울함과 불안 같은 감정에 사로잡힐까봐 두려웠다.

 

슬픔은 그 자체가 아니라 영웅담에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도록 하는 극적 장치로 주로 쓰여 왔고 나 또한 그런 스토리텔링에 익숙했다. 슬픔이란 빨리 탈출해야 하는 부정적 상태로 여겨졌다. 그래서 우선 이 감정을 덮어두기만 했더니 감정 자체가 무뎌지고 무기력해지는 부작용이 찾아왔다. 충분히 자신의 슬픔을 이해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슬픔에 대해서 비아냥거리기 쉽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슬픔을 억누르자 자주 화가 났다. 이상한 보상 욕구 같은 심정이 생겨서, 남들이 힘들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그래봤자 니가 나보다 힘들어?’ ‘그게 뭐가 힘들다고 찡찡대?‘  같은 생각이 불쑥불쑥 든 것이다. 그건 내가 평소 싫어하던 종류의 인간들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휠체어를 타기 시작할 무렵 두 친구가 동시에 병문안을 왔다. 한 친구는 『슬픔의 위안』이라는 책을, 한 친구는 『완벽한 날들』을 가져왔는데 너무 상반된 책이라 웃음이 났다.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가져왔냐고 했더니 한 명은 “이럴 때는 슬픔에 빠져보는 게 좋지”라고 하고 또다른 한 명은 “이럴 때일수록 좋은 생각을 하는 게 좋지” 라고 말했다. 다친 건 과거의 사고 그 자체일 뿐이지만 내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이 되기도 한다. 어차피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서밖에 생각할 수 없다면 현재 공감되지 못하는 말들을 억지로 욱여넣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는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완벽한 날들』을 다시 펼치지 않았다. 대신 『슬픔의 위안』을 읽었다.

 

슬픔이란 갑자기 ‘빠지는’ 것이어서 깊이 몸을 담그지 않고는 헤엄쳐 나오지도 못한다. 충분히 애도하고 미워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하며, 그러는 중의 비이성적인 자신을 너무 억누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거식이 진행되면 폭식이 필연적으로 오듯 가해자를 미워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그 절제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보단 “보험에만 맡겨놓고 사과 한 번 안 하는 이 X는 진짜 노답이야” “내가 퇴원하면 이 X 집 앞에 가서 아침마다 똥을 싸줄거야” 같은 말을 하는게 정신 건강에 이로웠다.

 

슬픔의 힘으로 열심히 재활을 하고 밥을 챙겨 먹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발가락이 조금씩 움직여지고, 욕창이 낫고, 혼자 화장실을 가기 시작하는 등의 소소한 진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생활하는데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일상으로 복귀했다. 사람들은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어서 빠르게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힘들 때 옆에서 깊이 마음을 나눈 것은 슬픔 뿐이었다.

 

디즈니·픽사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는 이처럼 슬픔이 기쁨보다 힘이 셀 수 있다는 은유가 나온다. 감정을 의인화한 캐릭터 ‘기쁨’과 ‘슬픔’이 길을 잃는데, 그동안 ‘기쁨’은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바뀔까봐 ‘슬픔’이 활동하는 것을 막으려고만 했다. 그러나 곧 ‘기쁨’은 알게 된다. 슬픔이 기쁨보다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슬픔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충분히 두려워한 덕분에, 돌아오는 확실한 길을 찾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언젠가 슬픔이 또 갑자기 찾아오면 그때는 조금 더 편안히 있다 가게 하고 싶다.

 

 

 

Editor   정문정  moon@univ.me

Illustrator   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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