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원래 안 이렇거든
“너 글 쓰는 자아가 따로 있어?”
친한 친구 한 명이 내가 쓴 기사를 읽고 대뜸 물었다. 평소 소심한 쭈구리(?)인 탓에 끊어져 가는 인연들을 바라만 보고 있던 내가 용기를 내서 먼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봤다는, 대충 뭐 그런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글 속에서 한없이 내향적이고 쭈글쭈글한 내 모습을 보고 친구는 낯설어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 앞에선 나의 소심한 자아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나는 낯을 가리는 타입이며, 친해져야 내 본모습을 보여주는 성격이다”라고 스스로를 규정해왔다. 그러니까, 소심하고 쭈글쭈글한 나는 내 ‘본모습’이 아니라고 믿었던 거다. 가까운 사람들이 보는 나, 그들과 함께할 때 나오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종종 나를 본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넌 조용한 편이구나.” “은근 소심한 성격이네?” “내향적이란 얘기 많이 듣지?”라는 식의 얘길 하면 입은 웃으면서 마음속으론 구시렁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몇 번 봤다고 나에 대해서 다 아는 척이야?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이랑 있으면 나 되게 밝고, 잘 웃고, 재밌는 사람이야. 나 원래 안 이렇거든!’이라고. 그렇게 속으로만 속사포 래퍼로 변신해 디펜스를 해대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못 내뱉고 속으로만 꿍얼거리는 걸 보니 난 진짜 소심한 게 맞구나! 그래, 난 소심한 거였어…!

 

‘나다움’이라는 감옥
내가 실은 꽤 소심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자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진짜 내 모습은 뭘까.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박장대소하며 마구 X드립을 던져대는 나,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씩씩한 큰딸 역할을 하는 나, 십년지기들과 있을 땐 물건 값도 깎을 만큼 대범함(?)이 솟구치는 나… 분명 소심과는 거리가 먼 모습들인데. 어디서는 소심하고, 어디서는 밝디밝은 두 얼굴 가운데 나의 진짜 본모습은 대체 뭐란 말인가. 어느 막장 드라마 주인공처럼 “나다운 게 뭔데?”라고 외치고픈 심정이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기분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내 모습도 바뀌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내 ‘본모습’만 찾으며, 그 모습 외의 나를 부정했다. 사람들이 나를 규정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정작 나는 스스로를 ‘나다움’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자꾸 그 틀에 나를 끼워 맞추고 규정하려 했던 것이다.
그때 내가 나답다고 믿었던 내 모습은 사실 나다운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소심하고 내향적인 나를 인정할 수 없어서 편한 사람들에게만 보일 수 있는, 내 안에 깊숙하게 넣어둔 모습을 그냥 내 본모습이라고 생각해버린 거다. 그 모습이야말로 몇몇 사람에게만 보일 수 있는 특수한 모습이었는데도 말이다.

 

인정하지 못했던 나를 받아들이기
요즘은 내가 인정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처음 만난 이들 앞에서 ‘어버버’ 하며 얼굴을 붉히는 나도, 친해지고 싶은 동료가 혹시 날 불편해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말을 고르고 고르는 소심한 나도,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머리가 하얘지는 나도 다 나라는 것을 되뇐다.
예전 같았으면 “이건 내가 아냐!”라고 딱 잘라 선 그었을 모습들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며 ‘음, 나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군.’ 하고 잘 관찰해두는 거다. 걔도 나고, 쟤도 나구나. 받아들이고 사랑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쉽진 않지만.
어쩌면 진짜 내 모습이나 나다움 같은 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그냥 주어진 상황을 그때그때 마주하는 내가 있을 뿐.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기 위해, 나답기 위해 애쓸 필요 없다. 상황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함께하는 사람이 다르면 다른 대로 거기서 불쑥 튀어나오는 낯선 나를 발견하는 것도 그런대로 재미있는 일이라 여겨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인정하지 못했던 나를 받아들이는 게 조금은 쉬워질 것 같다.
그리하여 만약 친구가 나에게 “너 글 쓰는 자아가 따로 있어?”라고 묻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젠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응, 걔도 나야!”라고.


[891호 – think]

ILLUSTRATOR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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