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이 남긴 건 빙봉이다. 관객들은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되물었을 것이다. ‘내가 잊고 있던 빙봉은 무엇일까?’ 사탕 눈물을 흘리진 않았을지라도 픽사의 작품엔 항상 빙봉이 있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그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1. 조금 못나도 내꺼니까
우디는 천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보안관 인형이다. 버즈는 색색의 버튼을 누르면 빛이 나 효과음이 나오는 장난감이다. 유년기의 우리에겐 저마다의 우디와 버즈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구체적인 장난감들은,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어떤 것이기도 하다.
장난감 치고도 별 재능이 없는 두 캐릭터는 때로는 이기적이고, 때로는 자신이 장난감인 것조차 몰라 스스로의 능력마저 착각한다. 이들은 사소한 실수나 오해로 인해 안락한 집 바깥세상에 처한다.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 역경, 그리고 협력을 통한 시련의 극복을 거쳐 끝내 보금자리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 과정까지도 굉장히 일상적인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보편성과 일상성이 이 캐릭터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가 아닐까. 특별한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아닌 나만의 조금 모자란 히어로. 그 히어로가 저마다 얼마 없는 힘을 합쳐 자신의 집, 즉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토이스토리 시리즈의 목표는 늘 ‘귀가’다.)은 분명 콧날이 시큰해지는 이야기다. 어린이에게도. 그리고 그들과의 추억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 미안한 성인들에게도.
Reporter 김유진
2. 이젠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 말라면 하고 싶고 하라면 하기 싫은 법이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계획도 짜놨는데 남들이 나를 못 미더워하면 비뚤어지고 싶어진다. 니모도 처음엔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갓난물고기’ 취급하는 아빠 말린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 한 번의 모험이 절체절명의 위험으로 이어졌지만. 도와 준 도리가 그물에 걸리자 니모는 다시 한 번 위험 속으로 몸을 던진다. 말린은 늘 그랬듯 니모를 말리지만 그는 이제 망설이지 않는다. 스스로를 믿기 때문이다. 믿음은 전염된다. ‘할 수 있다’는 걸 깨우쳐 준 물고기 ‘길’의 도움을 받아 수족관에서 탈출한 니모는 이제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믿는다. 자식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말린 역시 니모의 당당한 눈빛을 보고 그의 모험을 돕는다. 신뢰를 주려면 먼저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남들이 뭐라건, 본인이 가진 ‘행운의 지느러미’를 믿는다면 누구나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코딱지가 아닌 어른이니까.
Editor 기명균
3. 우리 세상은 언제쯤 바뀔까?
레미는 쥐다. 일단 쥐가 맞긴 한데 좀 특이하다. 다른 쥐들이 버려진 음식찌꺼기를 먹을 때 레미는 최고급 치즈와 로즈마리로 어떤 요리를 할지 고민한다. 위생관념도 철저하다. 늘 두발로 걸어 다니면서 앞발의 청결을 유지한다. 재능은 또 어찌나 뛰어난지 절대미각에다 만드는 요리마다 호평일색이다. 이쯤 되니 출신성분이 아쉽다.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위생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주방 퇴치대상 0순위로 꼽히는 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쥐면 쥐답게 쓰레기나 먹고 살라는 가족들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끝내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한다. 비록 모자 속에 숨어 한 인간의 머리칼을 이리저리 잡아당겨 조종하는데 불과하지만 행복하다. 인간을 불신하는 아빠가 그만 돌아오라고 하자 레미는 말한다. “세상은 변해요. 바뀌는 것도 있다구요. 중요한 건 우리 의지에요” 이 말을 내뱉은 후로 레미의 삶은 정말로 변하기 시작한다. 어딜 가든 쫓기는 게 일상이고 누구보다 작은 몸집을 가진 그가 세상은 변한다고 용감하게 얘기할 때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아, 출신성분 따지는 세상이 언제쯤 변할까 생각해보니 문득 서글퍼져 그런 건 아니다. 오해 말길…
Reporter 배대원
4. 쓸모없는 너, 내 동료가 돼라
허리가 굽은 백발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걸음을 옮긴다. 그가 무기력하게 앉은 의자 옆에는 또 다른 안락의자가 주인 없이 놓여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것이다. 그에게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아내와의 추억이 녹아든 자신의 집을 지키는 것. 하지만 남들이 볼 때 그는 재개발 구역에서 집을 팔지 않고 버티는 ‘노망난’ 늙은이일 뿐이다.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관절이 약해졌다고 꿈과 총기까지 닳아 없어진 것은 아니다. 칼은 집에 풍선을 잔뜩 매달아 하늘로 날아오르고 환상의 폭포를 향한 항해를 시작한다. 어느새 미운 8살, 정체를 알 수 없는 새, 말하는 개가 칼의 뒤를 따른다. 그들은 이전까지 무능력하다는 이유로 변두리에 내몰렸던 존재들이었지만, 온몸을 던져 서로를 지켜내고 위기를 극복하며 한층 성장한다. 마침내 모험을 마친 칼은 과거에 사로잡힌 노인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진정한 탐험가로 거듭난다. 평생의 동료를 얻은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Reporter 임현경
5. 괴물을 볼 수 없는 너에게
사람들은 잘 모르는 세계를 막연히 두려워한다. 기후 현상을 두려워한 고대인들은 두려움에 인격체를 불어넣음으로써,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다.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것이 많은 아이들은 볼 수 없는 공포의 세계를 상상력으로 헤아린다. 하지만 인간 이성이 공포를 정복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힘을 잃게 됐다. 월식은 용이 달을 집어삼키는 과정이 아님을 “알고,” 침대 밑엔 괴물이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아는 세계 이외의 공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똑똑한 괴물이 됐다. <몬스터 주식회사>에 나오는 괴물들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두려움의 대상을 철저히 분석한다. 그들은 인간을 모두 “안다”고 확신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두려움과 그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한 세계를 헤아리게 하는 상상의 힘을 잃는 순간 우리는 진짜 괴물이 된다. 두려울 게 없지만, 혼자 살수 밖에 없는 똑똑한 괴물이 되지 말자고 영화는 얘기한다.
Reporter 김송미
6. 인류의 생존보다 매혹적인
쓰레기를 모아 정리하는 본연의 숙명을 상실한 월E는 바퀴벌레에게도 반가움을 느낄 정도로 외로운 로봇이다. 인간의 삶을 동경하던 어린 아이에게 우주의 산타클로스는 ‘이브’라는 첨단 기술에 화끈한 성격, 매끈한 외모의 친구를 선물한다. 물론, 선물을 사랑하지 않을 아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월E는 매사에 소심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이브의 행동 하나 하나에도 화들짝 놀라는 시대의 찌질봇. 누가 그에게 새로운 인류의 희망을 베팅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토록 기다려온 사랑을 만난 찌질봇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브를 구하기 위한 모험에 온 몸을 던진다. 그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닌, 단지 이브만을 구하고자 했던 순정파 소심봇. 비록 서로를 알게 된 시간은 짧았더라도 이방인은 마법처럼 한 로봇의 새로운 숙명이 되고 교리가 되어버린다. 소심봇의 영화를 보는 소심남은 그 사랑의 힘에 감탄하면서도, 짐짓 본인의 숙명을 돌아본다. 찌질한 사람은 있어도 찌질한 사랑은 없으려니 하면서. 게다가 멋진 베팅의 결과로 인류가 지구를 되찾은 것 역시 꽤나 괜찮은 덤이다.
Reporter 공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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