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23년을 같이 살고 있어요. 시기마다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가 다른데, 아무래도 이제 제가 성인이다 보니 모든 주제에 관해서 부모님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성문제가 그래요.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꼬치꼬치 물으시지만 자세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걱정돼서 그러시리라 생각도 하고, 또 제게 관심을 표현하시는 것도 알겠지만, 말하기 민망하고, 또 간섭 받는 기분이 들어서 일일이 대답하고 싶진 않아요.
먼저 살갑게 말 걸지도 못하는데, 걸어오시는 말에도 대답을 잘 안하려고 하는 제가 너무 불효자 같아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잘 안됩니다. 지금 적절한 방법을 알아두지 않으면 평생 죄송한 마음 반, 자유롭고 싶은 욕망 반으로 그렇게 살 것 같습니다. 팁을 주세요 작가님.
국어사전은 대화를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라고 정의합니다. 이 정의대로 라면, 질문자님과 부모님은 성(性)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하죠. 예컨대 “아들아, 요즘 여자친구와 모텔은 몇 번 가니?” “아버지는 어머니와 일주일에 몇 번 하세요?” “콘돔은 꼭 쓰거라.” “네, 아버지. 안 그래도 저는 써보니 듀렉스가 좋더라고요. 아버지도 아직 안 묶으셨으면 듀렉스 쓰세요. 제 책상서랍 둘째 칸에 쓰고 남은 것 있어요.” “역시 넌 내 아들이다. 좋은 건 나눠 써야지. 그나저나 난 요즘 후배위가 좋더라.” “엇, 아버지. 저도요. 제 별명이 ‘후배위하는 선배’예요. 하하.” “(이구동성으로) 우린 역시 부자지간이네(요)!” 뭐, 이런 게 대화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자님은 처음에는 약간 민망함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오히려 아버지와 친근함을 느끼겠지요(어머니의 경우에는 시간 이 좀 더 걸리고, 좀 더 어렵겠지요. 하지만, 질문자님께서는 잘 헤쳐나가실 거예요. 이런 사연도 보내셨으니. 자, 파이팅!)
하던 말로 돌아가자면, 어쨌든 질문자님께서는 지금 부모님과의 대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질문자님과 부모님이 펼치고 있는 건 ‘대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질문자님은 부모님과 ‘문답’ 내지 ‘질의 응답’시간을 가지고 있는거죠.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자식이니 걱정이 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묻고 싶은 맘이 있겠죠. 하지만, 대화라는 건 하나의 주제를 두고 서로 동등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겁니다. 그러니, 아주 이상적인 입장에서 해결책을 말씀 드리자면 부모님께도 ‘성’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보내셨으니) 아마 성격상 대답하는 것도, 질문하는 것도 힘드실 걸로 예상됩니다. 그럼 현실적으로 어떡해야 할까요? 잠시 제 이야길 할게요. 저 역시 같은 일을 겪었거든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제가 스무 살 때부터 “어서 빨리 자버리라고, 이 자식아!”하며 여러 번 독촉하셨습니다. 성격이 굉장히 와일드하셔서 지면의 품격상 싣지 못할 소리도 여러 번 하시고 절 한심한 녀석 취급하곤 했죠. 제가 바로 질문자님과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저의 성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늘어놓기가 참으로 쑥스럽고, 발가 벗겨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죠.
그때마다 저는 매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를 성인으로 생각하시니까, 이런 걸 물어보시는 거죠?” “그래. 이 자식아. 그러니 어서 자버리라고!” “네. 성인으로 생각해주시니, 성인인 만큼 제가 현명하게 결정해서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염려 끼치지 않을 테니,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존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유의 대화를 이십 대 초반에 몇 차례 나눴습니다. 그러고 자연히 이런 대화는 서서히 줄었죠.
그러고 삼십 대 후반이 되니(그리고 아버지도 육십 대 후반이 되니)어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거리낌 없이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건 시간이 좀 걸리는 문제예요. 법적 성인이 됐다 해서 갑자기 ‘자, 오늘부터 우리 가족은 저녁 테이블에서 섹스에 대해 대화합시다!’라고 극적으로 전환시킬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대화에 시간이 좀 걸리는 저를 이해해달라’고 부모님께 정중 히 말씀드리세요. 아마, 분명히 이해하실 겁니다. 성질 급한 저희 아버지도 이해하셨으니까요. 물론, 그때에도 이렇게 대답하긴 하셨지만요. “그래도 어서 자버리라고! 무조건 많이 자야 해!”
추신: 그때 제 대답은 뭐였나고요? “아버지 저 실은….” 비밀입니다.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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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고민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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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민석씨는?
2010년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고 등단.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쓴 책으로는 『능력자』『풍의 역사』 『쿨한 여자』『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등이 있다.
소설가 최민석씨가 20대 독자들이 보내온 사연에 답변 비스름한 것을 드립니다. 인간관계, 진로, 외모, 취향 등등 그 어떤 고민이라도 메일로 보내주셔요. 고민 당첨자(?)에겐 메일로 ‘당신의 고민이 다음 주에 실릴 예정이오’라며 알려드리고, 기사는 익명으로 나갑니다. 고민 메일은gomin10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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