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인데, 촌스러운 취향 때문에 고민이에요.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어요.뭘 고르더라도 지인들한테 핀잔만 들어요. 제 필통도, 핸드폰 케이스도, 머리핀도 다 촌스럽대요.

 

이제는 제 안목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선택 장애가 올 지경이에요. 뭘 사려고 해도 친구들이 또 촌스럽다고 할까봐 걱정이에요. 트렌드 세터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평범하게 튀지 않고 싶은데 어떡해야 할까요?

 

 

질문자님이 여대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2년에서 최대 7년(혹은 그 이상) 촌스럽다는 평판을 들어왔겠네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명저 <구별짓기>에서 ‘취향도 계급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주장을 하곤 했죠. 그만큼 취향은 단순한 기호 이상인데, 혹시나 주변의 핀잔으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았셨길 빕니다.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평범함을 추구하고 싶다는 질문자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여, 저는 애통한 마음에 며칠간 조사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외양적으로 평범하게, 즉, 눈에 띄지 않게 다닐 수 있는가?’ 하고 말이죠. 그러다, ‘데일리 룩’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알게 됐습니다.

 

그러고 며칠 뒤 저는 어느새 ‘데일리 룩’을 콘셉트로 하는 여성 의류 쇼핑몰을 하루에 세 시간씩 방문하고, 비교·분석하는 예상치 못한 습관이 생겨버렸습니다(오늘도 소설 집필은 않고, 쇼핑몰만 기웃거렸어요. 이게 제 고민입니다. 엉엉). 그럼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며칠 간의 제 분석의 결과를 공유하겠습니다.

 

‘데일리 룩’을 표방한 제법 규모가 큰 국내 쇼핑몰들은 다음과 같은 패션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우선 <모코 블링>은 모델이 주로 ‘청바지에 세로무늬 남방’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봄 신상품 업데이트를 완료한, 20대 취향저격’이라고 광고한 <유니크한 여자옷장 아이보리 제이>는 청바지에 흰 셔츠, 그리고 원피스를 데일리 룩으로 추천하고 있었어요.

 

또한, ‘무심한듯 Point, 무난한듯 Special, 시선집중 with 데일리룩’이라는 다소 문법을 무시한 캐치프레이즈의 <에브리데이 데일리룩(이곳은 심지어 상표명이 ‘데일리룩’)>은 특이하게도 모델이 죄다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지구상에 원피스가 아닌 다른 옷은 없다는 듯 말이죠.

 

 

하여, 저는 또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째서 원피스인거야?!’ 이 의문을 품고 집에 돌아가니, 낯빛이 어두운 절 보고 제 아내가 답해주더군요. “원피스가 최고인걸, 여태 몰랐어?” 저는 이브의 탄생 이후로 줄곧 존재해왔던 진리를 몰랐던 바보 신세가 돼버렸습니다.

 

아내에 의하면, 원피스가 좋은 이유는 바로 코디하기가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많은 옷이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원피스 하나만 예쁜 걸로 사면 맨다리에 그것만 입으면 된다는 겁니다. 웬만해선 촌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심지어 꽃무늬 원피스라도 ‘원래 이런 패턴이구나’ 하고 말아버린답니다(꽃무늬인데도 말이죠). 게다가 원피스는 어쩐지 비싸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비싼 돈까지 주고 산 건데 촌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는답니다.

 

극단적으로, 꽃무늬 바지는 아무리 잘 입어도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데, 꽃무늬 원피스는 대충 입어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단, 모든 사람들이 아내를 어려워해서 ‘촌스럽다’는 말을 대놓고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저도 아내가 옷을 입을 때마다 속으로는 ‘촌스러운데’라고 생각했지만, 단 한번도 제 입밖으로 꺼내본 적은 없거든요(라면서 이렇게 써버렸네요. 여보, 미안해. 나도 벌어먹고 살아야지).

 

심지어 아내는 다리가 굵은 데도, 원피스를 사랑합니다. 옷장이 죄다 원피스이며, 집에서도 항상 원피스를 입고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도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네요.

 

아내가 집에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뜨개질을 하며 원고를 쓰는 제게 말했어요.

“원피스는 여자의 특권이야!”

아아, 그러고 보니 저도 원피스를 입고 싶네요.

 

추신: 스코틀랜드 남자들이 입는 전통 치마 ‘킬트’도 원피스는 아니네요. 정말 원피스는 여자만 입을 수 있나요?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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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고민 상담>

Q. 저는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Q. 부모님과 대화할 때 어디까지 털어놔야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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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민석씨는?
2010년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고 등단.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쓴 책으로는 『능력자』『풍의 역사』 『쿨한 여자』『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등이 있다.

 

 

소설가 최민석씨가 20대 독자들이 보내온 사연에 답변 비스름한 것을 드립니다.
인간관계, 진로, 외모, 취향 등등 그 어떤 고민이라도 메일로 보내주셔요.
고민 당첨자(?)에겐 메일로 ‘당신의 고민이 다음 주에 실릴 예정이오’라며 알려드리고, 기사는 익명으로 나갑니다. 
고민 메일은gomin10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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