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싫어한다고 하면 게으른 사람 취급하는데 저는 제 방에서 시간을 바쁘게 보냅니다. 집에서도 할 게 많은데 굳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면서 여행을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렇게 말하면 제 주변 사람들은 다들 빤한 대답만 해요.“여행 가서 느끼는 건 뭔가 다르다”고.

여행을 왜 가야 하나요?

 

걱정 마십시오. 세상에는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커피를, 술을, 산책을, TV를, 운동을, 독서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 칼럼을 싫어하는 무수한 대학내일 페북 유저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취향이라는 게 존재하니, 여행을 싫어한다 해서 ‘게으른 사람 취급’하는 친구들이 이상한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가보라고 추천을 한다면 그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가 질문자님의 지인이 될 수는 없기에 그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추정해보자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은 모두 여행지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을 겁니다.

 

그것이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게 한 자연경관(그랜드 캐넌)이든지, 유구한 역사를 한 눈에 접해 지금 내가 사는 이 순간이 몹시 짧은 것임을 깨닫게 하는 유적지(로마, 아테네)이든지,

 

다양하고 활기찬 사람들이 생의 나날들을 흥미롭고 의욕적으로 살아가는 도시(터키)이든지, 먹는 음식마다 너무나 독특하고 맛이 있어 한 끼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소중함을 느끼는 곳(인도)이든지,

 

미처 몰랐던 내 안의 예술적 욕구와 잠재력을 갑자기 닫힌 뚜껑을 확 열어버리듯 분출시키는 박물관(파리)이든지,

 

한 잔의 맥주가 뇌가 얼어붙을 만큼 시원하고 감미로워 동공이 확장되고, ‘과연 내가 이 맥주를 모르고 이때껏 어떻게 살아왔나?’ 싶을 만큼 배신감 같은 기쁨이 느껴지는 곳(더블린, 베를린, 프라하)이든지,

 

삶의 여유와 낭만을 회복시켜줄 치유적 공간(산토리니, 카프카, 태국 빠이, 제주도)라든지, 보는 옷 마다 너무나 아름다워 ‘옷 한 벌만 신경 써서 입어도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도시(밀라노, 런던)라든지,

 

있는 순간 마음이 평화로워져 느긋한 자세와 관대한 마음을 갖게 하는 휴양지(발리)라든지,

 

그들의 마음을 적어도 한 눈금 정도는 움직인 뭔가가 있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저 역시 그간 45개국 이상을 다니며 인생의 10분의 1 이상 방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핵심적인 것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느낀 것은 그들이 여행지에서 ‘비일상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즉, 여행을 가고서야 비로소 이때껏 언급한 무언가를 느낀 것이지요. 여행을 가지 않고서 느끼고 있다면,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우둔한 사람은 대개 다른 공간, 다른 언어, 다른 기후, 다른 음식, 다른 시간대에 처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상의 공간에서 냉동되었던 감성이 해동되곤 합니다.

 

질문자님, 문제는 ‘방에서 얼마나 바쁘게 지낼 수 있느냐, 게으르지 않을 수 있느냐’ 하는 게 아닙니다. 여행지에서 더욱 게으르게 지내도 됩니다. 저는 그것이 더욱 의미 있다고 여기고, 실제로 여행지에서 별다른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제 목적은 그저 맥주를 마시고, 바람을 쐬고, 낯선 도시를 걷고, 해변가의 햇빛을 쬐는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섭섭했던 일이 잊히고, 미련이 증발되고, 마음의 평안이 찾아옵니다. 서서히 활력이 차오르는 걸 느낍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행을 싫어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비일상성’은 일상적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합니다.

 

흔히 먹는 김치찌개, 누구와도 통하는 모국어, 숙박료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잠자리, 이런 게 ‘일상의 소중함’입니다. 그리고 ‘비일상성’을 통해 예절을 배우고, 타인을 이해하고, 새로운 음식과 문화와 역사와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건 소중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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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고민 상담>
Q. 부모님과 대화할 때 어디까지 털어놔야 하는 건가요?

Q. 다들 저에게 촌스럽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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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민석씨는?
2010년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고 등단.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쓴 책으로는 『능력자』『풍의 역사』 『쿨한 여자』『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등이 있다.

 

 

소설가 최민석씨가 20대 독자들이 보내온 사연에 답변 비스름한 것을 드립니다.
인간관계, 진로, 외모, 취향 등등 그 어떤 고민이라도 메일로 보내주셔요.
고민 당첨자(?)에겐 메일로 ‘당신의 고민이 다음 주에 실릴 예정이오’라며 알려드리고, 기사는 익명으로 나갑니다. 
고민 메일은gomin10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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