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학생 때 대외활동을 하다 만났고, 현재는 직장인이에요. 나이 차이도 꽤 나고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싫어하십니다. 처음엔 나이차 때문에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오빠의 내적 가치보다, 외적 가치 때문에 싫어하는 것 같아요. 오빠 집이 부유한 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오빠가 맘에 안 드냐? 고 하니까 그렇다네요. 그럼 헤어지냐? 고 하니까 그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남자친구는 저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인데, 많이 서운했어요. 저랑 많은 일들을 겪어왔고, 서로 맞추기 위해 노력한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그래서 제가 ‘결혼할 사람을 스스로 결정하게 해달라’고 하니 제 가치관이 맘에 안 드셨나봐요. 저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이해를 합니다만 제 삶을 엄마가 대신 살아주진 않잖아요. 어른들이 ‘여러 사람 만나보라’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여러 사람을 만나보는 경험을 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과 일부러 헤어지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륜을 저버린 사람들 빼고는 모두 자식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성숙한 방식으로 사랑하진 않습니다. 자식이 성장하면, 부모도 자식을 대하는 방식을 이에 맞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동양, 중동, 아프리카에서, 아니 실은 모든 부모가 그래요. 정도의 차이예요.

 

어머니께서 남자친구와 헤어지라고 하셨죠. 죄송하지만, 감히 말씀드리건대 어머니께선 질문자님을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할 권리가 0.0001%도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질문자님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길러주시고, 사랑을 베풀어주셨지만, 그것과 질문자님의 연애는 별개입니다. ‘아니, 어째 0.0001%의 권리도 없느냐?!’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0.00000000001% 아니, 0%의 권리도 없습니다.’

 

너무 냉정한 게 아니냐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당연히 어머니이니까, 질문자님이 가능하면 잘생기고, 현명하고, 부유하고, 친절하고, 배려심 깊고, 화목한 가문의 사람과 결혼하길 바랄 겁니다.

 

그런데 바람과 현실을 혼동하여, 끝없이 ‘조금 더 나은 사람’ ‘조금 더 괜찮은 사람’ 하며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건 결국은 ‘자식과 부모의 관계를 해칠 뿐’ 입니다. 지면에 싣기 위해 질문자님의 고민을 추리긴 했지만, 제가 받은 메일은 상당히 길었습니다. 그게 이미 질문자님의 마음에 상처가 가득하고, 모녀 관계가 어느 정도 상했다는 걸 방증합니다.

 

자, 그럼 어떡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릴게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어요.’ 결국은 질문자님이 원하는 사람과 사랑하고, 가정도 꾸리게 될 겁니다. 그 과정에 부모님은 그저 자신의 의견을 ‘이런저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일종의 투정이라 생각하세요(너무한가요. 부모도 성장통을 겪는답니다).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제가 요즘 아들이 태어나서 밤잠을 설치며 두 시간마다 우유를 먹이고, 똥 싼 기저귀를 갈고, 제 손으로 아들의 똥 묻은 엉덩이를 씻기는데, 아마 어머니도 이렇게 고생하며 키우셨을 겁니다. 그러니, 아쉬운 마음에 이런 말을 하시는 걸 겁니다.

 

결국은 질문자님의 뜻대로 됩니다. 정말 유별난 부모를 빼고는 거의 모든 부모가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부모가 있고, 한참 후에 받아들이는 부모가 있을 뿐입니다. 시간 차이입니다. 저 역시 아내랑 연애할 때, 장모님이 저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들처럼 여기고’ 대해주십니다. 이런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부모도 성숙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의 연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만, 어떤 부모는 연애를 하며 이미 행복한 자식을 굳이 자신의 기준에 맞춰, 그 행복을 수치로 전환하려 합니다. 물론, 부모님 말씀 틀린 건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인생이 불편합니다. 그건 맞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그 불편은 질문자님이 선택한 거잖아요. 그리고 물질적 편리가 인생의 절대적 행복을 담보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를 기다려주세요. 시간이 지나면 ‘깨달으시거나, 포기하실 겁니다.’ 그 시간 동안 아름 다운 사랑을 하세요. 단, 엄마와의 마찰은 피하고요. 어차피 시간은 질문자님의 편이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세요. 상처 받았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이해해줄 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하세요. 그러면, 결국 엄마는 엄마니까, 질문자님이 원하는 ‘진짜 행복’을 바랄 거예요. 네. 이건 시간문제예요.


 

<지난 고민 상담>

 

Q. 연애에 지쳤다는 그녀, 어떻게 해야 하죠?

Q. 진지해서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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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민석씨는?

2010년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고 등단.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쓴 책으로는 『능력자』『풍의 역사』 『쿨한 여자』『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등이 있다.

 

 

소설가 최민석씨가 20대 독자들이 보내온 사연에 답변 비스름한 것을 드립니다.
인간관계, 진로, 외모, 취향 등등 그 어떤 고민이라도 메일로 보내주셔요.
고민 당첨자(?)에겐 메일로 ‘당신의 고민이 다음 주에 실릴 예정이오’라며 알려드리고, 기사는 익명으로 나갑니다. 
고민 메일은gomin10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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