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레드벨벳의 아이린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은 그동안 여성들이 삶 속에서 겪어왔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는 이야기이고, 일부 남성 팬들은 ‘내가 쓴 돈 덕분에 먹고사는’ 아이린이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블로그에 ‘메갈 웜퇘지들의 우상 아이린’이라는 제목과 함께 아이린의 사진을 올려두었다. 어째서인지 일부 남성들의 인식 속에서 페미니스트란 뚱뚱하고 못생긴 여성의 모습으로 존재하며, 때문에 그들은 종종 ‘돼지’라는 단어로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려 한다.
단지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고자 하는 이들을 비하한다는 점에서,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고 비난한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혐오 표현이다. 이런 말들은 보통 여성을 비롯, 장애인, 성 소수자 등 사회의 약자들에게 향한다.
혐오 표현은 ‘내가 공격해도 반격해오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되는 이들에게 수시로 쏟아지며, 그들의 존재 가치를 폄하하고 위협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누군가를 개별적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고 한데 묶어 부정적으로 라벨링하는 것이다. 얼마 전 김부겸 의원은 이런 발언을 규제하자는 내용의 혐오표현규제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계의 반발로 보름 만에 철회해야 했다. 사실 혐오 발언을 법으로 막기란 쉽지 않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혐오 표현인지 법으로 일일이 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국민의 말과 글을 국가가 법으로 통제하는 일은 큰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를 핑계 삼아 얼마든지 혐오 발언을 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장애인과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혐오하고, 그 혐오를 마음껏 드러내도 괜찮은가? 혐오할 자유라는 말은 성립 가능한 것인가? 이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몇 년 전 퀴어문화축제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게 된다.
축제가 진행되는 서울시청 광장 맞은편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세력이 동성애 혐오 문구를 크게 내걸고 또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거듭되는 혐오 발언을 듣고 또 들을수록 저들이 시청 광장에 모인 성 소수자들을 실제로 공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누구도 그들을 저지하지 않는 상황 또한 공포스러웠다.
그것은 호모 포비아들이 언제 어디서라도 표현의 자유를 말하며 성 소수자들을 탄압할 수 있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혐오 표현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혐오 발언은 단지 말과 글에서 그치지 않으며, 직접적인 가해로 이어지거나 당사자 스스로 위축되게 만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급을 나눈다. 혐오 표현 안에서 한국 사회의 약자들은 쓸모없는 존재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낮은 레벨의 인간들로 취급받는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퉁쳐질 수는 없다.
지금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분야를 막론하고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여성이 그 어디에서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고 대상화하고 폄하하는 혐오 표현들이 농담인 척, 별 것 아닌 말인 척 쌓이고 쌓이며 여성에게 성폭력을 저질러도 되는 분위기를 만든 건 아닐까.
그래서 결국, 답은 교육이다. 약자를 혐오하고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알려주는 교육. 혐오 표현은 취향과 의견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같은 사회 구성원을 대하는 윤리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라는 걸 어린 시절부터 배울 수 있는 그런 교육 말이다. 법에 어긋나기 때문이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걸 가르쳐야 한다.
예전에는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발언들이 현재는 혐오 표현으로 인식되듯, 이런 교육을 바탕으로 우리는 불편함을 더 민감하게 느끼고 한명 한명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게 아니라,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서는 원론이 해답일 때가 있다.
[844호 – special]
Writer 황효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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