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소스, 멸치 다시팩, 히말라야소금, 트러플 머스터드. 가로세로 80cm에 불과한 원룸 작은 주방 찬장에 들어 있는 재료들이다. 자취하는 동안 맛있는 한 끼를 해 먹는 건 내 삶의 낙이었다. 식탁이 따로 없어서 서서 먹거나 박스를 깔고 먹을지언정 직접 요리해 먹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요리 DNA는 엄마에게 물려받았다. 엄마는 주방 일 벌이기에 선수다. 춘장을 사는 바람에 짜장밥이 생각나 잡채를 만들고, 저녁으로 먹은 추어탕이 영 별로였다며 시장에서 미꾸라지를 사 온다. 콩죽, 약밥, 구절판, 감자탕, 육개장은 보통 전문 음식점에서 사 먹겠지만 우리 집의 경우는 좀 다르다. 엄마가 한 게 제일이다.

 

친구들에게 집밥 사진을 보여주면 “너희 엄마 최고”라며 부러워한다. 그런 엄마도 늘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손맛이 있다. 바로 외할머니의 밥상. 사실 엄마의 요리 솜씨는 외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집 근처 시장에서 반찬 장사를 하셨고, 이후에는 여러 식당 찬모를 거쳐 다시 시장에 10년 정도 발붙이셨단다. 외할머니 집은 미식의 공간으로 기억된다.

 

거길 떠올리면 김치가 담긴 빨간 고무 대야와 알싸한 양념 냄새가 떠오른다. 할머니의 반찬을 먹고 자란 덕분에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김치를 잘 먹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별명이 ‘김치대장’이었다. 하핫. 외할머니는 집안의 장녀로 어려서부터 부엌일을 많이 돕다 보니 요리를 잘하게 되셨다고 한다.

 

 

엄마도 6남매 중 장녀로 중학생 때부터 동생들 도시락을 쌌단다. 큰딸인 나도 요리 금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뜨겁고 위험한 걸 분별할 수 있을 때부터 엄마는 거실에서 나와 동생을 위한 요리 교실을 열었다. 초등학교 무렵의 기억은 모두 요리와 얽혀 있다. 찹쌀 부꾸미를 만들었던 날, 떡 튀김이 폭발했던 날.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변함없다. 대부분의 기억이 음식으로 치환된다. 감기로 골골대고 있으면 엄마가 직접 끓여줬던 배도라지 차, 여름 단골 메뉴인 일본식 메밀국수와 콩국수, 손님상에 올렸던 연근새우전. 음식을 먹을 때면 추억이 담긴 그때의 냄새, 온도 그리고 엄마의 정성이 함께 느껴진다.

 

음식에 얽힌 추억은 내가 힘들 때마다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도와줬다. 밖에서 우울한 일이 있더라도 외할머니의 반찬과 엄마가 솜씨를 발휘해 차린 음식으로 꽉 찬 저녁을 먹고 나면 한결 나아지곤 했다. 엄마가 없을 땐? 앞서 말했듯 직접 해 먹는다. 어지간한 메뉴는 직접 만들 수 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요리를 했던 영재니까. 으쓱. 지치고 힘들다고 축 가라앉는 게 아니라, 당장 먹을 한 끼를 위해서 일단 움직인다. 조리의 북적임이 끝나고 내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면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하나씩 헤쳐나가다 보면 다른 일을 할 힘이 나더라. 물려받을 땅도 건물도 없지만, 우리 집에만 있는 맛있는 유산이 나는 참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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