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마을 소녀였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만나 멀리 강원도 산골짜기로 시집을 오셨다. 그리고 두 분은 그 곳에 앞으로 세 걸음, 옆으로 여섯 걸음짜리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을 지으셨다. 마당엔 세간이 하나둘 늘었다. 아궁이, 무쇠솥, 장독대…. 한 켠엔 감나무도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가 엄마를 낳고, 엄마의 동생과 그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마당은 그 시간들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그래서 엄마가 들려주는 동화 같은 옛이야기엔 늘 작은 마당이 등장하곤 했다.

 

내 키가 할머니 배꼽까지 자랐을 때, 그 마당은 나의 무대가 됐다. 엄마 아빠는 바쁘셨고, 나는 자주 할머니 집에 맡겨졌는데 그때마다 나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끼를 뽐냈다.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할머니의 박수 소리에 신이나 춤신춤왕이 되어 율동(이라고 쓰고 막춤이라 읽는다)을 선보이기도 했다.

 

 

할머니 키를 따라잡을 무렵부터는 ‘일꾼’이 되어 마당을 찾았다. 할머니를 도와 깨를 털고, 고추를 말리고, 옥수수를 깠다. 가끔은 백숙을 삶는 할머니의 등 뒤에서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김장하는 날에는 백 포기가 넘는 배추를 절이고, 새빨갛게 김치를 무치는 일도 거들었다. 김장이 다 끝나면 할머니가 김장김치를 수육에 돌돌 말아 입에 넣어주시곤 했는데, 적당히 매콤한 김치와 보드라운 수육의 그 조합이란…! 지금 떠올려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요즘엔 예전만큼 자주 할머니 댁을 찾진 못하지만, 그래도 손꼽아 기다리는 연례행사가 있다. 바로 마당에서 열리는 고기 파티…! 참여 인원은 엄마 아빠와 나, 이모와 이모부, 사촌 동생 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총 9명. 감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부지런히 삼겹살을 구워 먹다 보면 시간이 술술 흐른다. 하늘이 깜깜해지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릴 때쯤이 되면 할머니는 작은 전구 불을 켜주시는데, 그럼 우리 가족은 2차로 수다 파티를 벌인다. 서울살이에 지쳐 고단해진 마음을 흙 털 듯 마당에 툭툭 털고 일어날 때까지.

 

그런 마당이 요즘엔 할머니의 큰 걱정거리가 됐다. 최근 들어 한 해가 다르게 마을의 주택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높은 오피스텔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 벌써 할머니 집 양 옆엔 회색 빛깔의 3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다. 더 이상 할머니 집 마당에서는 옆집에 걸린 빨래나, 노랗게 지는 노을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가족도 못내 마음이 쓰여서, 마당에 펴던 돗자리를 할머니 집 거실에 펴는 날이 늘었다. 삼겹살 냄새나, 시끄러운 말소리가 퍼져 나가면 왠지 할머니 집 마당도 빼앗길 것만 같아서…. 엄마의 어린 시절, 할머니와 나의 추억,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모두 품고 있는 할머니 집 앞마당.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인 이곳을, 그리고 여기 남겨진 추억들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다. 훗날 내 자식과 내 자식의 자식까지도 이 따뜻한 곳에서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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