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살아, 단순하게. 쥐똥만 한 머리 자꾸 굴리지 말고.” 엄마는 20살이 된 내게 자신이 쓰던 가죽 가방을 건네며 말씀하셨다. 장난스러운 어투였지만 그 속에 담긴 뜻까지 가볍진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물려준 가방이 마음에 쏙 들었다. 비싼 명품 가방이라서가 아니다.

 

저 가방엔 엄마가 내게 물려주고 싶어 하던 ‘단순함의 미학’이 담겨 있다. 어렸을 적, 우리 가족은 폴란드에서 잠깐 살았다. 엄마는 폴란드에 오고 나서 한동안 조금 울적해하셨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말도 통하지 않고 연고도 없는 나라에서 아직 콧물쟁이인 우리 두 자매를 키워야 했으니 말이다. 덤으로 남편은 늘 회사에서 밤늦게 돌아왔고. 아무리 우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지만 쓸쓸하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시내에 갔다가 우연히 그 가방을 보게 됐는데,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다만, 가격이 꽤 비쌌을 뿐. 하지만 늘 그래 왔듯 엄마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단순함의 메커니즘을 작동시켰다. 요컨대, 이 어여쁜 가방은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것이고 당장 산다고 해서 큰일이 나진 않을 테며, 무엇보다 울적했던 기분이 좋아질 것 같으니, 결제. 그렇게 산 가방은 엄마의 일상에 작은 활력이 되었고, 이후 17년간 함께하며 때에 따라 주인의 흥취를 돋우고 낭만을 더했다.

 

엄마는 뭐든 복잡하게 생각하는 내게 이 일화를 종종 들려주었다. 상황이 암울할지라도, 단순하게 행하면 간단하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예전엔 ‘그건 엄마나 그렇지!’라며 들은 체 만 체 했는데(미안), 어른이 될수록 엄마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자연재해 같은 불행들을 몇 번 만나고 나서부터 그랬다.

 

그럴 때마다 난, 내가 처한 현실을 곱씹으며 생각 속에서 시름시름 앓아갔다. 어느새 나를 둘러싼 불행은 철옹성같이 단단해졌고, 나는 그걸 보느라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었던 행복을 몽땅 놓쳐버렸다. 엄마 말대로 조금 더 단순했더라면 훨씬 덜 불행했을 텐데. 이제야, 엄마가 왜 가방 얘기를 유독 나에게만 그리 많이 하셨는지, 왜 언니가 아닌 나에게 가방을 주셨는지 알 것 같다.

 

언니는 엄마를 닮아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법을 일찍부터 알았고, 나는 그토록 많은 생각을 껴안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품어주지 못했다. 엄마에게 그런 둘째 딸은 답답하면서도 못내 안타까운, 그래서 깨물면 더 아픈 손가락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따금씩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벽에 걸린 가방을 쳐다본다.

 

보면서 뭐 대단한 결심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딸애가 스스로를 갉아먹는 걸 원치 않았던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괜히 기분이 몽글해질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상념들이 잠시 끊어져서 배배 꼬였던 생각들을 덜어낼 수 있다. 당장 엄마처럼 현명해질 순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조금씩 당신을 닮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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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us editor 김예란 yeran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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