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가 쓴 글을 정성스럽게 읽어주길 바랐다. 그건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의실에서 실제로 겪게 된 일은 기대와는 퍽 달랐다. 그곳엔 ‘합평’이라고 부르는 묘한 문화가 있었다.

 

각자의 차례가 되면 누가 더 혹독한가를 겨루는 것처럼 서로의 단점을 발굴해냈다. 강의실에 있는 사람 중 유일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교수님들마저 이를 당연한 수순으로 여겼다. 스스로의 문장에 대한 감각은 무뎌진 상태에서 타인에게 혹독해지는 건 비평의 눈이 아닌 열등감을 길러내기에 충분했다.

 

비난 속에서 나는 ‘중요한 건 소설의 작품성이나 문장의 호응이 아니라 이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잃어버린 수업 시간은 짤막한 인상과 주관적인 비난만 난무하다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채 끝나버리곤 했다.

 

하지만 소설가 J 교수님의 수업은 달랐다. 교수님의 합평 시간은 내가 쓴 소설을 도마 위에 올린 생선처럼 취급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발표하고 주요 사건을 정리해 발표했다. 동기들은 주인공 설정에 대한 타당성보단 인물의 심리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언제나 교수님은 발표를 끝까지 듣고 마지막에 이 소설이 지닌 강점에 대해 말하는 걸 잊지 않으셨다. 교수님은 학생들이 새로운 인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엮었다는 것과 당신이 마침내 그것을 읽었다는 사건 자체에 기쁨을 찾는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없는 칭찬을 만들어내거나 마음에 없는 격려를 하진 않았다.

 

나와는 달리 묵직한 진심을 가진 어른. 나는 교수님의 짧은 커트 머리도 좋고, 무채색을 즐겨 입는 것도 좋고 언제나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지만 웃을 때만큼은 톤이 확 높아진다는 사실도 좋았다. 무엇보다 나의 스승이 소설가여서 보고 싶을 때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학기 말, 교수님과 몇몇 동기들과 함께 처음으로 학교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그녀는 성실한 소설가답게 우리의 사소한 말투와 수업 들을 때 작은 태도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교수님을 진심으로 동경했지만 소설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기가 죽어 있었던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갈 때쯤 교수님이 내가 쓴 소설의 장면을 정확히 기억해내 칭찬하는 건 물론 다음 학기에는 분량을 좀 더 늘리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조차 잊고 있었던 소설 속 장면을 교수님이 기억한다는 것만으로 내 작품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날에서야 진짜 어른은 가장 작은 현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휴학을 하고 인턴으로 일할 때 꽃을 사서 교수님을 찾아간 적이 있다. 다음 날 아침, 교수님으로부터 긴 메시지가 와 있었다. ‘볼 때마다 예뻐지고 성숙해지는 네 모습을 대할 적마다 마치 텃밭에 심은 토마토가 아무 탈 없이 잘 자라는 걸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날 이후 나는 그 문장을 마음에 문신처럼 생겼다. SNS 계정과 블로그 메일 아이디에는 토마토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게 되었다.

 

교수님은 나를 스스로 잘 자라는 토마토라고 여겼지만, 사실 단 한 번도 혼자 햇빛을 만끽하고 물을 껴안은 적이 없다. 당시 나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기준 없이 학교에서 주어지는 과제만 어영부영 수행하기에 바빴으니까.

 

그녀는 내게 왜 소설을 쓰고 싶은지, 휴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요즘도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든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대신 부암동에서 만나 파스타를 먹거나 손원평 장편 소설 『아몬드』를 선물해주셨다. 교수님이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힘들 때마다 교수님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대학에서 무수히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내 마음에 대해 물어주고 대답을 기다려준 어른을 생각하면 교수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교수님만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함부로 추측하거나 예단하지 않고 기다려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작은 원룸에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을 어른이라 생각한다. 베란다 창문 아래 화분을 키울 줄 아는 사람을 어른이라 생각한다. 아주 작은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고 천천히 바라봐주는 것이야말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이 다정한 마음을 성인이 되면 잃어버리는 경우를 무수히 많이 보았다. 초등학교 때 방울토마토 기르기를 할 때 엄마는 작은 화분에 토마토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나무젓가락을 꽂아 지지대를 만들어주었다.

 

내게 소설가 J 교수님은 햇빛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기둥이다. 내 이름으로 소설을 쓰게 된다면 내게 ‘텃밭에서 기른 토마토’라고 부르는 교수님의 이름을 맨 첫 장에 넣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스승 조영아 소설가에게 마지막 마침표까지 바치고 싶다.

[기획기사-좋은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

꼴랑 한 살 많으면서 대접 운운하는 어린 꼰대, 요즘 애들은 이래서 안 된다며 혀만 차는 가짜 어른 말고. 진짜 좋은 어른을 만난 이들에게, ‘내 인생의 어른’ 이야기를 들어봤다.

 

[좋은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 어른은 말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거야

 

[좋은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 좋은 어른은 영화 속에만 있어

 

[좋은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 진짜 어른이시라면, 알아서 존경해드리겠습니다

 

 


[880호 – Special]

Writer 윤소진 leeun0651@naver.com

Photographer 김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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