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나야, 안녕. 너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얘기해줄게. 먼저 넌 새터에서 한 조로 묶인 동기들과 같이 다니게 될 거야. 수강 신청도 같이 하고 개강 모임도 같이 가고. 근데 뭔가 좀 안 맞는 걸 느껴. 시간이 지나도 관계가 좀처럼 깊어지지 않을 거야.
네가 꿈꾸고 있는 대학 생활은 그런 거지? 새로 사귄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그러다 같이 수업도 빠지고, 한강에서 피크닉도 하는…. 환상을 깨서 미안한데 안타깝게도 너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성급하게 무리를 지은 친구들은 금세 뿔뿔이 흩어질 테고, 그제야 주변을 둘러봐도 네가 끼어들 틈은 없을 거야. 이미 다들 친해져 있을 테니까.
새내기들은 3월에 지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하잖아. 과방에 앉아 있으면 선배들이 밥 사 준다고 한다며. 너도 일말의 기대를 품고 수업이 끝나면 과방으로 가게 돼. 근데 분위기가 왜 이렇게 싸하지? 동기들은 선약이 있다며 자리를 뜨고, 선배들은 곤란한 표정으로 혼자 남겨진 너를 쳐다 봐.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니 더 이상 과방에 가고 싶지 않아져. 어쩌다 밥 약속이 잡히면 그 자리는 또 얼마나 어색하던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기억도 나지 않는 겉도는 대화를 나누고 끝이야. 그런 너에게 술자리가 마지막 남은 희망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해. 웬만한 술자리에는 절대 빠지고 싶지 않을 거야.
혹시라도 재밌는 술자리를 놓쳐서 대화에 끼지 못하게 되면 어떡해. 근데 역사적인 술자리 따윈 없더라. 모인 사람들 모두 술이 서툰 새내기잖아. 어색하니까 술 게임만 하고 주량도 제대로 모르면서 호기 부리느라 원샷하고 토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엉망진창이었어.
모임 자리에선 곧잘 친하게 지내지만 연락한다거나 단둘이 만나기는 어색한 그런 사이 있잖아. 매일 똑같은 술자리에서 남은 건 딱 그 정도의 관계였어. 취기에 웃고 떠들고 나서 비틀비틀 돌아오는 길은 어쩜 그렇게 허무하던지. 원래 대학 생활은 이렇게 외로운 건가? 아니야, 나만 망한 것 같아.
나는 소속감을 간절하게 원했어. 더 까놓고 말하자면 인싸가 되고 싶었지. 언제든 나를 반겨주고 필요로 하는 곳. 한 학기 내내 인간관계에 실패할 때마다 스스로를 탓했어. 내가 사교성이 없나? 매력이 없나? 그렇게 내 대학 생활 첫 학기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폭망했지. 7년이 지난 지금,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네 탓이 아니야. 너에게 문제가 있어서 친구가 없는 게 아니라 단지 운이 없어서, 너와 맞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것뿐이라고. 7년이 지나서야 그게 보이더라. 만약 스무 살의 내가 이 편지를 읽는다면 뭔가 달라질까?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는 걸 그만두고 마이웨이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아.
그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다만 과거의 나를 닮은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기댈 곳이 되기를 바라며 이 편지를 쓴다. 공강 시간 펼쳐 들었던 대학내일에서 위로 받았던 마음을 기억하며.
양언니 / 외로움 전문가. 요즘은 친구가 많아서 고민이다
[841호 – special]
Intern 최은유
Illustrator 남미가
대외활동부터 문화생활까지. 꿀팁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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