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학년이 된 나는 꿈에 그리던 첫 자취를 시작했다. 역세권에 신축 원룸, 베란다(흡연실)까지 딸린 호화로운 공간이었다. 부모님은 낯선 서울에서 홀로 서야 하는 아들이 걱정됐는지 평소보다 두둑한 생활비를 부쳐주셨다.

 

게다가 통장은 겨울방학 동안 초밥 서빙으로 벌어들인 알바비와 두툼한 봉투에 담긴 세뱃돈으로 빵빵하게 채워져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이 돈으로 합리적인 소비와 저축을 고민했겠지만, 21살에 몇백만원을 거머쥔 나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귀여운 신입생들에게 어엿한 선배 노릇을 ‘제대로’ 해보는 것.

 

인간관계에서는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가. 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새내기들에게 대학 선배에 대한 로망을 실현시켜주고자 명동 한복판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것으로 도배했다. 2만원짜리 투블럭 헤어 컷, 보온성을 갖춘 슬림 핏 청색 누빔 재킷, 시크한 이미지를 한 층 높여주는 블랙 셔츠와 진 그리고 세 번 신고 다신 신발장에서 꺼내지 않게 될 3센티 키높이 워커까지.

 

 

아마 이땐 몰랐을 거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내 돈 주고 티셔츠 한 장 사지 못하게 될 줄은.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된 후, 멋진 선배의 필요조건은 두둑한 지갑과 그것의 사용 빈도수라 생각했다. 밥값부터 커피 값, 술 값에 택시비까지.

 

내 자취방에서 신세를 진 후배에겐 다음 날 해장 짬뽕에 물만두까지 시켜줬다. 또 생일인 새내기가 있으면 파*바게트에서 2만원이 넘는 케이크를 대뜸 사다 주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내 체크 카드는 강원도 산골짜기 아디다스 모기한테 물린 팔뚝 처럼 세차게 긁히고 또 긁혔다.

 

그 와중에 눈곱만큼의 헝그리 정신도 없던 난 안락한 자취 라이프와 3월 꽃샘추위 극복을 위해 방을 사우나처럼 데워 놓았다. 수도 및 전기요금 1~2만원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됐냐고? 두어 달이 흐르고 내 통장은 바닥이 났다. 화수분일 줄 알았던 잔고는 수많은 숫자들에 깎이고 깎여 닳아 있었다.

 

 

옷 한 벌은커녕 양말 한 켤레에 침을 꿀꺽 삼켰다. 후배들의 엥겔 지수를 실컷 낮춰주고는 5개입 오징어짬뽕을 사다 5일을 버텼다(점심 때 라면을 끓여 면만 먹고, 국물을 남겨뒀다 저녁에 밥 말아 먹었다). 온 집 안을 뒤져 나온 백 원짜리 동전을 모아 간신히 담배 한 갑을 샀다.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미납이 석 달을 넘겨 보일러와 전기가 뚝 끊겼다. 난 시꺼먼 자취방에서 휴대폰 불빛 하나 없이 하룻밤을 지새며 허망하게 날려버린 세종대왕님 개수를 뼈저리게 되뇌었다. 선배가 될 후배들아. 후배들은 결코 돈 막 쓰는 선배를 선망하지 않는다는 것과, 잔고는 항상 현실적이고 정직하게 깎여 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부디 그놈의 ‘돈’ 때문에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용범 / 돈 많은 래퍼가 되고 싶다


[841호 – special] 

Intern 최은유

Illustrator 남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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