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오이를 싫어한다고 하면 욕을 먹었다. 어른이 반찬 투정을 하면 쓰냐! 하지만 페이스북에 
개설된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페이지에는 무려 11만명의 팔로워가 결집했다. ‘불호’는 내가 까탈스러워서가 아니라 그저 취향일 뿐이라는 명제에 공감한 것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펴낸 『2018 20대 트렌드리포트』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싫존주의’라 이름 붙였다. 가슴 속에 묵혀뒀던 각자의 ‘불호’를 용기있게 꺼낸 8인의 에세이를 모았다. 나만 이거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은근히 통쾌해질지도 모른다.


출처: 드라마 <모두 다 김치>

# 빠빠빨간 맛, 미안한데 안 궁금해

공태웅 / 김치를 비롯한 매운 음식을 싫어합니다

 

혹시 한국인으로 태어나셨습니까? 축하와 동시에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당신은 부모님으로부터 하루 세 번씩 다음과 같은 문장을 들으며 자라게 됩니다. “공부해라”요?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듣는 말은 “김치 좀 먹어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하루에 세 번씩 김치 반찬을 먹어야 하는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그게 무슨 대수냐 하는데, 뭐 딱히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이 문제없는 나라에, 누군가는 매운 것을 도저히 못 견디는 혀를 달고 태어났다는 게 문제겠지요. 김장 김치 특유의 강렬한 맛과 부모님의 매운 잔소리를 요리조리 피해 자랐다면 이번엔 급식소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릴 적 잔반통 앞에서 “버리지 말고 다 먹어”라고 지적하던 선생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두커니 서서, 꾸역꾸역 온갖 식은 반찬을 밀어 넣은 경험. 누군가는 체하고, 심하면 오바이트에 평생 그 반찬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가운데서 자랑스러운 한국의 슈퍼 푸드 김치를 먹지 않는 건 일종의 죄였습니다.

 

받지 않아도 잘못, 받았는데 남겨도 잘못이었지요. “남자가 되어가지고 매운 거 하나 못 먹냐?” 놀랍겠지만, 오늘날에도 제가 종종 듣는 말입니다. 대관절 남자와 매운 것 사이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나이를 먹어 급식체가 아닌 급여체를 쓰게 된 지금도 불가사의입니다.

 

치즈 올리고 캡사이신 뿌리면 구둣방도 맛집이 되는 세상에서 저같이 남자 구실(?)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외롭습니까. 하지만 미친 듯이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여자가 있다면, 매운 음식을 미친 듯이 싫어하는 남자도 존재하는 법입니다. 실제로 저는 대학교 기숙사에 살면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햄버거로 때울 때 굉장히 행복했습니다.

 

김치를 안 먹으면 식이섬유와 유산균은 어떻게 채우냐고들 묻는데, 요즘엔 요구르트가 잘만 나오니 제발 걱정 마십시오. 이런 문제를 상담하니 네덜란드 유학파 친구가 경험담을 말해줍니다. 그 동네는 어디 가서 개인정보 기입란을 적게 될 때면 ‘VEGETARIAN’이냐고 꼭 묻는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선 일절 묻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 국산 가방끈을 총동원해 도출해 낸 결론은 이렇습니다. ‘물어볼 필요가 없으니 안 물어본 것’이다. 드넓은 이 세상엔 고기를 안 먹는 사람도, 못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매운 음식을 안 먹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못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 맛있는 걸…”로 운을 떼며 사스도 때려잡은 고춧가루의 위대함을 설파해도 제 위장이 알아먹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남들이 기분 좋게 일용할 양식에 임하도록 내버려두면 좋겠습니다. 물론 매 끼니 나 좋아하는 음식만 먹을 수는 없지만, 혀도 따갑고 귀도 따가운 밥상머리만큼은 피하고픈 제 욕심을 부디 이해해주십시오.


[839호 – issue]

intern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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